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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거부권 유감(遺憾)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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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3 17:00:00 수정 : 2024-04-04 12: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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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종반을 향해 치달으며 미국 영국 소련(현 러시아) 3대 연합국 사이에 유엔 창설 논의가 본격화했다. 2차대전 발발을 미처 막지 못한 국제연맹을 대신해 전후 세계 평화를 지킬 막중한 책무가 부여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둬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대한 무력 제재 등을 가할 수 있도록 했다. 2차대전에서 독일 일본 이탈리아 3개 추축국을 무찌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미·영·소 3국은 안보리 회의에 늘 참여하는 상임이사국 지위를 확보했다. 나중에 중국과 프랑스가 추가되며 상임이사국은 총 5개국이 되었다. 국제사회의 최고 상층부에 있는 진짜 강대국들인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2023년 9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만난 두 사람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1945년 2월 얄타 회의에서 결정됐다. 소련 대표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이 그 도입을 강력히 요구했다. 영국 대표 윈스턴 처칠 총리와 미국 대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수용했다. 이에 따라 어떤 사안에서 5대 상임이사국 중 단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안보리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강대국들 입장에선 이보다 더 커다란 특권이 없다. 대신 상임이사국 간에 갈등이 생기면 안보리가 아무것도 못 하는 ‘식물’로 전락할 여지를 남겼다. 약소국들의 반발과  비난을 의식해서일까. 처칠은 훗날 회고록에 “(거부권 도입의) 결과는 후세가 판단할 것”이라고 적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사거리가 긴 탄도미사일을 만들어 시험 발사를 하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에 나섰다. 동서 냉전 시절부터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 온 러시아와 중국도 제재에 동참했다. 북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핵무기 확산을 막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는 대의(大義)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보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후 대북 제재 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2009년 2차 핵실험을 계기로 해당 위원회에 전문가 패널을 설치했다. 북한의 제재 위반 사례를 조사하는 임무가 패널에 맡겨졌다. 패널은 또 대북 제재 이행 위반에 관한 심층 보고서를 매년 두 차례씩 펴내왔다.

1945년 2월 열린 얄타 회의 모습.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이 회의에서 확정됐다. 앞줄 왼쪽부터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전문가 패널이 앞으로 더는 북한을 감시할 수 없게 됐다. 그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안건이 유엔 안보리 회의에 상정됐는데,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시켜 버린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는 부족한 포탄을 북한에서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현동 주미 대사는 2일 “그간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스스로 옹호해 온 유엔의 제재 체제와 안보리에 대한 국제 신뢰를 훼손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거부권을 지닌 강대국의 횡포에 분노하게 된다. 거부권 도입을 두고 “결과는 후세가 판단할 것”이라던 처칠이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그때 내가 잘못했다”고 하지 않을까.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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