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추념사에서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 빌어…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도록 최선”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여당의 극우적 행태가 4·3 정신을 모독한다’며 날 세웠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일 제7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 사연을 듣던 중 눈물을 흘렸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한 유족의 사연을 듣던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추념식에서는 4·3 사건 당시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김옥자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과 김 할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한 영상이 공개돼 추모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이듬해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등 7년간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이 희생당한 일을 통칭한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고두심은 “1948년 4월 봄내음 가득했던 제주는 점점 찢기는 상처와 고통으로 평온했던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며 “하루하루 두려움 속에 정체된 시간처럼 멈춰버린 듯했지만, 가족들은 그저 이 고통의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고 운을 뗐다. 이어 “늦가을 옥자 할머니의 가족들은 제주 화북리 곤을동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며 “며칠 뒤 옥자 할머니의 아버지는 외양간에 두고 온 소를 살피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시고 가시나물로 돌아간 뒤,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의 어머니도 이듬해 봄에 곤을동 인근 화북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언니와 동생마저 굶주림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그렇게 김 할머니만 남겨졌다고 한다. 고두심은 “다섯 살 아이로 홀로 남겨진 옥자 할머니의 70여년은 흐르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었다”며 “4·3의 피바람은 긴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다섯살 옥자인 팔순 노인을 남겨놓았다”고 언급했다.
김 할머니의 손녀 한은빈양은 “할머니의 아버지이자 저에게는 증조할아버지이신 사무치게 그리운 이를 향해 할머니를 대신해, 70년 넘게 가슴 깊게 묻어온 슬픔을 말씀드리려고 한다”며 “할머니는 매년 새해 달력을 걸 때면 제일 먼저 음력 동짓달 스무날을 찾아보라는 말씀을 하신다”고 전했다. 은빈양은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이라며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저로서도 홀로 남겨진 딸이 돼 어두운 그늘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애처롭다는 생각을 거두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유족 증언 등을 바탕으로 최첨단 AI 기술로 김 할머니의 아버지 생전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과 복원된 아버지 사진을 갖고 4·3 평화공원을 찾은 김 할머니의 영상이 뒤이어 상영됐고, 영상에서 김 할머니는 아버지 이름이 적힌 각명비 앞에서 “아버지 이 사진 아버지랑 닮아수과(닮았나요). 이거 나랑 닮았다 고라줍서(말씀 해주세요)”라며 눈물 흘렸다. 행사장을 찾은 유족 등 참석자들도 아픔을 함께하며 눈물지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별도로 글을 올려 “제주는 76번째 봄을 견디고 견뎌 평화의 씨앗으로 다시 태어났다”며 “국가폭력의 짙은 상흔을 넘어 용서와 화해, 통합의 정신으로 자라났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한다”며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안고 통한의 세월을 견뎌 오신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통한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3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활개친다”며 “상처를 보듬어야 할 정부 여당이 용납할 수 없는 망동의 진원지라는 점에 더욱 분노한다”고 쏘아붙였다. 계속해서 “국민의힘은 4·3에 대한 망발과 폄훼를 일삼은 의원읠 국민의 대표로 뽑아달라며 공천장을 줬다”며 “국민을 통합해야 할 대통령은 앞장서 이념전쟁으로 국민을 갈라치기하더니, 2년째 4·3 추념식에도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4월3일에도 제주 4·3 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여당의 극우적인 행태가 4·3 정신을 모독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이 대표의 지적은 지난 14일 대전시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필승 결의대회에서의 조수연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후보 비판과 맞닿아 있다. 자리에서 이 대표는 “(국민의힘은) 조선 지배보다 일제 강점기가 더 좋았을지 모른다, (제주) 4·3은 김일성 지령을 받은 무장 폭동이라는 취지로 망언한 인사(조수연 후보)를 대전에 공천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조수연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후보는 2021년 4월 자신의 SNS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당시 제주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는가. 아니면 김일성, 박헌영 지령을 받고 무장 폭동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꿈꾸었는가.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 4·3 사건 폄훼 논란을 일으켰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3일 서면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추념식 불참을 비판하면서, “망언으로 4·3을 폄훼한 태영호, 조수연, 전희경 후보를 공천하고 제주시민 앞에 설 자신이 없었나”라고 한 비대위원장을 꼬집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추념사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며 “크나큰 아픔을 감내해 오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공식 사과와 함께 진상조사와 희생자 신고 접수를 추진했고, 2022년부터는 한국전쟁 전후 일어난 민간 희생사건 중 사상 처음으로 국가보상을 시행하고 있다”며 “정부의 노력이 희생자와 유가족의 한과 설움을 씻어낼 수는 없겠지만, 진심어린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의 아픔 위로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한 한 총리는 “우리 정부는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화합과 통합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2025년까지 추가 진상조사를 빈틈없이 마무리해 미진했던 부분을 한층 더 보완하겠다”고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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