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주요 달리기 대회 접수가 한 시간 이내에 마감될 만큼 달리기가 열풍이다. 그중에서도 42.195km를 달리며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마라톤은 많은 사람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다. 마라톤은 기원전 490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군이 당시 최강이었던 페르시아군의 침공에 맞서 마라톤 평원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마라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로서 확인될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전투 현장에서 아테네까지 42km를 열심히 달려 승전보를 전한 뒤 사망했다는 각색된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올림픽 피날레를 결정할 만큼, 전쟁사에서 마라톤 전투가 특별히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서구우월주의, 혹은 서구 예외주의로 대변되는 유럽과 미국의 역사 서술의 중심 사조 때문이다. 마라톤 전투는 서구 세계가 그외의 세계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이 반영된 ‘서구식 전쟁 수행 방식’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군은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무장한 시민군으로, 팔랑스(방진대형)를 형성해 창과 방패를 들고 페르시아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이는 주종 관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참전한 적군인 페르시아를 표상하는 동양의 군대와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서구인에게 그리스는 마음의 고향이며, 페르시아는 서구 세계를 침공한 비서구 국가였기에, 마라톤 전투는 야만인에 맞서 자유와 평등의 근대성을 지닌 서구 그리스군의 숭고한 승리로 기억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서구와 비서구의 구분을 넘어 전 인류의 평등과 자유를 포용하는 올림픽 정신에 맞게 마라톤 전투에서 기원한 마라톤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는 42.195km를 달려 승전보를 전했다는 이야기나 서구우월주의의 반영이 아닌, 마라톤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 각자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무더위 속,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대형 방진의 일원으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적진을 향해 돌진하며, 개인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수많은 병사의 의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승리 후에 한계를 극복한 기쁨의 환호성을 외쳤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마라톤을 달리며, 2500년 전 그리스 병사들이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느꼈을 그 벅찬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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