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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불완전했기에 ‘만물의 영장’ 됐다

입력 : 2024-03-29 23:10:00 수정 : 2024-03-29 19: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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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족보행·큰 뇌, 부작용 많았지만
변화 적응하며 비범한 능력 가져
생명체 돌연변이·지구의 환경도
우연한 사건과 조정·땜질의 산물
‘진화는 완전’ 기존 오해 바로잡아

불완전한 존재들/텔모 피에바니/김숲 옮김/북인어박스/1만9800원

 

인류의 진화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네발로 기던 영장류가 점점 등을 펴다 마침내 똑바로 서서 두 다리로 걷는 모습이다. 이족보행이 100% 축복은 아니었다. 두 다리로 걷게 되자 여성의 골반은 좁아진 반면 뇌의 부피는 커졌다. 출산이 힘들어졌다. 인류는 땜질식으로 타협했다. 임신 기간을 아홉 달로 줄이고 두뇌 크기도 어른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무력한 아기를 낳았다. 뇌의 나머지 3분의 2는 성장하면서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이족보행은 이외에도 인체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발바닥에는 엄청난 하중이 가해졌고 무겁고 흔들리는 머리를 떠받치는 목은 약점이 됐다. 복부는 외상에 치명적이며, 복막은 중력에 따라 아래로 내려앉아 탈장과 탈출증이 자주 발생했다. 부작용이 많았지만 이점이 더 컸기에 직립보행은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았다.

진화의 산물인 생물은 무수한 우연과 땜질이 범벅된 불완전한 존재다.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이성의 눈을 끌어 번식에 유리하지만 포식자에게 잘 보여 생존에는 불리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흔히 진화는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흘러왔다고 오해하기 쉽다. 진화에 목적과 방향이 있고, 진화의 끝자락에 선 인간은 상대적으로 완전하리라 여긴다. 인간은 필연, 운명을 선호하고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진화생물학자 텔모 피에바니는 책 ‘불완전한 존재들’을 통해 진화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진화는 최적화가 아닌 적응과 변화의 과정이고, 생물은 불완전함과 우연, 땜질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인류 역시 무수한 우연과 땜질이 범벅된 불완전한 존재다.

지구 환경부터가 우연한 사건들이 겹쳐 만들어졌다. 약 46억년 전 지구는 화산폭발과 소행성 충돌로 생지옥이었다. 9000만년 후 작은 행성 테이아가 지구와 비스듬히 충돌했다. 달이 생겼다. 이로 인해 지구 축이 살짝 기울어져 계절과 밀물·썰물이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또 발생했다. 약 38억년 전 목성과 토성의 궤도가 불안정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지구에 혜성, 소행성이 날아왔다. 외부 물질이 지구에 떨어지면서 물, 탄소, 아미노산, 각종 유기분자의 농도가 높아졌다.

생명으로 눈을 돌려보면, 생명의 기본 단위인 DNA 자체가 불완전하다. DNA는 유전 정보를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복제 과정에서 꼭 오류가 발생한다. 생물은 이 오류를 정교하게 수리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돌연변이가 나타난다. 돌연변이로 개체는 다양해지고, 이는 진화의 연료가 된다. 우연히 환경이 급변해도 몇몇은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세포생물 역시 타협과 공생의 결과다. 이들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는 증거는 암세포다. 다세포생물에서는 세포가 스스로 죽는 ‘세포자살’이 필수다. 가령 태아 발달 중 손가락 사이의 세포가 자살하면서 손가락이 분리된다. 그러나 암세포는 세포자살을 무시하고 증식한다. 숙주를 파괴하면 자신이 죽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암세포의 진화를 설명할 길은 불완전함뿐”이라고 말한다.

생명체가 불완전한 이유는 진화 자체가 예측 불가능해서다. 우연한 사건이나 생태적 대격변이 닥치면 예전에 혜택이던 특성이 약점으로 바뀐다. 하늘을 날지 않는 공룡들이 멸종한 건 불완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소한 환경에 갑자기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생물체가 다양한 이해관계, 선택압(기후변화, 포식자, 질병 등 진화에 영향을 끼치는 압력)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것도 자연이 불완전한 이유다. 가령 공작의 화려한 깃털은 이성의 시선을 끄는 데 유리하지만,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는 어렵다. 공작은 이런 번식과 생존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텔모 피에바니/김숲 옮김/북인어박스/1만9800원

자연선택 과정에서도 역사적, 물리적, 구조적, 발달적 제약이 있기에 생물이 완벽해지고 최적화될 수 없다. 저자는 “진화 과정은 불쾌한 부작용을 최대한 인내하며 용인한다”며 “일단 특정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기록되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재조정하는 건 훨씬 비용이 많이 들고 돌이킬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런 제약 때문에 자연에는 쓸모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수컷들의 젖꼭지, 보아뱀의 뒷다리 흔적과 골반 등이 그렇다. 이미 가진 걸 재활용하는 게 경제적이기에 ‘쓸모없는 것’들은 환경이 바뀌면 새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일부 수각류 공룡은 체온조절과 구애를 위해 진화시킨 지느러미와 깃털을 훗날 하늘을 나는 데 재사용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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