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맞아요? 아니에요? 맞아요? 들어가요? 나가요?”
28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 끝난 뒤 아산 우리은행 박혜진의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 코끝이 빨개진 김단비가 갑자기 인터뷰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당황한 듯 물었다.
이날 챔피언전 3차전에서 우리은행은 모두의 예상을 극복하고 청주 KB를 물리쳤고 김단비는 양 팀에서 가장 많은 21득점을 올렸다. 경기가 끝나기 전 기자단은 박혜진의 인터뷰를 우선 요청했다. 김단비가 양 팀 통틀어 최다득점을 올렸고, KB 박지수를 훌륭하게 막아냈지만 박혜진 역시 분위기를 뒤집는 3점슛을 터트리는 등 14득점 9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박혜진이 취재진의 첫 질문이 승리 소감에 대해 “이긴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전반에 점수 차가 많이 벌어져서 걱정했지만 후반에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에너지를 내다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은 김단비가 들어온 것이다.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인터뷰실 문을 연 김단비는 ‘이왕 문 열고 들어오신 거 앉아 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착석해 “저도 (박)혜진이 말대로 믿기지 않는다”며 “아직도 얼떨떨한 상태고 모두 한발씩 더 뛰어주고 격려해준 덕분”이라고 넉살 좋게 웃었다.
우리은행은 이 경기에서 KB를 상대로 62-57 대역전승을 거뒀고, 2승1패로 시리즈에서 우위를 점했다. 선수들은 경기 종료 직전 이미 감격에 눈시울이 붉어졌고, 김단비 역시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맛봤다. 김단비는 ‘왜 눈물이 났느냐’는 질문에 촉촉해진 눈으로 “제가요?, 저 안 울었는데요?”라고 발뺌했다. 이에 박혜진은 “(김)단비 언니 원래 눈물이 많다”고 폭로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 경기에서 김단비와 박혜진은 절묘한 패스를 주고받으며 손쉬운 득점을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김단비는 이 장면에 대해 “(유)승희도 ‘미리 준비했느냐’고 물어봤지만 특별히 계획한 건 아니었다”며 “공을 몰고 들어갈 때 혜진이가 움직이는 게 보였고, 그래서 공을 건넸다”며 “우리은행에서 함께 뛴 건 이제 2년이지만 같은 시대에서 오랜 시간 농구를 한 건 같다”며 “이게 바로 언니들의 플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혜진 역시 “공간을 발견해 들어가면 (김)단비가 공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며 “점수를 주긴 어렵지만 플레이오프 때보다 몸 상태가 더 좋아졌고 뭔가 편해진 느낌”이라고 웃었다.
경기는 우리은행의 극적인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초반만 해도 KB 쪽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분위기였다. 김단비는 전반 23-35로 뒤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우리은행은 KB에 막혀 2쿼터 종료 3분 전까지 단 2득점을 올리는 빈공에 허덕였다. 김단비는 “경기 전 박지수를 막는데 집중했고, 박지수랑 같이 죽자는 마음으로 뛰었다”면서도 “평소 하던 대로 공격도 하되 박지수를 막아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후반에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이날 승리를 맛봤지만 나윤정은 2차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나윤정은 6분2초간 코트를 밟고도 턴오버 1개만 기록했다. 나윤정은 지난 2차전 4쿼터에서 승부처에서 유파울을 범했고, 추격하던 우리은행은 결국 경기를 내줬다. 나윤정은 펑펑 울며 자신을 자책했지만 경기는 이미 끝난 뒤였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나)윤정이 잘못도 아닌데 혼자 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겨내는 게 시간이 걸리겠지만 극복해야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응원했다.
김단비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김단비는 “1차전은 윤정이 덕분에 이겼고, 2차전은 윤정이 때문에 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윤정이는 우리은행의 승리와 패배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선수가 됐다는 의미”라며 “윤정이는 당연히 우리은행 베스트5, 최고의 식스맨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기라는 건 상황들이 모여서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 누구의 실수 그 하나 때문에 결정되지 않는다”며 “큰 경험을 한 윤정이가 이겨내서 스스로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단비는 챔프전 처음부터 마음을 약하게 먹었던 점에 대해 반성했다. 김단비는 “위 감독님이 ‘우리는 이기기 위해 농구를 한다’는 말을 듣고 많은 걸 느꼈다”며 “처음엔 (박)지수도 있고, 우승이 간절한 KB를 상대로 이기면 좋고 지면 당연한 거지라는 마음으로 챔프전을 준비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혜진은 “경기에 나서면 슛이 안 들어가고 기회가 와도 슛을 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며 “조금 더 자신 있게 슛을 던지려고 한다”고 웃었다.
위 감독은 챔프전에서 유독 격한 세리머니를 보여준다. 득점에 성공하면 펄쩍 뛰기도 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기도 한다. 김단비는 “화는 여전히 자주 내시지만 사실 이게 모두 감독님께서 선수들 앞에서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셔서 그러는 것”이라며 “이제 선수들도 다 안다”고 웃었다. 이어 “요즘들어 위 감독님이 화를 내실 때 발을 구르는 횟수가 잦아졌고 얼굴도 금방 상기되신다”며 “구두를 신고 발을 구르시면 발바닥은 괜찮으신가,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웃었다.
우리은행은 29일 홈에서 챔프전 4차전을 치른다. 우리은행이 이 경기를 가져가면 두 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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