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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사용후핵연료…오늘의 ‘빛’이 미래세대엔 ‘빚’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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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7 06:00:00 수정 : 2024-03-26 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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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폐물 저장시설 포화 어쩌나

한빛원전, 2030년에 첫 포화상태 도달
고리 2032년·월성 2037년 여유공간 ‘0’

정부,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확대 추진
미봉책 가까워 근본적 문제 해결 안 돼

처리장 건설 특별법 수년째 국회 계류
사실상 대책 없이 ‘후대 떠넘기기’ 지속

원전 상위 10개국 중 8개국 가동 계획

핀란드, 2016년 착공해 2025년 운영개시
부지선정 착수조차 못한 건 韓·인도뿐

‘빛의 빚.’ 전기라는 ‘빛’을 쓰기 위해 방사성폐기물이라는 ‘빚’을 후대에 남긴다는 말이다. 한국은 1973년 첫 번째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 건설을 시작했다. 이후 50년이 지나면서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는 차곡차곡 한국에 쌓인 빚이 됐다.

특히 한국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에 대한 대책 없이 사실상 후대에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중이다. 또 원전 내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도달하는 2030년 이후로는 진짜 무대책 상태가 된다.

 

한울원전

이는 사용후핵연료의 저장시설을 짓기 위한 첫 단계인 특별법 제정이 수년째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저장시설을 제때 짓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이후 발전량 부족과 전기요금 상승 등의 후폭풍은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따라서 처분시설 건설을 위한 관련 법령 마련, 기술확보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30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 시작

26일 한국수력원자력과 국회 등에 따르면 한빛원전은 2030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도달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 내에서 사용 후 수명을 다한 우라늄 핵연료로 섭씨 300도에 달하는 높은 열과 방사능을 내뿜는다.

당초 국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2031년에 처음 포화상태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원전 가동 정책 등이 반영되면서 한빛원전의 포화시점이 1년 빨라졌다.

 

고리원전

다른 원전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울원전 다음으로 고리원전이 2032년에 포화상태에 도달한다. 또한 오는 2037년에 포화상태에 도달하는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94.3%에 달한다.

중수로 원전인 월성원전은 경수로인 다른 원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사용후핵연료를 배출한다. 한때 월성원전의 저장시설 포화율은 98.8%에 달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준공된 건식저장시설인 2단계 ‘맥스터’ 덕택에 포화율을 소폭 낮췄다.

신월성원전(2042년), 새울원전(2066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은 30%대로 비교적 낮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국내 원전 사용비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언제든 원전 운영 정책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최근 “국내 원전 25기에서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1만8600t을 포함해 총 32기의 발생량 4만4692t의 처분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0년부터 임시 저장시설도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임시저장시설 확대… ‘미봉책에 불과’

정부와 한수원은 급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기 위해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은 습식저장시설과 건식저장시설로 구분된다. 습식저장시설은 물을 이용해 냉각시키고 방사선 누출을 막는 시설이다. 고리원전을 포함해 오래된 저장방식이며, 건식저장시설에 비해 저장 효율성이 떨어진다.

반면 건식저장시설은 저장공간이 효율적이고, 콘크리트나 금속으로 봉인해 안전성도 높다. 건식저장시설을 대표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월성원전이다. 월성원전의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는 핵연료 저장시설 문제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높이 7.6m의 건물처럼 생긴 맥스터는 1모듈당 2만40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다. 맥스터 두께는 1m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진도 7.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

맥스터 준공으로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시점은 늦춰졌지만, 맥스터 14모듈 중 벌써 절반인 7모듈이 포화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수원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고리원전 등에 한시적으로 건식저장시설을 마련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근본적인 고준위특별법은 국회 폐기 수순

하지만 이 같은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은 미봉책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제도적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에 따르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부지선정 절차, 원전 내 저장시설, 유치 지역 지원 등을 담은 특별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게다가 2월 임시국회 본회의가 종료됐다. 21대 국회 임기가 5월 29일까지고, 4월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제정안 통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고준위특별법은 2022년 11월22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처음 상정된 이후 총 10여차례 논의했지만 여야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여야 사이의 최대 쟁점은 저장용량 문제다. 야당은 원전 설계수명인 40년어치 폐기물만 저장할 수 있도록 용량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당은 노후원전이라도 안전성 검토를 거쳐 수명 연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준위특별법이 통과돼도 끝은 아니다.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과 건설에 최장 37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포화위기는 심각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고준위 방상성 폐기물을 실제 처분하는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선 운반, 저장, 부지 등 6개 분야에 걸쳐 모두 130개 기술확보가 필요하다”며 “이 중 74개는 개발 중, 33개는 향후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이나 스웨덴 등 각 분야 선도국 대비 60∼80%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각국은 ‘방폐물 처분시설’ 준비 착착

 

인류가 원자력으로 발전(發電)을 하게 되면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26일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미국, 핀란드, 독일, 스웨덴 등 원전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운영을 앞두거나 최소한 부지선정에 착수했다. 주요 원전 국가 중 부지선정에 착수하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인도뿐이다.

 

고준위 방폐장의 선두주자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내년에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운영한다. 핀란드는 5개 원전을 운영하며 발전 의존도는 40%에 달한다. 핀란드는 원전 계속운영을 위해선 처분시설 건설이 필수적이라 보고 1983년 의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이어 2001년 방폐장 부지를 확정했고 2016년 처분시설 공사를 시작했다.

 

스웨덴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처분시설을 짓는 방안에 대해 정부 승인이 났고, 오는 2035년 운영을 목표로 건설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원전 강국인 프랑스도 2006년부터 부지선정 작업에 들어가 2040년이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처분시설을 보유하게 된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모습. 교도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성폐기물에 민감한 일본도 최종 처분장 후보지 1단계 조사 보고서 초안이 정부에 제출된 상태다. 앞서 일본 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분사업자인 핵폐기물관리기구(NUMO)는 2020년 11월부터 약 2년간 홋카이도의 기초지자체인 슷쓰정과 가모에나이촌에서 1단계 후보지 조사인 문헌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향후 일본 경제산업성 심의회가 NUMO의 보고서를 승인하면, NUMO가 2단계 조사 후보지를 선정해 경제산업상에게 해당 계획의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어 3단계 정밀 조사를 거쳐 최종 부지를 선정한다. 다만 후보지 자치단체나 주민이 조사에 반대할 시 2단계 조사 진행이 불가능하다. 현재 후보지로 거론되는 두 곳 모두 반대 여론이 거세다.

 

미국과 독일도 각각 ‘방사성폐기물정책법’과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법’을 통해 처분시설 건설 준비에 나섰다. 스위스도 ‘원자력법’을 통해 1996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위한 ‘몽테리‘(Mont Terri) 연구소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실제 방폐장과 비슷한 450~500m 깊이의 동굴에 지하연구시설(URL)을 만들고 안전한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60년부터 처분시설 운영을 목표로 부지선정에 들어갔다.

 

한국의 경우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총 길이 551m, 최대 심도 120m에 이르는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을 통해 방폐장을 연구 중이지만, 다른 원전 상위 국가와 달리 부지선정 작업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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