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근거는 마련했지만…처벌 규정은 없어
지난해 11월 한 승객이 시내버스 안에서 대놓고 음란물을 시청해 뒷좌석에 앉았던 중학생이 공포감을 느꼈다는 제보가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중학생 제보자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20대 초반 정도 되는 남성분이 앞쪽에 타더니 갑자기 휴대폰을 높이 들고 있더라”며 “휴대폰을 들어 올린 채 음란물을 시청할 뿐만 아니라 영상이 나오지 않는 (휴대폰의) 여백 부분으로 뒤에 앉은 제 얼굴을 연신 비추기도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제보자는 자신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창문을 쳐보는 등 소리를 냈는데도 해당 승객이 음란물을 계속 시청하자 불쾌함과 두려움을 느껴 버스에서 하차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26일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등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서울시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에 관한 조례와 서울시 마을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 등에 관한 조례를 일부 개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일 열린 서울시 조례·규칙 심의회에서 심의·의결된 내용이다. 조례 개정안으로 버스 안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는 승객을 제재할 근거가 마련됐지만 처벌 규정은 없어 음란물을 시청하는 승객이 발견되더라도 실제 처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하철에서 음란물 시청시 벌금 500만원
지난해에는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음란물을 틀어 놓고 잠이 든 승객의 영상이 공개돼 누리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영상에는 양옆에 시민들이 앉아 있는데도 해당 승객은 음란물을 재생해 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현행법상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을 보더라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다만 지하철에서 음란물을 대놓고 본다면 처벌받을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철도안전법 제47조 제1항은 ‘여객 등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5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된다. 하지만 버스에 적용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는 관련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조항이 없어 처벌할 근거가 없다.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을 틀어 타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켰다고 보고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볼 수도 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3조에 따르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에게 도달하는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만 개인 시청을 위한 음란물 재생이 ‘상대에게 도달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버스 안 음란물 시청 제재 근거 생겨…처벌규정은 미비
이번 서울시의 조례 개정안 역시 처벌규정은 미비해 버스 안에서 음란물을 시청한다고 해서 처벌까지 받는 사례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과 함께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 의무가 신설됐다. 이에 버스에서 음란 행위를 하거나 음란물을 보는 행위를 제재할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11일 버스 운행 기준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김동욱 시의원은 “최근 버스 안에서 음란물을 시청하거나 일부 승객에게 음란한 행동을 함으로써 버스 이용에 불편과 불안은 초래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그동안 제재 규정이 명확히 없어 시민들의 안전한 버스 이용 환경 조성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 조례 개정을 통해 시민들이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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