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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기혼男·미혼女 고용률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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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01 22:50:03 수정 : 2024-03-01 22: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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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결혼을 해야, 여성은 안 해야 고용률이 높다.’

결혼과 경제활동의 연관성을 분석한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미혼인구 증가와 노동공급 장기추세)에서 눈길이 간 대목이다. 남성의 경우 미혼이 기혼에 비해 경제활동참가율과 근로시간이 낮았고, 여성은 그 반대였다. 보고서는 “미혼 인구 비중이 증가할수록 남성의 노동공급 총량은 감소하는 반면 여성의 노동공급 총량은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여전히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임신·출산·육아의 주체로 우선 인식되는 사회임을 방증한다. 남성은 저학력, 여성은 고학력일 때 미혼율이 높은 것은 이런 성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없다고 여겨져서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의 주제는 만혼·비혼 등 결혼 행태 변화로 현재와 미래의 노동공급이 모두 감소한다는 것이다. 왜 줄어드느냐면 ‘미혼 여성의 노동공급 증가보다 미혼 남성의 노동공급 감소가 커 총효과로는 하락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혼인율 높이기를 제시한다. 안정적인 노동공급 확보를 위해서도 결혼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선뜻 맞장구치기 힘들었다. 미혼 여성보다 기혼 남성에서 노동공급 증가 여력이 더 크다는 계산에서 나온 결론이니 합당하다고만 봐야 할까. 숫자만 보느라 더 중요한 의제를 간과한 건 아닌지, 한쪽 관점에서만 본 건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현재 상황에서 결혼율만 올라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혼남·미혼녀의 고용률이 높은 사회이니 결혼한 남성은 노동 시장 참여가 늘 테지만 여성은 일할 확률이 줄어든다. 결국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강화하는 귀결이 된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 부동의 1위로 남성들이 경제력을 꼽는 현실에서 이는 결혼율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남성을 장가보내서 일할 결심을 하게 만들고, 노동공급을 안정화하자는 발상에 참 한국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남성 인구가 여성보다 많아서 남성 고용을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할 수도 있으나 이 역시 개운치 않다. 이조차도 남아 선호, 여아 선별 낙태 등 뿌리 깊은 성차별 관행으로 타국에 비해 성비를 크게 망가뜨린 데서 기원한다.

반대로 여성 고용률을 끌어올려서 노동 시장을 안정화하자는 말은 듣기 힘든 사회다. 이것이야말로 결혼 적령기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이들의 입장은 어디서도 시원하게 반영된 걸 보기 힘들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의 삶이 남성과 다르지 않기를 원하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니 이 과업에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지표에서 성별 격차가 큰데 한쪽 입장이 편향적으로 채택되기만 하는 사회에서 평등 같은 건 요원한 일이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에서도 이는 잘 드러났다. 혼인 여부에 따라 여성과 남성 간 삶의 차이가 너무 커지는 것, 이를 좁히기는커녕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향을 해결책이라며 내놓는 인식의 한계 등이 총체적으로 그렇다. 이 보고서는 의도치 않게 ‘왜 한국이 비혼·비출산이 늘어나는지’ 재확인해 준 셈이다.


정지혜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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