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추진한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이 27일 시행됐다. 진료보조(PA)간호사 등이 의사 업무 일부를 하는 경우에 따른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에서는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 실시에 따라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는 의료기관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해 간호부서장과 반드시 협의해 설정 및 고지해야 한다. 다만 대법원 판례로 명시된 금지 행위는 제외된다.

구체적으로 자궁질도말세포병리검사(자궁경부암 진단을 위해 자궁경부의 세포를 염색해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검사)를 위한 간호사의 검체 채취,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 마취, 사망 진단이 금지 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간호사가 주도적으로 전반적인 의료행위의 실시 여부를 결정하거나 간호사에 의한 의료행위의 실시 과정에 의사가 지시·관여하지 않은 경우, 간호사가 의사의 구체적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마취약제와 사용량을 결정해 피해자에게 척수마취시술을 한 경우도 포함된다.
현장에서는 정부가 구체적으로 업무 범위를 정하지 않고, 각 병원의 협의에 따라 정해진 상황이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 사고 등으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어서다.
과거 무면허 의료행위에 관해 내린 판례를 살펴보면 대법원은 의사가 관여했더라도 구체적 지시가 없었다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척수마취시술 관련 판례는 2004년 5월 인천 계양구의 한 병원에서 치질 수술을 받던 환자에게 마취전문간호사가 의사의 구체적 지시 없이 마취약제와 사용량을 결정해 환자에게 척수마취시술을 한 사건이다. 당시 담당의는 마취 간호사에게 치질 수술을 위한 마취를 부탁했고 간호사는 환자의 요추 4번·5번 사이에 마취액을 주사했다. 대법원은 간호사가 마취전문간호사고, 담당의의 부탁으로 이뤄진 시술이라 하더라도 구체적 지시가 없다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간호사 측은 1991년 마취간호사 업무범위에 대한 복지부 유권해석을 제시하며 수술집도의사의 지시 하에 마취행위를 하는 것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마취 간호사가 집도의 지시·감독 아래에 마취 시술 등 진료보조행위를 하는 것은 의료법상 적법한 행위라는 취지의 해석을 내놨다.

대법원은 그러나 유권해석 자료에 따르더라도 의사의 구체적 지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복지부는 당시 마취제의 종류와 양 등은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집도의의 구체적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마취약제와 양을 결정해 직접 마취시술을 시행한 것은 법령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다.
간호사가 의사 대신 사망진단을 했다가 유죄로 판정된 사례도 있다. 2014년 한 호스피스 의료기관은 의사가 퇴근했을때 환자가 사망할 경우에 대비해 의사가 퇴근 전 미리 사망원인을 기재해뒀다. 간호사들은 입원환자가 사망하면 직접 사망 여부를 확인한 후 의사가 미리 기재한 사망원인을 보고 사망진단서를 대리 작성했다. 대법원은 사망 진단은 의사가 환자의 사망 당시 또는 사후에라도 현장에 입회해서 직접 환자를 대면하여 수행해야 하는 의료행위라고 보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의사는 간호사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망진단서 등을 작성 발급하는 행위는 사망을 진단하는 행위, 즉 사체검안을 구성하는 일련의 행위에 해당하므로 이를 포괄하여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에서 정한 사안 외에도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다. 2016년 청주의 한 의료기관에서 병원장이 센터 소속 간호사들에게 뇌혈류 초음파 검사 또는 심장 초음파 검사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병원장과 센터의 차장인 간호사, 의료법인이 의료법 위반교사와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형이 선고됐다.
한 의료법 전문 변호사는 “의료법위반의 소지를 피하기 위하여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새로운 의료제도를 시행하기 위한 시범사업이라는 근거를 제시했기에 큰 시각에서 (법률 위반 관련해서)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아보인다”며 “개별 사건은 전후 사정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의사가 집단 진료 거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엄격하게 판단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