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서 나온 저출산 대책 눈길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정년을 연장해 주자는 제안이 한국은행 내에서 나왔다. 늦은 취업과 만혼이 일상화된 한국의 현실을 볼 때 출산과 경력 단절에 따른 청년층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구상이다.
뉴스1에 따르면 최근 부영그룹이 발표한 '1억원 출산 지원금'처럼 민간 기업이 저출산 해소와 관련해 맡을 역할에 관해 화두를 던지는 의미를 담았다.
한은에 따르면 월간 내부 소식지 '한은소식' 2024년 2월호에는 이 같은 제안을 담은 이재화 인사경영국 부국장의 기고문이 실렸다.
'출산과 정년 연장 : 부모의 은퇴는 이르고 자녀들의 갈 길은 멀다' 제하의 칼럼은 "출산·양육 부담과 미래 걱정으로 아이를 더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제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늦은 출산으로 아이가 1~2살에 불과한 30·40대 두 부부의 사례를 들면서 "이들이 출산을 계획하면서 했던 가장 큰 고민이 퇴직 이후의 양육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자녀 교육비가 한창 들기 시작하는 때 정년을 맞을 예정이라 둘째나 셋째 출산은 상상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기고문은 이 같은 사례가 극단적이지 않다면서 취직과 출산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세태를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첫 아이를 출산한 부모의 평균 연령은 2022년 기준 35.1살(남편), 32.8살(아내)로 10년 전에 비해 각각 1.9년, 4.5년 밀렸다. 평균 취업 연령은 남성 30.0세, 여성 27.3세(잡코리아 조사)로 보통 취업하고 3~5년 내 아이를 낳는다.
소위 '신의 직장'에 들어가 60살 법정 정년을 다 채울 수 있는 청년마저 정년엔 첫째가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26살 전후라는 얘기가 된다. 만약 둘째·셋째를 낳는다면 같은 시기 이 아이들은 더욱 어려 퇴직 후 수년간 책임을 져야 한다.
앞선 사례처럼 첫째를 낳을 직장 여건을 갖춘 청년도 다자녀 출산은 주저할 수밖에 없다.
기고문은 "현실 정년이 60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전 부모는 정년을 맞는다"며 "퇴직으로 노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점에 자녀 미래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물론 이 같은 제안은 60살 정년 채우기가 힘든 일반 직장인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항상 따라붙는다.
기고문을 쓴 이 부국장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기업들은 인력의 최종 수요자인 데 반해 출산율을 어떻게 높일지에 관한 논쟁에는 늘 비켜서 있던 측면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부영그룹이 최근 파격적인 출산 지원을 발표한 것처럼 국가·개인만 아니라 기업도 (저출산 관련 논의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차원"이라며 "물론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논의의 한 부분으로 다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인 한은이 내부 소식지에서 저출산 관련 제안을 다룬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기본소득 논쟁에 관한 기고문(2022년) 등 정치·사회적인 주제의 칼럼이 실린 적은 있었지만 저출산 해소 방안을 제언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기고문은 한은의 여타 보고서처럼 공개 전 내부 검토를 거치진 않았다. 정년을 몇 년 늘릴지, 과연 법으로 규정해야 할지 등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한 한은'에서 탈피해 국내 최고 싱크탱크이자 '시끄러운 한은'이 되길 독려한 이창용 총재의 방침에 따라 평소 품었던 구상을 밝힌 것이라고 이 부국장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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