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 무기 기술의 확산. 2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인 전투기술을 비롯한 비대칭 무기가 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우크라이나군은 각종 미사일과 무인기, 무인수상정(드론 보트)·잠수정(수중 드론) 등을 동원해 흑해 일대에서 러시아군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중국처럼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국가만 가능하다고 생각되던 반접근 지역거부(A2/AD·적이 육지, 해상 또는 공중 지역을 점령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개념) 전략을 중견 국가나 무장단체도 제한적인 수준이나마 감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이미 예멘 후티 반군이 미사일과 드론 등으로 홍해에서 상선과 군함을 공격, 이 일대를 지나려는 상선 등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A2/AD 전략이 중견 국가 또는 무장단체로 확산하면, 미국 등 기존 해양 강대국과의 군사력 격차는 좁혀진다. 바다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외의 다른 해양국가들은 A2/AD 전략 확산에 맞설 기술과 전술을 새롭게 개발하는데 투자를 할 것인지, 해당 지역에서 물러설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늘어나는 A2/AD 전략
과거에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겨냥한 중국이 A2/AD 전략만이 주목을 받았다.
시시각각 위치가 바뀌는 미 해군 핵추진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을 실시간 추적할 위성과 장거리 탐지레이더, 다양한 출처를 통해 수집되는 정보를 실시간 전달·융합하는 첨단 정보처리체계, 정밀하게 표적으로 날아가는 대함탄도미사일(ASBM) 제작 기술 등이 없으면 A2/AD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간 분야에서 충분한 역량과 무인기술 등이 있다면, 특정 해역에서 제한적이나마 A2/D2가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흑해는 양측간 치열한 힘겨루기의 장으로 변했다. 러시아가 전쟁 전부터 해군 함정을 흑해로 집결시켰다는 점에서 흑해가 러시아의 바다가 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은 오래지 않아 깨졌다.
러시아는 전쟁 초기 함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해안을 봉쇄, 제해권을 장악하고 곡물 수출을 차단하려 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미사일과 무인수상정·잠수정 등으로 러시아의 해안 접근을 거부하는 전략을 펼쳤다.
이같은 A2/D2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전쟁 초기인 2022년 4월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순양함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 지대함미사일에 피격, 침몰했다.
모스크바함이 격침되면서 흑해 서북부 해역에서 러시아 군함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인 오데사와 주변 해역에 대한 통제권도 사라졌다.
우크라이나는 같은해 7월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 공격을 시작으로 주기적으로 드론 보트와 미사일 등을 이용한 공격 작전을 벌여왔다.
러시아 흑해함대 함정 80척 가운데 최소 22척을 파괴, 13척에 피해를 입혔다. 거듭된 공격으로 러시아는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던 일부 함정을 흑해 동부 해안으로 철수시켰다.
우크라이나는 흑해 항로를 재가동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해상 교역에 나설 수 있었다.
러시아군은 드론 보트를 추적·파괴하기 위해 헬기부대를 편성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드론 보트 공격을 저지하는 전투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적 드론 보트 탐지·파괴를 위해 해군 항공단 Ka-27·29 헬기를 활용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해상작전헬기인 Ka-27이 정찰·탐색 활동으로 드론 보트를 발견하면 수송·무장헬기인 Ka-29가 파괴한다.
홍해에서는 예멘 후티 반군이 A2/AD 방식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 후티 반군은 홍해 연안에 민수용 레이더를 설치, 홍해를 지나는 미 해군 함정과 민간 화물선에 ASBM, 자폭 드론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미 해군은 SM-6 함대공미사일과 근접방어체계(CIWS) 등으로 드론과 대함 탄도미사일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 방어능력을 갖추지 못한 다른 나라 군함이나 상선은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나마 군함은 빠른 속도로 항해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무장이 없는 민간 화물선은 방어대책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민간 선박들은 홍해 운항을 중단한 채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후티 반군은 홍해 특정 해역에 대한 A2/AD를 일정 부분 달성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군용으로 개발된 첨단 기술을 사용한 미래전에 대응할 능력은 확보했지만, 그보다 차원이 낮은 기술과 비전통적 방식을 통해 구현하는 무장집단의 A2/AD 전략을 무력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새다.
◆한국도 위험지역 우려
이같은 상황은 한반도에서도 적용될 우려가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빈틈을 파고드는 면에 있어서는 무서울 정도의 집념을 보여줬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증원전력 전개를 거부하거나, 한반도 주변 특정 해역에서 선박 항해를 저지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은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4월 대함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KN-17을 쐈다. 이때 발사한 미사일은 450㎞를 날아갔다. 지금까진 북한의 감시정찰 능력이 부족해 해상에서 선박을 KN-17로 타격할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나 후티 반군처럼 민간 정보자산을 활용하면 위협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미 증원전력이 들어올 부산항이나 김해공항 등을 노리고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을 감행하면, 증원전력의 전개가 일시적으로라도 막힐 수 있다. 잠깐의 시간적 지체만으로도 전쟁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이 최근 공개한 바다수리-6형 지대함미사일은 북한 해안과 가까운 해상에 한·미 해군이 접근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한·미 연합군의 방공체계로 저지할 수 있으나, 지대함미사일의 존재는 일종의 접근 거부 효과를 낸다.
북한이 핵무인수중공격정이라고 주장하는 해일 수중 드론은 함경도 연안에서 동해안 전역의 항만을 타격할 잠재력을 갖췄다. 우크라이나처럼 한·미 연합군의 함정이 동해 연안 항구에 머물지 못하게 함으로써 동해안으로부터의 해상 접근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동해에서의 제해권을 한·미 연합군이 쉽게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북한 동해 연안에 대한 통제권을 김정은 정권이 유지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같은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선 사전에 북한군 움직임을 감시할 레이더와 광학장비 등의 감시자산과 요격무기를 충분히 운용하고, 공중정찰을 강화하면서 대응훈련을 통한 전술 개발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수중무인공격정을 탐색하고 파괴하기 위해 해상작전헬기를 활용한 전술을 활용하면서, 동해와 서해 환경에 맞게 훈련 내용을 변경할 필요도 있다.
항만방어체계에 수중무인공격정 위협을 반영하고, 각 함정의 요격능력과 전자전 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은 객관적인 군사적 격차와 기술에 대한 의미를 약화시켰다.
미군이 첨단 기술과 차세대 과학기술, 미래전에 집중하는 동안 중견 국가와 무장조직은 비전통적 방식의 전술과 민간 기술, 과거 전쟁의 기술 등을 조합해 ‘염가판 A2/AD’ 전략을 만들어냈다.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국가에서도 제한적인 수준의 A2/AD가 가능해지면, 대양에서 미국의 주도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해양질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셈이다.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위기 국면이 다가올 위험이 있다. 힘의 격차를 순식간에 좁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우리가 관심일 가질 필요가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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