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정부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21일 “성명서에서 요구한 안들이 어느 정도 수용돼야 정부와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협 비대위가 전날 성명서를 통해 발표한 7개 요구안을 정부가 일부라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7대 요구안 중 핵심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요구안) 하나하나가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고 답했다. 대전협의 7개 요구안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수련 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대책 제시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다.

◆정부 “대화하자”…전공의 “정부, 답 정해놔”
박 비대위원장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정부는 계속 강경하기만 한 상태라서 진짜 대화의 의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계속해서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합의점을 찾기보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더 대화의 의지가 없는 상태로 보인다”면서 “대통령실에서 2000명 (증원) 숫자가 조정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정부는 이미 2000명이라는 답을 정해놓은 것 같다”고 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정책을 의논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으로 보인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대화에 열려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사실 지금까지도 정부와 대화해왔다”면서 “하지만 2000명 증원이나 정책 패키지 같은 것들은 의료협의체나 회의에서 나왔던 게 아닌데 (정부가) 되게 뜬금 없이 불렀다. 이건 대화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의료계와의 대화를 무시했다는 취지로 들린다.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응이 전공의들의 반감을 일으키고 있다고도 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탄압으로 느낀다”고 전했다.
◆“36시간 연속·주 80시간 근무 개선해야”
대전협은 전날 성명서에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 대한민국 의료가 마비된다고 한다. 피교육자인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구조는 바람직하냐”고 물었다. 대학병원이 전공의들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대전협 7개 요구안 중 ‘수련 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와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과도 연결된다.
박 비대위원장은 “36시간 연속근무하고 주 80시간 가까이 일하는 전공의들의 근무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공의가 대학병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까, 전문의 숫자가 전공의보다 많음에도 업무량은 전공의가 더 많다”며 “지금처럼 전공의가 단체로 많이 빠지게 됐을 때 병원이 잘 안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협회가) 전공의 실태조사를 했을 때 평균적으로 월 397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왔다”며 “주 80시간, 월 330시간을 일하는데 요새 최저시급과 비교했을 때 근로환경이 썩 좋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병원은 의료법에 적힌 환자당 의사 숫자를 지켜야 하는데, 적은 돈으로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전문의는 늘리지 않고 전공의를 갈아 넣고 있다”면서 “전공의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전문의 숫자를 늘리고 전공의 근무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대화로 건의사항 해소할 수 있어”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병원 복귀와 대화를 요청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의사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어제 전공의 대표들이 만나 논의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건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사실관계 인식이 다른 부분이 있고 건의사항의 많은 부분이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해소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거듭 요청드리지만 환자 곁으로 즉시 복귀하고 정부와의 대화에 참여하기를 제안한다”며 “지금 복귀하면 아직 처분이 나간 것이 아니므로 모든 것이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에 대해서는 “4대 정책 패키지에 다 들어가 있는 내용”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박 차관은 “연속근로시간을 36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법이 통과가 됐다”며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돼있어서, 올해 상반기 중 시범사업을 실시해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련 전담의를 추가로 구축하는 방안도 정책 패키지 1번 인력 양성 파트에 설명돼 있다”면서 “전공의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 상당 부분 부합할 게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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