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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다툼을 전쟁 대신 재판으로 해결하면 얼마나 좋을까.’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간절해진 인류의 염원이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 유엔이 탄생할 때 그 산하기관으로 국제사법재판소(ICJ)를 둔 이유다. ‘평화궁’으로 불리는 재판소 청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다. 1907년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고종 황제는 이준 열사를 특사로 보냈다. 세계 각국 대표 앞에서 일본의 부당한 국권 침탈을 호소하려던 이 열사의 구상은 ‘조선은 외교권이 없다’라는 이유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며 좌절됐다. 헤이그는 한국인들에겐 나라 잃은 설움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다.

ICJ는 서로 다른 국적의 재판관 15명으로 구성된다. 국제법에 전문적 식견을 갖춘 법학자나 법조인이 주로 임명돼왔다. 현 재판관들의 출신국은 레바논(재판소장) 우간다 슬로바키아 프랑스 소말리아 중국 인도 일본 독일 호주 브라질 멕시코 미국 루마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1991년에야 유엔에 가입한 한국은 아직 재판관을 배출하지 못했다. 대륙별 안배 원칙에 따라 아시아 몫 재판관은 몇 자리 안 된다. 그나마 중국 일본 인도가 하나씩 고정석처럼 앉으니 우리가 낄 틈이 없다.

80년 가까운 관록을 쌓아 온 ICJ는 성과도 작지 않다. 2009년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간 영토분쟁을 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국에 불리한 판결이 나왔으나 우크라이나는 깨끗이 승복했다. ‘유엔 회원국은 자국이 당사자인 어떤 사건에 있어서도 ICJ 결정에 따를 것을 약속한다’라는 유엔헌장 규정을 준수한 결과다. 문제는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다. 국내 법원과 달리 ICJ 결정은 구속력이 없어 강제 집행이 어렵다. 일부 강대국은 판결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19일 ICJ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에 관한 재판이 시작됐다. 지난해 유엔총회가 ‘점령의 적법성을 따져봐야 한다’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법정에 선 팔레스타인 대표는 “이스라엘 군대 철수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재판을 보이콧했다. ICJ가 불법 판결을 내리더라도 이스라엘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법 대신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한계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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