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면서도 창작 독려한 동반자
별거 때도 편지는 계속 주고받아
두 사람 심리·격정적 사랑 보여줘
168통 편지·그림·보도사진 등 수록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윤진 옮김/문학동네/3만5000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불리는 ‘어린 왕자’는 어린 왕자와 길들여진 한 송이 장미에 관한 이야기로, 관계에 대한 통찰을 담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으로 꼽힌다. 작가이자 조종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어린 왕자에게 관계의 어려움과 책임감을 일깨워준 장미가 그의 아내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별에서 날아온 씨가 싹을 틔워 피어난 꽃은 콘수엘로가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 출신임을 상징하며, 서툰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이별하는 것 역시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앙투안과 콘수엘로가 처음 만난 1930년부터 앙투안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비행 중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간 두 사람이 주고받은 168통의 편지를 엮은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문학동네)가 출간됐다. 두 사람이 직접 그린 그림과 육필 원고, 보도사진 등 72점의 이미지까지 촘촘히 수록한 이 책은 명작이 탄생하기까지 두 사람의 불안한 심리와 격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1930년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랑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장에서 처음 만났다. 화가이자 작가로서 앞서가는 현대적 여성이었던 콘수엘로는 첫 남편과 사별 후 자유롭고 독립된 삶을 추구했다. 안정적인 작가의 길을 두고 조종사로서 모험적인 삶을 추구하던 앙투안이 엘살바도르에서 온 이국적이고 비범한 콘수엘로에게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두 사람은 3개월의 동거 끝에 1931년 결혼식을 올렸다. 초창기 편지에서 그들은 여느 연인들처럼 ‘황금 깃털’, ‘병아리’, ‘오이풀’ 등의 애칭을 부르며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타국살이를 하면서 앙투안의 잦은 비행으로 홀로 남겨진 콘수엘로는 친구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원한 반면, 비행에서 돌아온 앙투안은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며 안정적인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콘수엘로는 편지에 앙투안이 비행을 떠난 후 혼자 남겨졌을 때의 절절한 외로움과 기다림의 고통을 호소하고, 앙투안은 비행장으로 마중나오지 않고 집을 비운 채 돌아오지 않는 그녀에 대한 원망과 불안감을 쏟아냈다. “어린 왕자는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내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꽃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탓에 몹시 불행해졌다”(‘어린 왕자’ 8장 중)는 아내를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하다.
결국 두 사람은 앙투안의 연인이었던 넬리 드 보귀에 때문에 갈등 끝에 1938년부터 별거했지만, 그 기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사랑하는 영원히 잃어버린 사람, 당신이 결혼반지를 다른 여자들에게, 다른 손가락들에게 끼워주는 바람에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되었지”(파리, 1939년)

두 사람은 끝없이 다투면서도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창작 활동을 독려하는 동반자였다. 콘수엘로는 194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뉴욕에 있는 앙투안에게 다시 돌아왔고, 앙투안은 이듬해 ‘어린 왕자’를 썼다.
조종사였던 앙투안은 동료들에게도 많은 편지를 남겼지만 연인이나 아내였던 콘수엘로에게 보낸 편지는 더 없이 달콤하면서도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고통스러웠던 관계의 편린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관계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설레다가 불안에 떨고, 의심하다가 결국 상대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린 왕자는 앙투안 자신이며, 꽃이었던 콘수엘로가 앙투안의 삶과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생텍쥐페리의 종손자로 ‘생텍쥐페리 재단’을 이끌고 있는 올리비에 다게는 책에 대해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 가장 아름답고 진실된, 가장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기나긴 서정시, 기나긴 속죄, 그리고 고통스러운 용서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책을 통해 스타 부부의 알려지지 않은 삶과 ‘어린 왕자’의 탄생 비화, 참전을 결심한 지식인의 고뇌뿐 아니라 편지가 쓰인 당대의 맥락을 상세하게 기술한 각주 덕분에 생텍쥐페리의 삶과 시대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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