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등 탁구 치자 손흥민 “자제” 질책
선수들 간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져 파장
고참급 선수들 감독에 “이강인 빼달라” 요구도
감독 리더십 부재 와중 내부 갈등 증폭
축구협회 “사실 맞다” 인정… 논란 더 키워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지만 준결승의 고비를 넘지 못했다. 이번이 네 번째 아시안컵 출전이었던 대표팀 ‘캡틴’ 손흥민(31·토트넘)의 실망감도 컸다. 특히 지난 7일 요르단과 대회 준결승전에서 0-2로 참패 뒤 씁쓸한 표정으로 팬들에게 박수를 건네는 그의 손에는 흰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는 주장의 ‘부상 투혼’이 아니었다. 준결승 전날 대표팀에서 내분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팀의 단합을 중시한 손흥민이 이강인(22·파리 생제르맹) 등 일부 어린 선수들과 다툼을 벌이다 손가락을 다친 것으로 확인됐다. 클린스만호가 선수단 관리에도 실패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 매체 더선은 14일 “손흥민이 아시안컵 탈락 전날 팀 동료와 몸싸움을 벌이다 손가락 탈구 부상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곧바로 “사실이 맞다”며 인정했다. 협회에 따르면 요르단전 전날 저녁 식사 뒤 이강인 등 젊은 선수들 일부가 탁구를 하는 것을 두고 손흥민이 4강전을 앞두고 있으니 자제하라는 취지로 질책했다. 이에 이강인이 대들었고 손흥민이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지만, 손흥민이 피했다. 다툼이 번지려 하자 손흥민이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다쳤다.

이를 두고 클린스만 감독이 내부 관리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 현장에는 클린스만 감독도 있었지만 선수들이 서로 화해했다는 이유로 코치진은 별도로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전술 논란 등에 휩싸인 클린스만 감독의 유일한 강점으로 꼽혔던 대표팀 내부를 ‘자유롭고 화목한 분위기’로 만드는 소통 능력마저 무너진 셈이다.
더는 지켜보지 못한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는 요르단전에서 패스미스를 연발하며 두 골을 헌납하고, 유효슈팅은 ‘0개’를 기록하면서 완패하는 처참한 경기력으로 나타났다.
이강인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축구팬들께 큰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며 “앞으로 형들을 도와서 더 좋은 선수,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툼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표팀 내부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3월엔 김민재가 손흥민의 SNS 계정을 ‘언팔(구독 취소)’하면서 두 선수 사이에 불화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또 해외파와 국내파 간 갈등설은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스페인에서 성장해 정서가 다른 이강인과 손흥민 등 고참 선수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넓어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탁구 사건’이 두 선수의 감정을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전 뒤 손흥민은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선수를 보호해야 할 축구협회가 내부 논란을 곧바로 인정한 점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아시안컵 탈락 후 돌연 미국으로 떠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론과 임원회의에 불참하며 팔짱을 끼고 있는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의 책임론이 들끓는 가운데, 비난의 시선을 선수들에게 돌리려 한다는 지적이다. 손흥민의 국내 에이전트인 A씨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손가락을 다친 것을 확인했지만, 이유에 대해 선수가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선수단의 갈등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당장 한국 축구는 다음 달 예정된 2026 북중미 월드컵 예선전까지 분위기를 완전히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한국은 3월21일(홈)과 26일(원정) 태국을 상대로 월드컵 2차 예선 3, 4차전을 연달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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