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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우주항공청 아카이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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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01 23:15:25 수정 : 2024-02-01 23: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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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연말에 마감해야 할 프로젝트 과업들로 12월에야 뒤늦게 계절 옷 정리를 했다. 집안에 쌓인 옷들로 몇 날 며칠을 부산스럽게 보내야 했다. 우리는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에 맞춰 옷과 신발 등을 필요에 따라 선별하고 정리한다. 반면 시간이 축적된 인생의 통과의례에서는 필요보다는 의미를 중심으로 물품을 정리한다. 이때엔 무엇이 필요한지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가 관건이 된다. 돌아가신 부모님 유품을 정리했거나 삶에서 후손에게 남길 것을 생각한 사람들은 공감하는 지점일 것이다.

사람들이 한국천문연구원의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서 아카이브 연구사업을 수행해 온 나에게 기록물관리와 아카이브의 차이에 대해 물을 때마다 떠올리는 단상이다. 공공기관 기록관은 업무를 고려하여 보존과 폐기를 중심으로 관리 기준을 세운다. 그러나 아카이브의 관점에서는 모(母)기관의 역사를 증빙함으로써 미션을 지지하고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영실 한국천문연구원 기록정보학 박사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유럽우주청(ESA) 등 해외 주요 우주 전담 기구들이 기관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우주과학사 원천 자원으로 제공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두 기관 공식 아카이브의 공통된 특징은 전신 기관 역사가 주요 줄기라는 점이다. 1958년 설립된 나사는 1915년에 설립된 전신 기관 항공자문위원회(NACA)의 역사 기록을, ESA는 1964년 우주연구기관(ESRO)과 발사체개발기구(ELDO)의 두 전신 기관 역사 기록을 연구·개발해 제공한다. 나사와 ESA가 전신 기관 아카이빙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대표 천문우주과학 전담 기구로서 역사적 정통성과 업무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024년 새해에 우리나라에도 우주 전담 기구가 발족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우주항공청 설립이 추진된다. 법안에 따르면 우주항공청은 한국천문연구원을 소관 기관으로 설치하게 된다. 이로써 한국천문연구원의 50년 역사 또한 우주항공청으로 이관된다. 한국천문연구원은 1974년 국립천문대로 설립된 이후 국가대표 천문우주과학 기관으로서 새로운 과학 연구의 산실이 되어 왔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의 문서고에는 당시 사료들이 보존돼 있다. 1967년 과학기술처로부터 이관받은 국립천문대 기록물부터 대일청구권자금 기록물을 거쳐 한국 우주 개발의 리더들을 배출한 천문우주연구소 기록물까지. 이 사료들은 한국 현대 초창기 천문우주과학사의 맥이 현재 우주항공청의 설립 목적인 우주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및 국제 교류의 기조와 상통한다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제 우주항공청의 시간이 도래한 이상, 한국천문연구원 아카이브 사업은 국가의 과학사 연구 차원으로 진전될 필요가 있다. 나사가 전신 기관 NACA의 아카이빙을 통해 100년 이상의 미국 우주 개발사를 증빙하듯, 50년 한국천문우주과학사를 통해 선순환되는 우주항공청의 설립 목적을 드러낼 시간이 됐다. 마침 올해는 우주항공청 개청 원년인 동시에 한국천문연구원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시간이 의미로 발현될 때 아카이브는 탄생한다. 50년 한국 현대 천문우주과학사를 품은 우주항공청의 아카이브를 기대해 본다.


최영실 한국천문연구원 기록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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