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 특히 많은 위암
짠 음식 많이 섭취하면 발병률 4.5배↑
헬리코박터 감염, 서구인에 비해 높아
흡연 암발생 위험 2~3배 높여 피해야
‘바른 생활’에도 안심 못 해
유전적 원인으로 암 발생 가능성 있어
유전자 돌연변이 땐 발병 확률 최대 70%
일반인 살아가면서 암에 걸릴 확률 40%
‘1일 1마라탕’ ‘(8인분 양의) 점보식품 챌린지’ ‘도전을 부르는 6단계 매운맛’ ‘먹방을 위한 과식’….
젊은이들 사이에서 맵고 짠 음식, 자극적인 음식, 과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대 성인뿐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마라 맛’ ‘점보 챌린지’ 등에 빠져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앞다퉈 ‘인증 영상’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이런 유행이 있기 전부터 ‘위암’ 발생률이 높은 국가인 만큼 무분별한 유행 편승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국가암정보센터의 우리나라 성인 암종별 발병 현황(2021년 기준)을 보면 위암은 대장암, 폐암에 이어 3위(여성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영국 등의 경우 대장·폐·전립선·피부의 악성흑색종·갑상선암이 상위권에 들며 위암은 5위 안에도 들지 않는다.
◆마라탕, 거대식품… ‘유행 식습관’ 주의
위암은 어느 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암은 아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위염·장상피화생 등의 위장 질환, 자극적인 가공식품을 즐기는 식생활, 흡연, 음주 등 ‘생활 습관’에 더해 유전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최성일 강동경희대병원 외과 교수는 국내에서 위암 발병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유전적 요인 △높은 헬리코박터 감염률 △식습관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잘못된 식습관은 위암 발병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짠 음식, 매운 음식뿐 아니라 질산염·아질산염이 많은 훈제 음식 역시 자극 요소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짠 음식을 많이 섭취한 사람은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 발병률이 4.5배 더 높은 것으로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발간한 ‘세계 나트륨 섭취 저감 보고서(WHO Global Report on Sodium Intake Reduction)’에 따르면 한국의 나트륨 섭취는 4854㎎으로 WHO 하루 권고량(2000㎎)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다양한 장아찌와 양념, 국물 식사 등 짠 음식이 많은 탓이다.

최성일 교수는 “한국에서는 매운 음식이나 절인 음식을 많이 먹는데 이런 식습관은 만성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 등의 가능성을 높인다”며 “만성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은 순서대로 진행하지는 않고, 각각의 만성 염증성 자극이 위 점막의 변화를 가져오며 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상피화생은 위의 고유한 상피세포에 염증이 발생해 위 상피세포가 소장이나 대장의 상피세포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위암 발생률을 10배까지 증가시킨다.
최 교수는 이어 “단기간의 매우 강한 자극은 위 점막에 염증을 유발하며 위염, 위궤양의 원인이 되긴 하지만, 이런 식습관을 수년간 지속하지 않는 한 점막은 스스로 재생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뛰어나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며 “문제는 오랜 기간 이어진 만성적인 나쁜 식습관은 위에 나쁜 영향을 주게 돼 염증, 암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대사질환의 발생을 촉발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담배와 음주도 피해야 한다. 흡연할 경우 비흡연자보다 위암 발생 위험도가 2∼3배 높다. 위암이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성일 교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위암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 남성은 더 높은 흡연율과 음주를 하므로 위암 발생 위험 인자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바른 생활’ 유지하는데 위암… 왜?
진료실에서는 “나는 맵고 짠 음식도 안 먹고, 음주도 흡연도 하지 않았는데 왜 위암이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가끔 있다. 국내의 나쁜 식습관이 위암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위암을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한 탓이다.
최윤영 순천향대 부천병원 외과 교수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Nature Review)’ 발표 자료에 따르면 유전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위암 환자는 약 3%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에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유전자에 발생한 돌연변이로 암 억제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유방암과·난소암에 BRCA 돌연변이가 잘 알려졌듯 위암에서는 CDH1, MLH1, PMS2, MSH2, MSH6 등이 ‘유전성 위암’의 대표적인 유전자다. 유전성 위암의 종류는 크게 ‘유전성 미만형 위암’과 ‘린치 증후군’이 있다. 유전성 미만형 위암은 ‘CDH1’에 돌연변이가 있을 때 발생하는데, 이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살아가는 동안 위암이 생길 확률은 50∼70%에 이른다. 린치 증후군은 대장암에서 잘 알려진 유전성 암이지만, 위암 및 자궁내막암과도 연관이 있는 만큼 위·대장 내시경 및 초음파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
유전성 위암은 전체 위암 환자의 평균 발병 연령(60세)보다 10년 이상 빨리 발병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위에 두 개 이상의 다른 암이 있거나, 위암 외 다른 암이 동반되기도 한다.
최윤영 교수는 “위암은 세포 모양에 따라 장형과 미만형으로 나뉘는데, 미만형은 예후가 나쁘고, 젊은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한다”며 “위암이 직계 가족 중 2명 이상에서 발생했을 경우, 특히 미만형 위암이라면 유전상담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계 가족이 위암은 아니지만, 다른 암이 있는 경우에도 유전상담이 필요할까.
최윤영 교수는 이에 대해 “일반인이 기대수명(83.6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40% 수준”이라며 “사실상 직계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없는 가정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유전성 암은 암 발생 위험 유전자에 따라서 호발하는 암의 종류가 다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다만 “유방암, 대장암 등은 유전성 위암과 연관된 만큼 직계 가족 중에 이런 암이 있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전성 위암 유전자가 있다고 무조건 위암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또 유전성 위암도 아니고, 바람직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더라도 드물게 위암으로 진단되는 환자들도 있다.
최윤영 교수는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암의 원인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전성 암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어 있는 서구 쪽에는 위암이 드물고, 반면 위암이 빈번한 아시아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유전성 암에 대한 연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타 암종보다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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