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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위기 극복 ‘이민’에 답 있다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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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25 06:00:00 수정 : 2024-01-26 16:24:24
이종민·이민경·박지원·구윤모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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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
“출산율 제고 장기적 플랜 필요
블루칼라 공급 넘어 새틀 짜야”

韓, 사실상 ‘다문화 국가’ 진입… “갈등 최소화 종합처방 필요”

체류 외국인 수, 총인구의 4.89% 달해
노동 현장서 외국인 인력 수요 많지만
업무분산 탓 정책일관성 부족 등 문제
전문가 “전담 조직서 디테일한 관리를”

종교·문화 차이 인한 사회적 문제 해소
국민 의식 획기적 개선 작업 병행해야

“메르하바(안녕하세요)!”

 

지난 19일 점심 무렵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케밥 가게. 식당에 들어선 손님에게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아르바이트생 카산(25)씨가 튀르키예어로 인사를 건넸다. 손님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곧장 “헬로우. 웰컴!”이라고 영어로 고쳐 말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가게 안에선 금발의 외국인들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다른 낯선 언어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카산씨가 일하는 이 작은 가게는 다문화·다인종·다민족·다국적 국가로 변모하는 ‘글로벌 뉴 코리아’의 축소판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24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걷고 있다. 초저출산·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국가소멸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에 이민 유입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관점에서 외국인, 귀화한국인, 다문화와 관련한 포괄적 정책과 정부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대한민국은 체류외국인 250만명 시대를 넘어 300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24일 법무부·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거주 장단기 체류외국인 수는 250만7584명으로 전체 인구(5132만5329명)의 4.89%에 달한다. 전월보다는 8.1%, 전년보다는 11.7% 늘어난 수치다. 체류외국인 수는 2016년 200만명, 2019년 252만명을 각각 돌파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춤하다가 2022년부터 다시 증가 추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는 경우 다문화사회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국제적으로도 다문화 국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소멸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서는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대대적 외국인 유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 배경엔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한국’(뉴욕타임스)의 위기가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2023년 1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출생아 수는 1만7531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450명(7.6%) 줄었다. 이는 1981년 월간 통계 작성 이후 11월 기준 최저치다. 출생아 수는 지난해 4월(1만8484명)부터 8개월 연속 1만명대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이제 과거 블루칼라 중심이었던 단순 외국인 노동자 도입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적극적인 이민 유입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구절벽을 피하기 위한 출생률 제고 정책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자는 고민의 산물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3년 12월31일 기준 3593만1057명인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40년 2852만명, 2060년 2066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서광석 인하대 교수(이민다문화정책학)는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할 근본적인 대책은 출산율을 제고하는 방법이지만 단기간에 효과가 날 수 없다. 결국 나라 밖 인구를 유입시켜야 하는데 그게 바로 이민”이라며 “인구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을 우선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공공산후조리원에서 직원들이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민은 국가생존 위한 선택 아닌 필수

 

케밥집 알바생 카산씨는 한국어, 영어, 튀르키예어, 우즈베키스탄어 등 6개국에 능통한 언어 능력자다. 국내 대학에서 항공서비스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호텔 취업에도 성공했다. 목표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카산씨 속내는 복잡하다. 회사와 근로계약서까지 작성했지만 대학 전공과 취업 분야가 다르다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비자 연장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카산씨는 “근로계약서를 썼다는 건 기업(호텔)도 나를 인정했다는 의미인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내 전공이 항공서비스학이라 비자 연장이 안 된다고 했다”며 “출근을 해도 마음 놓고 직장을 다닐 순 없을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카산씨가 처한 상황은 국가소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행정은 외국인을 내쫓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생존을 위한 외국인 유입 확대를 운운하기에 앞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이민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유민이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의 시스템에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이민정책 수립의 목표는 절대로 달성될 수 없다”며 “동일한 대상에 대한 유사사업의 중복시행, 정책대상의 규모 및 수혜 대상 산출 어려움, 예산의 편중과 사각지대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현재 정부의 외국인, 귀화한국인, 다문화와 관련한 대응은 여러 부처에 분산돼 체계적이지 못하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출입국·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은 법무부, 외국인 근로 관리는 고용노동부, 다문화가족 지원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하고, 각 지방자치단체도 나름의 개별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노동 공급의 차원을 넘어 미래를 위한 사회통합의 관점을 포함한 새로운 틀에서 외국인, 이민정책이 작동할 수 있는 포괄적 전담기구가 필요하다. 임동진 순천향대 교수(행정학)는 “이민정책은 한 분야에 한정할 수 없고 산업과 교육, 지역 등 국가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라며 “산재해 있는 정책을 이민청 같은 전담 조직을 통해 체계적이고 디테일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민청 만병통치약 아니다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법무부가 발표한 ‘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에는 외국 인력 관리 방안과 이를 총괄하는 이민청 신설 계획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취업비자의 분야별 발급 규모를 사전에 공표하는 취업비자 총량 사전 공표제 도입 △가사 및 요양보호 등 돌봄 분야 외국 인력 도입 △숙련기능인력 규모 증대 등의 방안이 담겼다. 외국 인력을 늘려 노동력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에 대처한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정부 계획은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노동인력 감소와 고령화를 일찍이 체감한 만큼 이민자 수용 확대로 소멸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임동진 교수는 “지방대학과 지역비자를 연계하거나 그 가족도 함께 거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역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방대학,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게 된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도 영주권을 획득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민청 신설은 결국 입법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는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청사. 뉴시스

윤석열정부 들어 여당 의원 주도로 발의된 이민청 관련 법안은 두 건이다. 2022년 7월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법무부 외청으로 이민청을 신설해 외국인 주민 지원의 체계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당 김형동 의원 대표 발의안 역시 외국인 정책 전담 조직을 만드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두 법안은 발의 후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이민청 신설에 대한 반대 기류가 형성됐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20대 국회에서 법안을 내고 추진했던 공약임에도 명분 없는 반대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민주당 다문화위원장인 윤영덕 의원은 “필요하다면 전담기구를 만들어 내실 있는 이민정책을 집행해야 한다”면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 없이 기구부터 만들자는 지금의 방식은 쉽게 납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외국인지원센터 앞에 외국인 주민들이 무료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비자정책 뛰어넘는 포괄적 관점 필요

 

이민청과 같은 전담기구가 단순히 외국인 인력 확보를 위한 비자정책 차원의 수준에서 머물면 ‘이민국가 대한민국’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민 문호를 넓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충돌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할 수 있는 갈등 요인을 완할 수 있는 대책을 포함한 포괄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종교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증대하고 불법체류자 관리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유럽처럼 우리 사회의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민청 수준의 논의로는 앞으로 대한민국에 제기될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크다. 김도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른 종교와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갈등 비용을 최소화할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관급 부처인 이민청보다 체급이 높은 장관급 이상의 상설 부처로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정부의 외국인, 귀화한국인, 다문화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할 기구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외국인정책위원회의 기능이나 위상을 강화하는 쪽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민시대의 도래가 불가피함을 알리는 국민의식의 획기적 개선 작업도 필요하다. 엠브레인퍼블릭 등이 1010명을 대상으로 2022년 12월 실시한 설문을 보면 ‘저출산·고령화 해소 위한 이민 활성화 정책‘에 대해 50%가 동의, 46%가 비동의 의견을 나타냈다. 김보람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런 우려에 대한 대안 없이 이민정책을 확대하면 이민정책 자체에 대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며 “숙의과정을 통해 여론을 반영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종민·이민경·박지원·구윤모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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