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는 한적한 모습이었다. 계산대 대기줄은 한두명 정도로 짧거나 사람이 아예 없는 때도 있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식당가 테이블은 빈자리가 많았다. 반면 일요일이었던 지난 7일 이곳은 새해 첫 주말을 맞아 장을 보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가족 단위로 마트에 온 시민들이 많았는데, 장보기 전후로 식당가와 놀이시설을 찾으면서 마트 전체가 사람들로 붐볐다.
주로 주말에 마트에 방문한다는 장종우(46)씨는 “마트가 주말에도 영업한다고 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마트 노동자들이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하게 된다는 문제에는 같은 근로자로서 공감이 된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기존에는 둘째·넷째 일요일에 휴업했는데, 일요일에 문을 열면 주말을 맞아 마트를 방문하는 소비자의 편의가 증진되는 동시에 마트와 주변 상권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게 돼 건강권이 침해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초구·동대문구 마트, 2·4주 일요일도 영업
이날 서울 서초구에 따르면 구는 이달 넷째주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다. 서초구에 있는 대형마트는 자율적으로 결정해 둘째·넷째주의 월요일 혹은 수요일에 휴업하게 된다. 동대문구는 2월 둘째주부터 수요일로 전환하기로 했고, 성동구도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상생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는 전국 모든 지자체가 동일하게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둘째·넷째 일요일로 지정했지만, 최근 들어 평일로 전환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지자체장이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위해 조례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을 명령할 수 있게 했다. 의무휴업일은 매월 이틀을 지정하게 했는데 공휴일 중에서 정하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앞서 대구시가 지난해 2월 전국 최초로 둘째·넷째 월요일로 지정했고, 청주시는 지난해 5월 둘째·넷째 수요일로 바꾼 바 있다.
지자체들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해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영업할 경우 소비자의 결정권을 강화하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구시가 의무휴업일 평일전환 후 6개월 간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슈퍼마켓, 음식점 등 주요 소매업(대형마트, SSM, 쇼핑센터 제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8%, 대형마트 및 SSM 매출은 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 노동자 의견 무시…건강권 침해”
반면 마트 노동자들은 의무휴업 평일 변경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강우철 위원장은 “유통산업발전법은 의무휴업의 도입 취지로 근로자의 건강권을 명시했는데, 의무휴업이 평일로 변경된 마트의 노동자들은 삶의 질이 악화하고 신체적·정신적 피로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해 8∼9월 청주 지역에서 근무하는 마트 노동자 32명을 상대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마트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변경된 이후 신체적·정신적 피로가 ‘늘었다’고 답한 이들은 각각 87.5%·81.25%에 달했다. 62.5%는 여가 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고, 가정생활·사회생활에 참여하는 정도가 ‘줄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71.88%, 62.5%를 기록했다.
강 위원장은 “현행법은 의무휴업일을 결정할 때 이해당사자와 합의하게 했는데, 지금 지자체에서 상생협약을 맺을 때는 마트 점장이 들어가서 사용자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며 “오는 17일까지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에 대한 동대문구 마트 노동자들의 반대 의견서를 구청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요일 영업한다면 인력충원·휴일수당 필요”
시민들은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을 반기면서도 “마트 노동자 입장도 공감된다”고 입을 모았다. 평일 의무휴업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주말에 마트를 방문하기 편리하다는 점이 꼽혔다.

이날 어머니와 함께 서초구 대형마트를 찾은 강모(38)씨는 “전통시장 매출을 위해 대형마트가 주말에 쉬었던 건데, 어차피 시장은 갈 사람만 간다”며 “직장인은 주중보다 주말에 장을 보기 때문에 일요일에 쉬면 토요일에 마트를 갈 수밖에 없어서 토요일에 계산대 대기줄에 사람이 늘어설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고 토로했다.
특히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에는 주말이 편리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한미성(39)씨는 “주말에 가족끼리 같이 장 볼 때도 있는데 그게 (휴무일에) 걸리면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던 이철민(45)씨도 “맞벌이 부부라 주로 주말에 마트를 찾는다”며 “격주 일요일로 마트가 휴업하기 때문에 매번 검색을 먼저 하고 오지만 가끔 잘못 왔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의무휴업일 변경에 따라 마트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도 시민들 의견이 모였다. 최석준(42)씨는 “보통 주말에 마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면 좋을 것 같다”면서도 “주말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는 수당을 조금 더 준다든지 교대로 근무하게 하는 방향으로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강씨 또한 “일단 마트가 사람을 더 뽑아서 주말에 일하는 시프트를 따로 만들고 일요일에 근무한 사람에게는 휴일 수당을 줘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마트노조에 따르면 서초구와 동대문구 대형마트는 노동자가 둘째·넷째 일요일에 근무해도 휴일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강 위원장은 “사측은 근로자대표가 동의했다면서 휴일 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근로자대표는 실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동대문구 마트 노동자들은 오는 17일까지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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