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통한 점령만이 北 통일 노선
언제든지 전쟁 가능 기정사실화”
‘통일 지향 특수관계’ 합의 폐기
통전부 격하·조평통 폐지 전망
군사정찰위성 올 3번 발사 예고
신원식 “北 도발은 파멸의 전주곡”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민족관계가 아닌 국가 간 관계로 전환한다고 선언하고, 전쟁을 통한 남한 점령만이 북한의 통일 노선이라고 밝혔다. 대남 노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며 초강경책을 선언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북한 최선희 외무상이 대남 사업 부문 기구들을 정리하라는 김 위원장의 지시 이행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전날 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했다며 대남 기구 정리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지시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통일전선부 위상 격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폐지 등으로 예상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외무상이 지시를 이행하는 것으로 미루어 통전부가 외무성에 흡수된 것 같다”며 “앞으로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의 하위 개념화하고 한반도 문제 주도권이 북·미에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지난달 26∼30일 열린 회의 마지막 날 김 위원장은 2024년 투쟁 방침을 선언하며 대남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북남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교전국 관계로 고착됐다”고 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끝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언제든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는 군사행동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당이 내린 결론은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것들과 그 언제도 통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남북은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등을 통해 무력통일에 반대하고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임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의 노선 수정은 이를 폐기하는 것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것에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 체제 특성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도 올해 3번 더 발사하겠다고 했다. 또 국방력 발전 5대 중점 목표 중 “미진된 과업을 빠른 기간 안에 집행”하겠다며 “제3차 함선 공업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핵잠수함 건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의 전원회의 연설을 녹화 방영하면서 배경 영상으로 한·미·일 정상의 미국 캠프데이비드 회의 모습을 이용했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TV에 윤 대통령 등 한·미·일 정상이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외부 위협을 강조하고 주민들의 적개심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도발적 망동은 곧 파멸의 전주곡이 될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한편 북한은 대내 경제 성과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급박했던 목표가 “농사를 잘 짓지 못해 산생된(생긴)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이었다며 올해 식량난이 극심했음을 드러냈다. 다만 “알곡 고지(식량 목표)를 103% 달성”해 식량난은 극복됐다고 했다.
회의에서는 청년, 학생들의 복지 문제가 별도 안건으로 다뤄질 정도로 중시됐다. 통일연구원은 “교복, 가방 등 학생 필수 용품을 무상 공급하는 시책 사업이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수령’의 정치사업으로 격상됐다”고 분석했다. 한류로 인한 청년 세대의 사상 이완에 철저히 대응하는 동시에 딸 김주애 또래 세대의 복지 향상을 업적으로 삼아 향후 김주애 우상화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 위원장과 딸 주애가 주북 외교단과 전원회의 참가자, 주민들이 초청된 대규모 송년 행사에 참석했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노동신문은 통상 1월1일자에 김 위원장 신년 메시지나 노동신문 사설을 실었는데 이번에 관례를 깬 것이다. 조선중앙TV에는 김 위원장이 주애 볼에 입을 맞추며 애정을 과시하는 장면도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전원회의를 하루 먼저 마치고 미리 결과를 보도한 것은 파격”이라며 “마치 새해 첫날부터 김주애를 띄우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