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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의 설계자' 들로르 전 EU 집행위원장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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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28 10:09:47 수정 : 2023-12-28 10: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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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95년 EU 전신 EC 집행위원장 지내
단일 시장, 단일 통화 '유로화' 도입 등 업적
'영국 우선주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는 불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단일 통화인 유로화(貨) 탄생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자크 들로르 전 EU 집행위원장이 9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고인을 “유럽의 설계자”라고 부르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27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프랑스 파리의 저택에서 수면 도중 숨을 거뒀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자크 들로르(1925∼2023) 전 EU 집행위원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1925년 파리에서 평범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사회주의자로서 사회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유럽의회 의원 등을 지내다가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당 정부가 출범하며 중용됐다. 1984년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일하며 프랑스는 물론 유럽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었다.

 

고인은 1980년대 중반 프랑스 국내정치 무대를 떠나 EU로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공동체(EC)로 불린 EU는 지금과 같은 단일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화 역시 프랑스는 프랑, 독일은 마르크 등 각자 고유의 화폐 단위를 썼다.

 

1985년 1월 EC의 제8대 집행위원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5년까지 10년간 재임하며 EU로의 확대·개편을 준비했다. 단일 시장과 단일 통화,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솅겐 협정 등 오늘날 EU의 토대가 된 청사진을 그렸다. 고인의 가장 커다란 업적으로 통하는 것이 EU 회원국의 단일 화폐 유로화의 탄생이다.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도입된 유로화는 오늘날 미국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화로 꼽힌다.

 

그의 임기 동안 EU는 회원국 수를 늘리며 정치적·경제적 영토를 크게 넓혔다. 외신은 현재 핀란드부터 포르투갈까지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는 ‘들로르가 지은 집’으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자크 들로르 전 EU 집행위원장(왼쪽)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겉으론 웃고 있으나 두 사람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게티이미지 제공

고인이 EU 집행위원장으로 재직한 시기는 영국에서 보수당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한 기간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 시절 영국은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EU에 반감을 드러내며 독자적 노선을 걷곤 했다. 고인은 대처 총리와 끊임없이 충돌했는데, 결국 영국은 흔히 ‘브렉시트’로 알려진 EU 탈퇴를 강행하게 된다.

 

1995년 고인이 10년 임기를 마치고 EU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났을 때 가장 유력한 차기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 꼽혔다. 실제로 미테랑 대통령이 사회당 정권을 이어갈 후계자로 고인을 낙점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고인은 과감하게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해 70세가 된 점을 들어 “지금까지 50년을 쉬지 않고 일해 왔으므로 여생은 가족과 함께 보내며 삶의 균형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공직을 떠난 뒤 그는 ‘유럽 연방주의’ 촉진을 위한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최근엔 유럽의 포퓰리즘을 경고하고 브렉시트, 곧 영국의 EU 탈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접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유럽의 설계자”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벨기에 출신인 샤를 미셸 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고인에게 “위대한 프랑스인이자 위대한 유럽인으로, 유럽의 건축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찬사를 바쳤다. 독일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EU 집행위원장은 고인을 “유럽을 더 강하게 만든 선구자”ㄹ고 평가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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