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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베리야 - 유호민

마지막 가족여행의 마지막 저녁, 바지락죽이 유명하다는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아빠가 “바지락이 잘못하면 모래가 아작아작 씹히는데 이건 그런 게 하나도 없이 아주 맛있다”고 했고, 모두들 동의하며 해감 잘 된 바지락죽을 맛있게 먹었다. 잠시 후 아빠가 다시 “바지락이 아작아작 씹히는 거 하나도 없이 아주 맛있다”고 했고, 우리는 또 동의했고, 그리고 잠시 후 아빠가 또 “바지락이 아작아작……”을 되풀이했을 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아빠가 다시 “바지락이……”를 시작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 그 아작아작 좀 그만하세욧!” 마치 합창처럼 외쳤고, 그 절묘한 타이밍에 재미있어하며 모두 크게 웃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족들은 화장실로 매점으로 전망대로 이리저리 흩어지고 나와 아빠 단둘이 남아 있었다. 아빠는 난 지금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는데 나는 그 순간 아빠가 방금 다녀온 여행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걸 눈치챘다. 아빠의 손에 엄마의 핸드백이 들려 있는 게 보였다. 문득 핸드백은 아빠가 자의로 들고 있다기보다는 아빠 손의 일부인 것처럼 거기에 항상 있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이제 곧 돌아올 거라는 표시이고, 그래서 아빠는 그곳이 어딘지 도무지 모르더라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였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치매 명의라는 대학병원 교수에게 진료를 예약했다. 교수 진료 전에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는데 치매 검사 사전 인터뷰를 한 임상심리사가 엄마와 나를 따로 만난 자리에서 의문을 표했다.

“말씀도 아주 논리정연하시고, 유머도 있으시고, 기억력도 잘 보존되어 있으시던걸요? 최근에 일본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시던데,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일본 여행은 여러 번 하셨지만 최근에는 가신 적이 없어요. 4월 생신에 온 가족이 제주도에 갔었고 지난달에는 서해안에 가서 바지락죽을 먹었는데, 한 번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세요. 원래 머리가 굉장히 좋으신 분이고, 본인의 기억력이 망가진 걸 가족들에게도 감쪽같이 숨겨오셨어요.”

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온 임상심리사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전부 일본 갔었다고 하시네요. 지난달에도, 4월에도, 전부 일본 갔다 오셨다고. 말씀을 너무 조리 있게 잘하셔서 미리 정보를 듣지 않았다면 또 속아 넘어갔겠어요.”

정식 검사 결과 아빠의 치매는 이미 심한 상태로 새로운 기억은 전혀 입력되지 않는 게 밝혀졌다. 기존의 기억도 많이 사라졌지만 기본 지능이 뛰어나서 정상 생활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주 이른 나이에 암에 걸려서, 또 어떤 분들은 고혈압이나 당뇨 합병증으로 천천히 산을 내려가죠. 치매도 그 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산에 올라갔다 내려가야만 하고, 그 길이 치매라고 해서 유독 비극적으로 여기고 온 가족이 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어요. 마음을 편하게 갖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가장 좋은 치매 치료법입니다.”

아빠를 진단한 치매 명의는 그렇게 말했다. 예습복습에 충실하고 교과서로만 공부했다는 전국 수석의 말처럼 공허했지만 그러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해 아빠 생신 선물은 갈색의 푸들 강아지로 했다. 시간 맞춰 밥을 주려면 머리도 쓰게 되고, 산책을 시키며 운동도 하시고, 정서 안정에도 좋을 거라는 의도였다. 엄마는 강아지 이름을 브라우니라고 지었지만 아빠는 브라우니를 기억하지 못하고 초코라고 불렀다. 초콜릿 색이어서가 아니라 쪼끄매서 쪼꼬, 작다는 뜻이었다. 옛날 우리 집 마당에는 시고르자브 종, 아니 서우르자브 종 개들을 풀어놓고 길렀는데 아빠는 새로 강아지가 태어날 때마다 쪼꼬라고 불렀다. 그 강아지가 성견이 되어도 이름은 여전히 쪼꼬, 새끼가 태어나면 쪼끄마니까 또 쪼꼬. 아니면 쪼코거나 초코거나. 브라우니라는데 왜 자꾸 초코라고 해요! 엄마가 잔소리를 했지만 아빠는 하루 종일 초코야를 반복했고 결국은 엄마도 포기했다. 그러나 정작 초코는 이름을 아빠에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부르면 쳐다보지 않았다. 똑똑한 푸들 녀석은 아빠에게 치매가 있다는 걸 알아봤는지 은근히 아빠 위에 군림하려고 했다. 노부부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은 동네에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아빠가 초코에게 끌려가다가 엄마가 넘어지는 일이 빈발했다. 결국 엄마도 아빠도 초코도 산책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서 자주 나가지 않았다.

아빠는 강아지 대신 화분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다. 화분에 물 준 것을 잊어버리고 주고, 또 주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물을 주다가 엄마에게 구박을 받았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너무 웃자라서 집 밖으로 쫓겨났고, 물을 적게 줘야 하는 종류는 뿌리가 썩어버렸다. 그러다가 물 주는 걸 잊어버리면 또 며칠이고 몇 주고 그냥 지나갔고 엄마가 발견하지 못하면 말라 죽는 식물들이 생겨났다. 그 와중에 뜻밖에도 빨간 꽃을 탐스럽게 피우는 식물이 있었다.

그림=조미형 작가

*

“경원 언니, 이거 외삼촌 집에 있던 거 가져온 거야?”

고종사촌인 숙희는 그 꽃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숙희는 내가 처음 만든 라떼의 하트 무늬를 보고 그 뭐지? 몬스터? 구멍 뻥뻥 뚫린 커다란 이파리 있잖아, 그거 같다, 하고 놀렸었다. 몬스테라도 모르는 숙희가 부겐빌레아를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동남아에서, 하와이에서, 그리고 호주에서 지천으로 늘어져 있는 걸 봤다는 자랑 끝에 부벤게니아? 부넨벨리나? 꽃 이름을 더듬거리자 경주언니가 말했다.

“부겐빌레아.”

그러나 숙희에겐 소용없었다.

“부겐비베아? 부닌게리야?”

숙희는 다섯 음절의 무한 조합을 만들어내고, 경주 언니의 입에서 으이그 소리가 나올 것 같아 내가 막았다.

“붉은 베리야.”

“붉은 베리야?”

“응, 불근베리아. 불겐베레아. 부겐빌레아.”

“호오, 그럴듯하네요.”

숙희의 딸인 서현이 감탄했다.

“아빠가 저 꽃 처음 사 오셨을 때 들은 얘기야. 동대문 복잡한 길바닥에 화분 파는 할아버지가 있더래. 너무 예쁜 빨간 꽃이 있는데 처음 보는 거라 이름을 물었더니 그 할아버지가 그러더라는 거야. 붉은 베리야.”

“베리야가 뭐예요?”

서현의 질문에 언니가 대학생이 돼서 베리야도 몰라, 들으라는 듯 혀를 찼다.

“언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저 옛날 스탈린의 시대 인물을 요즘 애들이 어떻게 알겠어.”

“하긴 우리 학교 애들은 베리야는커녕 후르시초프도 모르더라.”

참다못한 서현이 슬쩍 빈정댔다.

“경주 이모. 요즘은 후르시초프가 아니라 흐루쇼프라고 해요. 후르시초프는 쪽발이들이 발음이 딸려서 그렇게 부르는 거고.”

언니는 오, 명문대생은 우리 지잡대 애들하고는 다르네, 비죽거렸다. 언니에게 대학교수다움 같은 걸 기대하지는 않지만 인간으로서 할 말과 안 할 말은 있지 않은가.

“언니, 보통 사람들은 베리야 관심 없어. 우린 아빠 덕에 알았던 거고.”

아빠를 들이대자 비죽대던 언니가 찔끔 숙연해졌다.

딸들에게 소련 정치가의 이름을 알려준 아빠는 혁명가나 사회운동가가 아니었고 사회학과나 사학과 교수도 아닌 공대 교수였다. 아빠는 정치나 사회 경제, 사상이나 이념, 이런 것들에 대해 진지한 적이 없었다. 베리야에 대해서도 엄마가 시키는 악역 심부름을 하면서 엄마가 히틀러고 내가 히믈러라느니, 엄마는 스탈린이고 내가 베리야라느니, 우리 앞에서 엄마 몰래 투덜거려서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아빠는 모르는 것이 없이 박학다식했지만 유독 쓸모가 없는 것들에 관심이 더 많았다. 아빠의 전공이 항공우주공학인 건 다행이었다. 우주는 아빠가 제일 관심 있는 분야였으니까. 우주보다 차원 이동이나 시간여행 같은 SF에 더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판타지나, 심지어는 무협물에 더 진지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빠는 훌륭한 교수였다. 아빠는 전공 서적뿐 아니라 일반인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우주 이야기 같은 책들도 썼다. 책상에서 머리 쓰며 하는 일은 뭐든지 척척, 글이 재미있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몇 권이나 되었다. 교수 월급이나 책의 인세는 턱없이 비싼 가정용 천체망원경이나 끝내 출판되지 못한 해외 SF소설 판권료들, 그리고 아빠가 시도했던 황당한 사업들 자금으로도 부족했지만, 근면 검소하면서도 투자의 귀재인 엄마 덕에 우리는 마당 있는 집에서 독특하고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빠의 치매는 예상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익숙한 일상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아빠는 좋은 머리로 기억 결손을 숨기며 거의 정상처럼 보이는 생활을 유지했다. 손주들의 이름을 모두 잊어버린 아빠는 딸들이 찾아가면 그래, 애들은 뭐하니? 하는 질문으로 정보를 끌어내고, 우린 눈치껏 큰애 아무개는 몇 학년인데, 하는 식으로 아이에 대해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나서는 딸들을 반가워할 뿐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아빠 작은딸 경원이 왔어요, 아빠 큰딸 경주 언니는 대학교수라 학교에 가 있고…… 길고 장황한 인사를 되풀이해야 했다.

그렇게 평온한 척 십 년을 버텨낸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매사에 정확하고 꼼꼼하던 엄마가 식사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뇨약만 꼼꼼하게 잘 챙겨 드신 게 화근이었다. 골목길을 걸어오다가 저혈당이 왔고, 중증 치매 환자인 아빠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자 아빠의 상태는 급격히 불안해졌다. 엄마의 죽음을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집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외출할 때마다 아빠가 들고 다니던 엄마의 가방도 그날 골목길에서 사라졌고 아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낮에는 요양보호사에게 아빠를 맡겼다. 요양사 퇴근 후에는 언니와 번갈아 당번을 하며 저녁을 차리고 엄마의 물건을 정리했다. 야무지고 깔끔하던 엄마도 늙어가면서 온갖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 놓았다. 평생 검소했던 엄마였는데 거의 4캐럿 크기의 반지가 나와서 깜짝 놀랐지만 반지 상자 아래에 경원이 생일선물이라고 적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몇십 년 전 꼬맹이 딸에게 받은 유리 반지까지 보관 중이니 우리 자매 초등학교 시절 성적표와 상장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건 당연했다. 언니는 역시나 재빨리 상장을 세어보고 내 상장이 두 배네, 기어코 한마디 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기록해온 일기와 가계부는 기본, 부모님 혼사 때 엄마 함에 들어 있던 혼서지부터 시작해서 아빠의 월급명세서 수백 장, 잔고가 없는 통장 몇 상자, 저금을 할 때마다 작성했던 무수한 계약서들 중에, 그 보험 증서도 있었다.

계약자와 수익자는 아빠. 피보험자는 엄마. 엄마가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 혼자 남겨질 아빠를 위해 가입한 그 가슴 뭉클한 보험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이 생겼다. 엄마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에게 엄마의 사망보험금 타러 가자고 얘기할 수가 없었다. 보험금이고 뭐고, 아빠는 엄마 없이 외출할 생각이 없었다. 엄마의 가방이라도 있으면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니 나가자고 속여볼 텐데 가방조차 분실되었고, 더 문제는 사라진 가방 속에 아빠의 신분증과 인감도 들어 있어서 우리가 대리인으로 갈 수조차 없게 된 것. 결국 몇 차례에 걸쳐 보험회사에 사정을 설명한 끝에 보험사 직원들이 아빠의 집으로 방문해서 확인 후 보험금을 지급해 주기로 했다.

찾아온 직원은 두 사람이었다. 명함에 의하면 보험설계사 장요한과 계리팀의 김이삭, 이름도 비슷한 젊은 남자 둘이 친구인 것 같았다.

“두 분 다 기독교도이신가 봐요?”

“제 이름을 지은 건 제가 아닌걸요.”

김이삭이 웃으며 받아넘기고는 아빠에게 인사를 했다.

“저 교수님 팬입니다, 어릴 때 교수님 책 많이 봤어요. ”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아빠는 책이라니 무슨 책? 따위의 소리를 하는 대신 영리하게 물었다.

“많이 봤다니, 몇 살 때 읽은 어느 책이 제일 재미있던가?”

언니가 김이삭과 함께 아빠와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 나는 장요한과 보험금 수령 업무를 진행했다. 보험 처리가 끝나자 김이삭도 일어서며 작별 인사를 했다.

“두 분 교수님 말씀 재밌게 들었습니다.”

그날의 당번은 내 차례였다. 남편에게 전화하자 고생하겠네, 수고해, 같은 친절한 말끝에 “근데 장인어른이 당신 알아보기는 하시는 거야?” 하고 덧붙였다.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뭐 하러 거기 있냐는 말이구나, 잠시 대답할 말을 찾는데 남편이 집에 가 봐야 아무도 없겠네, 애들도 과학캠프 가 있고, 잔뜩 서운한 티를 내더니 친구나 찾아봐야겠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괜히 속이 타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아빠가 좋아하는 믹스너츠도 담아 가져왔다. 하지만 아빠는 아무것에도 손대지 않았다.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하소연했다.

“아빠, 아빠 작은 사위 진짜 못 됐어. 왜 나 결혼할 때 적극적으로 안 말렸어?”

아빠가 잠깐 고개를 갸우뚱, 뭔가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도 기억 못하는 아빠가 결혼을 반대했던 일을 기억할 리가 없었다. 내 말에서 정보를 찾아낸 아빠는 현명하게 대답했다.

“소극적으로 말렸는데 네가 안 들었잖니?”

그 말은 맞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남편은 아빠가 총애하는 제자였고, 유학 준비 중이던 그를 내게 소개한 건 아빠였다. 그러나 애제자가 유학 대신 변리사가 되어 특허사무실을 내자 아빠는 결혼을 반대하기 시작했고, 그가 의외로 사업 수완이 좋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우리의 결혼을 밀어붙였다. 아빠는 그를 돈독 오른 학자 취급하며 블랙 유머의 소재로 삼곤 했고, 눈치 빠른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많이 불편했다.

 

“아빠 말 듣는 건데 괜히 결혼했나 봐.”

 

외박하고 싶어서 안달이면서 마침 잘됐다 생색내는 잔머리 대마왕, 돈독 오른 이중인격자, 나는 남편 흉을 보다가 아빠가 주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릴 즈음 그 한철수네 와이프는 얼마나 속상할까, 다른 사람 이야기인 척 말을 맺었다.

 

5분쯤 지나 다시 말을 꺼내 보았다.

 

“아빠, 한철수 씨 말이야.”

 

아빠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했다. 한철수가 누군지 잊어버렸구나. 작은딸이 남편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것도 완전히 잊으셨구나. 나는 아빠의 기억력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아빠 작은 사위 한 서방, 오늘 일이 있대요. 애들은 캠프 갔고, 나 여기서 자고 갈게요.”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아빠를 상대로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아빠는 안방으로 나는 어린 시절 내가 쓰던 내 방으로, 옛날처럼 각자의 방으로 자러 갔다. 시간은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생색까지 내면서 외박하는 남편은 무얼하고 있을까. 남편 닮아 머리 좋고 똑똑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애들까지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이삭에게 받은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건 건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막상 연결이 되자 언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졸린 목소리가 묻더니 내가 누군지 밝히자 네? 무슨 일이시죠? 의아해했다. 그제야 당혹스러운 생각이 들어 대충 둘러댔다.

 

“저…… 저희 아버지랑 언니랑 무슨 이야기 하셨나 궁금해서요.”

 

“네에?”

 

반문한 그는 잠시 말이 없다가 마지못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름 이야기요. 언니분이 제 이름을 궁금해하셔서, 저는 무신론자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따서 지은 거라 하지 않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작을 따서 지은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시모프 이야기를 했고요. 근데, 술…… 드셨습니까?”

 

“조금요. 그런데 아시……프가 누구인가요?”

 

“아시모프, 유명한 SF 작가인데 모르십니까? 아버님 책에도 자주 나왔고, 언니분은 아시던데요. 근데, 그게 그렇게 궁금해서 밤 열한 시가 넘어 전화를 하셨나요?”

 

아차, 이 젊은 남자는 내가 자기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이 있는 거라고 오해한 걸까. 열몇 살은 어린 남자라 너무 편하게 생각한 게 실수였다. 아무리 어린 애라도 이런 시간에 전화할 상대는 아니었는데, 내가 술기운에 실수했구나, 뒤늦게 창피하고 후회됐지만 그렇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저 그쪽에 관심 없어요!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솔직히, 생각지도 못한 보험이라, 저희가 요즘 상황이 어렵다 보니 언제쯤 보험금이 나오나 궁금하기도 하고, 빨리 좀 나왔으면 해서요……”

 

돈 욕심에 정신 나간 푼수 아줌마로 보이는 게 어린 남자에게 반한 변태 아줌마보다는 낫지 않겠나, 급한 대로 변명을 했다.

 

“그런 일은 장요한 선배에게 물어보세요. 저는 계리사라 잘 모릅니다. 전 좋아하던 책의 저자 분을 만나러 간다길래 따라갔을 뿐이에요. 장요한 선배가 어려서 다니던 교회 형이거든요. 자, 이제 술 그만 드시고 주무세요.”

 

“잠깐만요, 하나만 더요. 아빠도 그, 아시모프를 기억하시나요? 아시모프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

 

긴 한숨에 이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화난 듯한 목소리가 다다다다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좋아해서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심리역사학 비슷한 걸 찾다가 경제학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고, 저는 같은 이유로 통계학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김이삭의 참을성은 끝나고 통화도 끝나버렸다.

 

그 보험금 덕분에 아빠는 언니 옆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언니네 동네 집값이 비싸 집을 팔고 보험금을 보태 작은 집을 구해야 했다. 집을 파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인감은 분실 상태이고, 아빠의 협조 없이는 새로운 인감을 등록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결국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그래도 옛날처럼 금치산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후견인이라니까 무슨 서양 귀족 도련님 같지 않니?”

 

언니가 해맑게 말했다. 오래 살아온 집을 떠나는 것은 치매 환자에게 좋지 않다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아지 초코는 옆집 사는 언니가 맡아 키우며 아빠에게 자주 보여주기로 하고, 둘 곳이 없어진 화분들은 내가 가져왔다.

 

*

 

“유리창에 저 나팔꽃은 압화를 일부러 붙여 놓은 거예요?”

 

유리창 위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나팔꽃이 납작하게 달라붙는 걸 본 서현이 물었다.

 

“아니. 작년에 피었던 나팔꽃인데, 햇빛을 향해 가다가 투명 유리창이 있으니까 뚫고 나갈 것처럼 직진하더라. 유리창에 흡반같이 달라붙어서 태양광 건조, 미라가 돼 버렸어.”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깊은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감? 말라붙은 나팔꽃에? 경주 언니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었다. 경주 언니는 궁금한 게 많았다.

 

“쟤는 왜 미친년 산발한 거처럼 됐니?”

 

스투키였다. 원래는 굵은 기둥들처럼 가지런히 자라는데 우리 집에 온 후 새로 나는 잎들은 사방팔방 제멋대로 뻗쳤다. 남편이 가끔 주인 닮는군, 하고 나를 놀리곤 했는데, 미친년 산발한 것 같다니.

 

“언니, 교수님 품격이 왜 그 모양이야.”

 

“딱 맞는 표현 두고 둘러 말하는 건 품격이 아니라 멍청한 거지.”

 

숙희의 관심사는 여전히 부겐빌레아였다.

 

“근데 저 붉은 베리야는 더운 지방에 사는 건데, 왜 추운 겨울에 꽃이 피었지?”

 

식물원이나 온실도 아니고 부겐빌레아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 화분이 살아남을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아빠는 또 아무 생각 없이 아무거나 사들고 왔다고 엄마에게 지청구를 들었을 뿐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계획 따위는 전혀 없었다. 엄마는 추운 겨울을 한 데서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며 마당에 옮겨심지 않고 분갈이만 해주었다. 화분에 지지대를 여러 개 세우고 늘어지는 가지들을 고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넝쿨처럼 감아 올라가지 않고 이리저리 휘어지기만 했다. 가지가 가늘고 휘청거리는 데다 꽤 날카로운 가시까지 있어서 가운데 중심 줄기들만 지지대 주변에 묶어 주는 게 고작, 자라나는 가지들은 이리저리 건들거렸다. 여름에는 마당에 내놨다가 날이 추워지면 실내에 들여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 자라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부피까지 커졌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겠지만 어찌어찌 버티던 중 어느 해 겨울이 지날 무렵, 길게 늘어진 가지 끝 쪽에 조로롱 꽃이 피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놀랐다.

 

“열대식물이 한국에서 사는 것도 신기하구만 겨울에 꽃이 피네? 보일러를 너무 땠나?”

 

엄마가 새삼 난방비를 계산하자 언니가 말했다.

 

“열대식물 기준으로는 그동안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는 됐을 테니까 이제 영하 3도 되면 한여름이다, 이런 거 아닐까?”

 

“아니, 온도가 내려갈 때는 열대식물 기준이 되고, 온도가 올라갈 땐 북극 식물 기준이 되냐?”

 

아빠가 반박했다. 이런 일은 처음은 아니었다. 기억력이 완전히 사라진 아빠였지만 다른 부분의 지능은 남아 있어서 가끔씩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처음 가본 커피전문점의 메뉴판을 파악하고 엄마에게 설명을 해준다든가, 좌우대칭으로 쓰인 영어광고판을 단숨에 읽어낸다든가. 그런가 하면 엄마가 없는 사이 화분들을 마당으로 내놓아서 잔소리를 듣는 것도 매년 이른 봄마다 일어나는 일이었다.

 

“화분은 식목일 지난 다음에 내놓고, 선풍기는 추석 지난 다음에 집어넣으라고요!”

 

그 말은 치매 이전에도 매년 듣는 말이었다. 치매 발병 전에도 집안일은 몽땅 엄마 차지였건만 어째서인지 화분 내놓고 선풍기 집어넣는 일에는 부지런했다.

 

“머리가 그렇게 좋으신 양반이 왜 그 간단한 걸 기억 못할까?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유?”

 

그러면 아빠는 평균기온과 강수량 변화 추이가 어쩌구, 아무도 알지 못할 그래프까지 그려 보이며 지금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빠가 세상에 소문난 애처가라는 사실은 내게는 일종의 아이러니였다. 물론 아빠가 가부장의 권위 같은 걸 내세우는 건 본 적이 없었고, 우리 집안의 실세는 엄마, 모든 일은 엄마 마음대로였다. 하지만 집안이 돌아가게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엄마 덕분에 아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가부장의 의무에서도 벗어났던 게 아닐까. 아빠가 하고 싶은 것들이 가정의 안위를 크게 위협하는 것들이 아니고, 본인이 번 돈을 몽땅 써버리거나, 벌 수 있는 돈을 벌지 않거나, 가만히 있으면 돋보일 수 있는 품위를 괜히 손상시키는 정도여서 다행이었을 뿐, 아빠가 엄마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 남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두 분은 취미도 전혀 달랐다. 엄마의 유일한 사치는 클래식 공연 관람인데 아빠는 반항하지 않고 동행은 했지만 졸다가 퍼뜩 깨서 박수를 치는 만행을 저질렀고, 아빠가 좋아하는 SF나 판타지 영화들은 엄마에게는 애들이나 보는 거였다. 아빠는 우리 자매를 핑계 삼아 세상 좋은 아빠인 척 애들이나 보는 영화를 같이 보고, 자장면이나 탕수육을 먹고, 결혼 전에 엄마랑 ‘귀타귀’나 ‘강시선생’을 보러 갔다가 명문대생이 저런 터리터리엉터리 영화가 좋다고 박수를 친다고 이별당할 뻔했다는 이야기 같은 걸 했다. 어느 날 음식이 나오기 전 화장실에 가는 언니 뒷모습을 쳐다보던 아빠가 측면 벽에 붙은 종이를 한참 보다가 내게 물었다.

 

“경원아. 저게 무슨 뜻인지 아니?”

 

거기에는 多不有時 한자 네 개가 쓰여 있었다. 아빠가 덧붙였다.

 

“너는 모르려나? 경주는 알 것도 같은데.”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의 내가 뭐라도 대답을 하고 싶었던 것도, 하다못해 내가 그 한자들을 읽을 수 있다는 거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많을 다, 아니 불, 있을 유, 때 시? 글쎄?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있기는 하다?”

 

그때 언니가 돌아왔고 아빠는 언니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언니는 슥 쳐다보고 망설일 것도 없이 툭 대구했다.

 

“다불유시? 다불유시가 뭐야?”

 

그러자 아빠가 대답했다.

 

“방금 갔다 왔잖니. 더블유 씨”

 

언니는 피식 웃었다. 언니도 모르잖아! 나만 혼자 억울해서 속으로 외칠 뿐 아빠도 언니도 아무 생각 없는 정말 시시한 농담. 그게 뭐라고, 아직까지 내 안에 그림자를 드러내며 내 정체를 맞춰봐 화두를 던지는 걸까.

그림=조미형 작가

*

 

언니 곁으로 이사를 했어도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제일 먼저 문제가 된 건 요양보호사였다. 거리가 멀어지자 몇 년 동안 오던 요양보호사가 그만두었다. 아빠는 낯선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거부하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이 골절됐고 수술을 하고 여러 합병증을 겪으며 오래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가까스로 퇴원할 정도로 회복은 되었으나 혼자 걸을 수 없게 된 건 물론이고, 치매가 급진행해서 목의 근육을 조절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어지고, 발음을 알아듣기도 어려워졌다. 걷지도 못하는 남자 노인을 돌보려는 요양보호사는 구하기 어려웠다.

 

장 요양사를 만난 건 아빠의 마지막 행운이었다. 장 요양사는 60대 초반으로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서 직접 간병하며 남편을 떠나보냈다고 했다. 부지런하고 싹싹하고 무엇보다도 환자에게 다정했다. 환자 상태가 좋을 때 스스로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껴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우리에게 보내주곤 했다. 아빠를 달래가며 식사를 시키고 목욕을 시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날 장 요양사가 깔깔 웃으며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동영상 속에서 무슨 이야기 끝인지 아빠가 요양사에게 묻고 있었다. 뭉개지는 발음을 대충 이해하자면 아빠의 말은 “그래 넌 집이 없니?”였다.

 

“아니 저어기 시골에 하나 있어요.”

 

“왜 시골에 집을 샀니?”

 

“돈이 없으니까요.”

 

그럼 집은 누가 돈을 줘서 샀니? 내가 벌어서 샀죠. 얼마나 벌었니? 조금밖에 못 벌었어요. 열심히 벌지 그랬니? 열심히 일해도 조금밖에 못 벌어요. 그런 대화가 오가다가 아빠가 말했다.

 

“그럼 내가 오바마나저가……”

 

목과 혀의 근육 놀림이 한계에 왔는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반복하고 손짓발짓을 동원해서 드디어 의사 전달이 되었다.

 

“내.가, 오.백.만.원, 꺼.내.다.가, 너.에.게, 줄.게.”

 

그 말을 이해한 요양사가 박장대소했다.

 

“그럼 따님들이 나 쫓아내요.”

 

장 요양사는 웃느라 보고 있지 않았지만 아빠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가셨고, 아빠답지 않게 진지했다. 나는 아빠의 그다음 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너 이 집에서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가도 돼. 나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엄마가 떠난 후 이 년 남짓, 초코가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열두 살이니 요즘 개들 나이로 요절이었다. 글쎄 우리 집 무식쟁이 남의편이 초콜릿을 막 줬나 봐, 축 늘어져서 헉헉대는데 너무 불쌍해서…… 경주 언니의 결론은 간단했다. 안락사시켰는데 아빠에게는 알리지 말자는 것. 하지만 뭔가 통하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아빠의 전신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40일간의 입원 끝에 세상을 떠났다. 장 요양사는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올 거라고 믿었던 우리는 좀 섭섭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입원 내내 간병하고 마지막 수습까지 도맡았으니 쉬어야겠지. 장 요양사에게 아빠가 한때 돌본 수많은 환자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49재 때는 가까운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다. 절반이 천주교도 기독교도인 친척들이 모여 어설프게 재를 올렸다. 숙희가 요양사는 안 불렀냐고 물었다.

 

“외삼촌이랑 친했잖아.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떠나시라고 부르지 그랬어?”

 

“숙희야! 이 년 반 만에 겨우 엄마 만나셨는데!”

 

짓궂은 언니의 말에 숙희는 나를 쳐다봤다.

 

“부담스러워할까 봐 시간 장소만 문자로 보냈어. 읽은 표시는 있는데 대답이 없더라. 바쁜가 봐.”

 

대충 눈치를 챈 숙희가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 외삼촌도 외숙모 만나셨겠지. 강아지도 만나시고. 이름이 뭐였더라?”

 

“초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던 서현이 대답했다.

 

“모두 만나서 행복하게 계실 거예요. 외삼촌, 외숙모, 초코.”

 

“초코, 쪼꼬, 쪼코, 초코들.”

 

언니가 말했다.

 

공양을 마친 친척들이 떠나고, 경주 언니와 고종사촌 숙희, 그리고 숙희의 딸 서현은 우리 집으로 모였다. 화제는 아빠보다 아빠의 집에서 가져온 화분들이었다.

 

“붉은 베리야 처음 본 게 브리즈번이었나? 야외 식당 울타리에 화려한 빨간 꽃이 엄청나게 늘어져서 아주 꽃으로 된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더라. 너무 멋있어서 꽃 이름을 물었더니 뭐라 대답을 하는데 왜 그리 안 외워지는지.”

 

“근데 저거, 빨간 꽃이 아니고 하얀 꽃이란다? 빨간 건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고, 가운데 꽃술처럼 쬐끄맣고 하얀 거, 그게 꽃이래.”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경주 언니다운 지적이었다. 하지만 숙희에겐 아닌가 보았다.

 

“신기하다. 우리가 꽃이라고 생각한 게 꽃이 아니라 고작 꽃받침이라니.”

 

경주 언니가 또 똑똑한 척 티를 냈다.

 

“꽃인 줄 알았는데 꽃받침인 거, 세상에 그런 게 한두 가진가. 겉모습에 속는 게 바보지.”

 

자기 엄마를 바보 취급해버리는 경주 언니에게 젊은 서현이가 톡 쏘았다.

 

“꽃이건 꽃받침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꽃받침이라도 웬만한 꽃보다 더 예쁜데.”

 

그때 벨이 울리고 뜻밖에도 장 요양사가 찾아왔다. 49재에 가보고 싶었는데 다른 환자들 돌보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고, 지금 퇴근길에 따님들이라도 잠깐 뵙고 할 말이 있어 들렀다고 했다. 장 요양사는 치매라도 그렇게 예쁜 치매는 처음 보았다, 지금 환자는 더 나이 많은 영감인데 추근거려서 아주 힘들다면서 아빠와 비교하기도 했다. 처음 돌보게 되었을 때 남녀 내외하느라 손도 못 대게 하던 이야기며, 끝까지 자기를 참 좋아하고 편하게 해주려고 하셨다는 이야기 끝에 내가 너 오백만 원 줄게, 동영상 이야기도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 집에 온 이유를 말했다.

 

“언젠가 교수님이 조그만 상자를 소중하게 쥐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마 내가 돈은 없지만, 이걸 너에게 주겠다? 그러시는 거 같은데…… 상자를 열어 보니까, 글쎄, 왕다이야 반지가 아니겠어요? 가슴이 막 두근거리다가 다시 보니 애들 장난감 반지더라고요 호호.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서 소중히 보관했었는데, 따님들께 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기념으로 간직하세요.”

그림=조미형 작가

장 요양사는 작은 상자 하나를 주고 돌아갔다. 낯익은 물건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던 장난감 반지. 아빠에겐, 그리고 아마 장 요양사에게도, 꽃받침이지만 꽃보다 더 예뻤을 유리 반지. 그 반지를 장 요양사에게 은밀히 주는 아빠와 웃으며 받는 장 요양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온 우주를 넘나드는 관심사를 가지고도 그 어느 것에도 진지하지 않았던 아빠와 돌보는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던 장 요양사. 문득 부겐빌레아의 그 조그만 하얀 꽃을 확대해 보면 무척이나 예쁜 꽃 모양을 하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서현이 말이 맞다. 꽃이건 꽃받침이건 그게 무슨 상관이람. 반지를 내 손가락에 껴 보았다. 너무 커서 빙빙 도는 걸 보고 언니가 빼앗아 자기 손에 끼었다. 내 손가락이 더 굵네, 무거운 책을 들고 다녀서 그런가. 자기 연민에 빠져 갸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언니에게 유리 반지를 넘겨주고 상자를 뒤집어 보았다. 경원의 생일선물이라고 쓴 메모지는 없었다. 상자 밑에 붙어 있던 걸 아빠가 떼버리고 여사님에게 준 건지, 장 여사님이 떼버리고 보관했던 건지, 혹은 저절로 떨어져 나간 후에 아빠가 상자를 발견한 건지, 아무도 모른다. 문득 엄마를 생각했다. 그 반지는 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던 거였는데.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서현이 말이 맞다. “모두 만나서 행복하게 계실 거야. 외삼촌, 외숙모, 초코.” 언니 말도 맞다. “초코, 쪼꼬, 쪼코, 초코들.”

 

“근데 열대 꽃이 왜 한겨울에 꽃이 필까?”

 

도돌이표처럼 부겐빌레아로 관심이 되돌아간 숙희가 다시 물었다.

 

“뭐 어떻게든 쟤들 나름으론 겨울 지나고 여름 왔다고 느끼는 거겠지.”

 

경주 언니가 대답했지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아빠가 한 이야기를 기억한다.

 

열대에 살면 항상 여름이거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감각 자체가 아예 없고 다만 건기와 우기가 있을 뿐이래. 춥고 덥고 겨울 가고 여름 오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물을 안 주면 건기가 왔나보다, 물을 많이 주면 우기가 왔구나, 열대 꽃들은 그걸로 꽃을 피운단다.

 

아빠에게 치매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이야기고 그 가설의 진위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남들에겐 중요한 기준을 공감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진 식물이 있다고, 그래서 한겨울에 붉은 꽃받침이 만개한 위에 조그맣고 하얀 꽃이 피어난다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기준에 맞춰 다른 꽃을 피우며 살아간다고,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당선소감 - 유호민 “혼자라면 여기까지 못 와… 주변 큰 도움에 감사”

 

나는, 행복했다.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가족과 함께하는 집 안에서 모든 것이 충족되었다. 직장으로 학교로 가족들이 집을 비우면, 또 하나의 나는 인터넷상의 유령 카페에서 혼자 글을 썼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어쩌면 지킬 씨와 하이드 박사. 게으름뱅이 주부와 열정적인 유령으로 분리된 듯 두 개의 내가 서로를 모른 척 각자의 세계에서 살면서, 모두 행복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일까. 나는 외로운 섬이 되어갔다. 나는 혼자 허우적댔지만 점점 가라앉았다. 지킬 주부도, 하이드 유령도.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전화를 받는 동안 하나의 나는 카트에 물건을 담고, 또 하나의 나는 누군가 장난을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어디에 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지만, 믿음이 가기는커녕 누가 내 노트북을 해킹했나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드디어 이렇게 미쳐가는가, 정신이 나가 버렸다.

 

위에 쓴 이야기의 반은 뻥이다. 혼자였다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나는 허우적대면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크나큰 도움을 받았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들과 더 어른이 된 남편이 더 성숙해진 울타리로 나를 지키고, 또 하나의 나 역시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설 쓰기를 가르쳐 주신 우경미 선생님, 갈 곳을 잃고 헤맬 때 길을 보여주시는 구효서 선생님, 함께 길을 가며 점심과 커피와 즐거운 시간과, 그리고 귀한 조언을 나누어 준 문우들, 내 맘대로 이름 지은 림름라와 나나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사랑을 바칩니다. 부끄러운 졸작을 내민 8년 차 신춘 낭인의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다.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는 듯 모르는 듯, 알아도 모르는 척,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은 덮어주며, 지금은 아마도 모르겠지만 언제든 알게 되면 나의 등단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해 줄 나의 가족, 항상 미안하고 사랑하고 감사한다.

●1960년생, 이화여대 의과대학 졸업, 가정주부.

김화영(왼쪽), 권지예

◆심사평 - 김화영·권지예 “‘치매’라는 상투적인 소재… 애틋하고 따스하게 풀어내”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2편이었다.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었으나, 작의가 뭔지 애매모호하거나 용두사미 격이어서 완성도나 완결성에 아쉬운 응모작이 많았다. 그중에서 ‘모래가 새어 나오는 가방’과 ‘붉은 베리야’ 두 편이 경합을 벌였다.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대비되었다.

 

‘모래가 새어 나오는 가방’은 기존소설 문법을 해체하며 시적인 문장과 독특한 서술구조, 화려한 필력으로 독자의 사유를 자극하고 끝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소설의 서사와 소설 속 연극의 서사가 반전과 대칭을 이루며 역동적인 깊이를 보여준다.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단편은 문학의 지적, 철학적, 예술적 유희를 확장하는 면이 있다.

 

‘붉은 베리야’는 치매에 걸린 과학자 교수 출신의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이다. 일견 상투적일 수 있는 소재를, 유머가 깃든 시선으로 인물들의 개성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소설이 어둡지 않고 애틋하고 따스하다. 특히 치매 환자인 아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치매 환자와 달리 전문적인 지식과 추리력이 특출나 삶의 통찰력과 아이러니를 지혜롭게 묘파한다.

 

소설 제목인 ‘붉은 베리야’는 가족들이 열대식물인 부겐빌레아를 부르는 단어다. 추운 겨울에 피는 붉은 것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고, 정작 가운데 꽃술처럼 아주 작고 하얀 것이 꽃이다. 그렇게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진 식물이다. 세상에는 겉모습과 달리 진실은 간혹 오히려 그렇게 작고 눈에 안 뜨이는 것. 다이아로 오해할 커다란 유리 반지가 더 소중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기준에 맞춰 자신만의 꽃을 피우며 살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소박한 위로를 준다.

 

‘모래가 새어나오는 가방’이 역작이지만 소설이 이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심사숙고의 논의를 거쳐, 물흐르듯 노련하게 쓴 ‘붉은 베리야’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아까운 낙선자에게는 격려를,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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