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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자연을 마주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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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08 22:39:03 수정 : 2023-12-08 22: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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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윌트셔 지방 솔즈베리 평원 위에는 신기한 모양의 돌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거대한 돌덩어리와 평평한 돌 판들을 접착 물질 없이 쌓아 올린 스톤헨지인데,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기념비적 구조물이다. 곧게 세운 돌기둥들이 수평으로 놓인 평평한 돌을 떠받치는 원형 구조물이 둘러서 배열됐다. 그 안에도 같은 형태의 구조물이 작은 원형을 이루고, 중심부에는 제단처럼 보이는 길고 평평한 돌이 놓여 있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경외감과 초인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 기념비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종교적 의식을 위한 것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불안감과 위협에서 벗어나고 정신적인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제의를 위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구조물의 전체 모습이 해가 뜨는 쪽을 향하고 있어 태양에 대한 숭배의식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스톤헨지(기원전 2000년경), 영국 윌트셔의 솔즈베리 평원

이것도 미술작품일까? 하늘, 해와 달, 대지, 그 사이를 가르는 바람의 존재, 그리고 돌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미적 경험을 주목해 보자. 수직과 수평으로 만나는 돌 구조물이 짙은 초록색 평원과 이루는 대비와 조화를 볼 수 있다. 해가 뜨고 햇빛의 찬란함이 대지를 채울 때, 어둠을 찾아온 달이 주변의 적막함을 덮고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때의 경험은 어떤가. 돌 구조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낄 수 있고, 풀벌레 소리가 우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덤이다. 이 모든 걸 어디 그림 한 장을 볼 때의 감동과 비교할 수 있을까. 자연의 모든 것들도 미술작품으로 될 수 있다는 총체미술 얘기인데, 20세기 후반 자연 속에서 작품을 이루려 했던 대지미술가들의 생각도 이랬다.

즐거운 주말이다. 지금 이 순간 그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빛에 마음이 설레고, 발길에 차이던 돌멩이도 다시 보게 되고, 햇빛도 바람 소리도 어둠 속의 달도 느껴 보고 싶다. 예술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복잡하고 심오한 것만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자연이 만든 예술 속에서 살고 있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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