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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라인 유럽 전역까지 연결… ‘수소 허브’ 구상 본격화 [심층기획-‘기정학(技政學) 시대’ 강소국 네덜란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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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05 06:00:00 수정 : 2023-12-04 2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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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미래 수소에너지 중심 부상

천연가스관 85% 재활용… 비용 75%↓
산업단지·시설 ‘1200㎞ 수소망’ 구축
로테르담항, 그린수소 생산기지 계획
“2050년 완전한 탄소 중립 달성 목표”

러시아發 에너지난에 가격 폭등 교훈
수소 전환 가속도… 가스 의존 최소화
“현지 수요 2000만 중 90% 수입 필요
세계 곳곳서 생산… 공급원 확보 용이”

지난달 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도착하자 북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북해와 맞닿은 입지 덕에 유럽 최대 항구로 성장한 로테르담항에는 그 명성에 걸맞게 컨테이너 수백 대가 빼곡히 쌓인 거대한 화물선들이 정박 중이었다.

로테르담항만청의 마르크 스툴링하 에너지·인프라 부문 이사는 “많은 사람이 화물선이 오가는 과정에서만 환경오염이 발생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저 수많은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전체 운송 과정에서 배출되는 만큼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말했다.

해운업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의 3%를 차지한다.

해운국 네덜란드 정부는 해결책으로 수소를 택했다. 수소는 탄소 배출량(많은 순)에 따라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로 분류된다. 이 중 그린수소는 풍력·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들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친환경 에너지다.

거대한 크레인 너머로 로테르담항 인근 북해 연안에 설치된 풍력 터빈들이 보인다. 네덜란드 정부는 로테르담항에서 만들어진 풍력 에너지를 이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로테르담 항만청 제공

네덜란드는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로테르담 항구를 그린수소의 수·출입 및 생산 허브로 탈바꿈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실행 중이다.

해운업의 탄소 중립은 한국에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 역시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수소 항만으로의 전환을 중장기 과제로 선정했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수소 허브로의 대변혁을 시도하는 로테르담항에서 친환경 해운·항만을 위한 미래 전략을 들어봤다.

◆5만3000㎞의 수소 네트워크

이날 만난 스툴링하 이사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5% 감축하고, 2050년 완전한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 정부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대규모 수소 파이프라인 구축이다. 네덜란드 전역을 연결하는 수소 운송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이를 국경 너머 독일과 유럽 대륙 전체로 연결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네덜란드 에너지 인프라 기업인 가스니는 지난 10월 말 ‘네덜란드 수소 네트워크’ 공사의 첫 삽을 떴다. 이는 네덜란드 내 주요 산업 단지와 수소 시설을 연결하는 약 1200㎞의 파이프라인 공사다. 2025년 완공이 목표인 이번 1단계 공사는 로테르담의 트베더 마스블락터 항구에서 석유 기업 셸의 정유소가 있는 페르니스까지 32㎞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한다. 32㎞에서 시작한 파이프라인이 이후 네덜란드 전역을 잇게 되면, 네덜란드 정부는 2030년부터 이를 독일과 벨기에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목표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델타 라인 회랑’이다. 로테르담에서 시작돼 남쪽 벨기에로 이어지는 라인과 동쪽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까지 이어지는 약 270㎞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파이프라인의 ‘끝’은 유럽 전역이다. 유럽 28개국에 걸쳐 2040년까지 5만3000㎞ 길이로 건설될 ‘유럽 수소 파이프라인’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 정박 중인 화물선에 컨테이너들이 빼곡히 쌓여 있다. 로테르담항은 연간 약 1500만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한다. 로테르담 항만청 제공

파이프라인은 크게 탄소 배출용과 수소 운송용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로테르담항을 비롯해 시멘트·화학·철강 등 주요 산업 단지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북해의 저장 시설이나 다른 재활용 시설로 옮기는 용도다. 이렇게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는 땅이나 바다 깊은 곳에 묻어 버리고(탄소 포집 및 저장), 로테르담항을 통해 수입한 친환경 수소는 수소용 라인을 이용해 네덜란드와 독일, 나아가 유럽 전역으로 운송함으로써 유럽의 수소 허브가 되겠다는 게 네덜란드의 생각이다.

네덜란드는 파이프라인도 재활용한다. 전체 네트워크의 85%를 기존에 구축된 천연가스 수송용 라인으로 잇는다. 네덜란드는 이를 통해 공사비용을 75%나 줄였다. 전체 네트워크 구축 비용은 약 15억유로(약 2조1200억원)다.

 

◆러시아가 준 교훈, 수입원의 다각화

네덜란드는 수소 수입원의 다각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래했던 에너지 위기가 준 교훈을 기억하면서다. 러시아가 자국산 가스 공급을 대폭 축소한 탓에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의 가스 가격은 전쟁 초기에 전년 대비 10배 넘게 폭등했다.

스툴링하 이사는 “러시아 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수소 에너지 전환 전략에도 속도가 붙었다”며 “우리는 더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특히 수소는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하기 좋은 에너지”라며 “수소는 전통적인 석유·가스 생산국뿐 아니라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도 생산된다”고 강조했다.

로테르담항의 무인운반차량(AGV)이 컨테이너를 수송하고 있다. 로테르담 항만청 제공

네덜란드는 앞서 스툴링하 이사가 언급한 나라들에 더해 캐나다, 우루과이, 오만, 모로코,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 대륙별 다양한 나라와 수소 관련 양자 협정이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이에 네덜란드의 수소 수입량은 앞으로 더 늘어나고, 수입원도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스툴링하 이사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50년 로테르담이 수입해야 할 수소량은 2000만t에 달하는데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수소량은 200만t에 불과하다”며 “수소 수요의 90%를 수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의 수소 경제 협력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나라 사이 관련 교류는 아직 더딘 상태다. 네덜란드가 지난해 한국에 수출한 수소는 6549달러(약 850만원)어치에 불과했다. 한국도 세계 수소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려 독자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로테르담=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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