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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일탈, 중국은 모른척…핵강국 야욕 北, ‘스타워즈’ 기회 잡았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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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1-24 06:00:00 수정 : 2023-11-24 0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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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강국 지위를 노리는 북한의 행보가 우주로 확장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21일 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는 우주 궤도에 진입한 상태다. 

 

군사정찰위성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전략적 과업이다. 김 위원장에겐 ‘수령의 무오류성’을 지키고, 핵보유국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북한이 21일 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쏜 천리마-1형 우주발사체가 상승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러시아와 중국은 이같은 목표를 실현할 기회를 제공했다. 냉전 붕괴 이전부터 러시아는 북한의 기술적 토대 역할을 했고, 중국은 북한을 감싸기에 바빴다.

 

이를 통해 북한은 원자탄과 수소탄, 정찰위성을 모두 갖춘 양탄일성(兩彈一星)을 눈앞에 두게 됐다. 

 

냉전 시절 중국의 지위를 끌어올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까지 달성하게 한 양탄일성은 핵강국의 수령을 꿈꾸는 김 위원장에겐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다. 

 

◆러시아와 은하 로켓, 北 미사일 핵심 요소

 

러시아 미사일 과학자와 은하 로켓. 김 위원장의 핵강국 야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요소다.

 

1980년대 말 옛소련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과 아프간 전쟁 여파로 비틀거렸다. 한순간에 일거리를 잃은 핵과 미사일 전문가들은 생계와 연구를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원했다. 

 

북한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까지 2~3년간 옛소련에서 액체연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만든 마케예프 설계국 등의 전문가 인력과 기술자료를 대거 확보했다.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에 버려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공장에서도 기술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전문가와 기술자료는 북한 미사일과 우주로켓 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 옛소련 액체연료 SLBM R-27을 지상형으로 개조한 무수단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대표적 예다.

 

북한이 개발한 무수단 미사일이 이동식발사차량에서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06년 실전배치됐던 무수단은 2016년 시험발사에서 잇따라 실패, 불량품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때의 실패를 통해 ICBM을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무수단을 통해 장거리 미사일과 로켓 연료체계를 다루는 경험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무수단 연료체계는 화성-17형 ICBM과 차이가 없다”며 “무수단에서 숱한 실패를 겪으며 배우지 않았다면 화성-17형이 그렇게 빨리 안정화됐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기술지원은 은하로켓과 ICBM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스커드 사거리를 늘리고 엔진을 개량해 노동미사일을 만든 북한은 노동의 사거리를 또다시 연장하고 다수의 엔진을 한데 묶어 큰 추력을 내는 클러스터링 기술과 단분리 기술을 적용해 은하 로켓을 만들었다.

 

클러스터링은 각각의 엔진이 정확한 시점에서 균일한 추력을 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기술이다.

 

위성을 궤도에 올릴 추력을 내려면 다단 로켓을 써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추진제를 모두 소모한 엔진과 추진체를 안전하게 제거하는 단분리 기술이 필수다.

 

북한은 2006년부터 5차례에 걸쳐 은하 로켓을 발사했다. 이를 통해 클러스터링과 단분리 기술을 확보·검증했다. 이는 2010년대 초에 등장한 KN-08을 시작으로 화성-14·15·17·18형 ICBM을 만드는 토대가 됐다. 

 

북한이 21일 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쏜 천리마-1형 우주발사체가 화염을 뿜으며 상승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올해 등장한 천리마-1형 우주발사체는 ICBM과 은하 로켓 기술 및 운용 경험을 종합한 버전이다. 화성-17형 발사 과정에서 단분리와 1단 엔진 신뢰성 등이 검증됐고, 3단으로 구성된 발사체 구조는 은하 로켓과 같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세 번째 시도 끝에 위성을 궤도에 올린 천리마-1형은 향후 북한 ICBM과 로켓 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주발사체는 지구 중력 이탈과 위성 궤도 진입을 위해 많은 추진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사일보다 추력이 더 강하다. 천리마-1형의 추진체계 기술을 액체연료 ICBM에 적용하면 사거리나 탑재중량 등이 향상된 개량형 제작이 가능하다.

 

천리마-1형 2차 발사 실패 당시 북한이 원인으로 언급했던 2단 로켓 엔진 문제가 3차 발사에서 문제점이 개선된 것이 드러난 만큼 ICBM 2단 추진체 성능도 개선될 전망이다. 이는 ICBM 정확도와 사거리 향상 효과로 이어진다.

 

북한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북한은 고체연료 IRBM 연소시험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만든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 엔진이 지상시험에서 화염을 뿜어내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됐으나 실패했다던 정체 불명의 탄도미사일이 고체연료 IRBM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화성-12형은 백두산 엔진이 공개된 직후인 2017년 4월 세 차례에 걸쳐 비공개 시험발사가 이뤄졌다. 이때는 쏘자마자 폭발, 발사가 실패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한달 뒤인 5월 4차 발사는 성공했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고성능 추진체는 초기 발사 과정에서 안정화가 어려워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며 “고체연료 ICBM은 무거워서 발사 초기 속도가 느릴 수 있으나 고체연료 IRBM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속도가 빨라진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초기 추력 통제가 잘 안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고체연료 IRBM이 개발되면, 액체연료 위주의 탄도미사일 전력을 고체로 전환해 발사 준비 시간을 단축하려는 북한의 전략 완성이 가까워진다.

 

그만큼 한국과 미국, 일본을 겨냥한 미사일 위협이 더욱 커진다. 경우에 따라선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개발도 가능해진다.

 

러시아와 북한 전문가들이 지닌 기술과 경험의 융합, 탄도미사일과 우주발사체 기술 향상 결과물의 공유. 북한이 오랜 기간 추구했던 전략은 경제난 속에서도 장거리 미사일과 로켓 개발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그 결과물이 ICBM과 천리마-1형이다. 북한이 전장을 우주로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 매체에서 지난 4월 공개한 군사정찰위성 구성도. 세계일보 자료사진

◆北 정찰위성이 가져올 파장은

 

북한이 쏜 만리경-1호 군사정찰위성은 현재 고도 500㎞ 상공에서 궤도를 돌고 있다. 

 

지상과의 교신, 촬영 기능 작동이 검증되면 북한은 우주에서 한반도를 감시하고, 유사시 미사일로 타격할 표적 정보를 수집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북한이 내년부터 군사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해 완전한 감시능력을 확보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정치적 측면에선 원자탄과 수소탄, 인공위성을 갖춘 양탄일성을 완성한다. 핵무기를 미 본토에 투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를 얻는 셈이다.

 

군사적 측면에선 북한의 정보수집능력이 한층 높아진다. 북한은 한반도 남부 내륙이나 일본, 괌 등을 정찰할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정찰위성을 확보하면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군사적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광학방식인 북한 군사정찰위성은 사진이나 영상 해상도가 한국, 미국 위성보다 많이 뒤떨어진다. 하지만 한국군 현무 탄도미사일 기지나 공군기지, 항만, 방공부대 등의 위치와 특성은 파악할 수 있다. 

 

무료로 열람 가능한 온라인 디지털 위성사진에는 군사보안 등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 군사정보를 북한이 얻는다는 것만으로도 북한군 작전은 질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단거리탄도미사일 공격에 필요한 표적정보를 군사정찰위성으로 모은다면, 북한군 미사일 정확도는 한층 높아진다. 그만큼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부담은 커진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전력의 전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이 한반도 전장을 우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확보한 우주발사체 및 위성 개발과 제작, 운용경험을 토대로 위성 발사를 지속할 전망이다.

 

북한이 지난 21일 밤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된 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 장면을 조선중앙TV가 23일 공개했다. 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김 위원장(왼쪽)과 김정식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오른쪽)이 환호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해 군사정찰 외에도 기상관측, 지구관측, 통신 등 다양한 목적의 위성 발사를 지시했다. 

 

북한의 위성이 증가하면, 북한은 우주를 활용한 전쟁 기술을 발전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전략적 타격력에 정확도를 더할 수 있다.

 

발사체에 다수의 소형 위성을 탑재, 궤도에 올리는 기술을 확보하면 ICBM 다탄두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액체연료 ICBM을 개발한 직후 천리마-1형을 만든 것처럼, 고체연료 ICBM 화성-18형을 개발한 북한이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개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다만 북한의 경제 사정을 감안할 때,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개발보다는 천리마-1형을 토대로 우주발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는 북한이 가장 뒤떨어져 있던 감시정찰능력을 강화하겠다는 신호탄이다. 또한 우주를 전장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움직이지 않아 북한을 저지할 모멘텀을 찾기 힘든 지금, 한반도 상공에서 벌어질 ‘스타워즈’를 피하기는 어렵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반전의 키를 쥐지 못한 국가가 직면한 불편한 현실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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