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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刺客). 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찔러 죽인다는 뜻이니 섬뜩하다. 2005년 9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우정 민영화에 반발해 탈당했던 중진 의원들 지역구에 여성 관료, 유명 여배우, 아나운서 등을 내보냈다. 일본 언론은 이를 ‘자객 공천’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결과 중진 의원들이 무더기로 낙선했고, 고이즈미는 그 여세를 몰아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자객 공천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19대 총선 때 경기 광명을에서 내리 3선을 한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을 변호사 출신 신인이었던 민주통합당 이언주 후보가 무너뜨리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 공동대표인 5선의 천정배 의원을 겨냥해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 상무까지 오른 양향자 후보를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자객 공천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했다. 통상 여야가 상대 당의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전략공천을 할 때 자객 공천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주당 내부에서 이 말이 나온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원외 친명(친이재명)계 인사가 도전장을 내자 사실상 ‘자객 공천’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친명계 인사의 도전을 받는 비명계 현역은 이원욱, 조응천, 윤영찬, 김종민 의원 등이다. 4명 모두 비명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에 참여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시스템 공천에 따라 의도적으로 비명계를 솎아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명계는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이 경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험지 출마’ 의사를 밝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며, 이 역시 ‘자객 공천’으로 불린다. 이 대표와 원 장관이 맞붙게 된다면 전국 최대 관심 선거구로 부상할 것이다. ‘자객 공천’이 이뤄지면 이같이 관전자의 흥미는 배가된다. 과거에는 표적 공천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이런 으스스한 용어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 우리 정치판이 그만큼 더 살벌하고 험악해진 게 아닌가 싶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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