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 상대 4년간 급여 25% 인상 확정
일본 도요타·혼다 “2024년 9%·11% 인상”
현대차도 미국 공장 임금 14% 올리기로
“노동자 표심 잡아라” 미국 대선 이슈 부상
바이든, 미국 대통령 최초 피켓 시위 동참
트럼프는 “전기차 지원정책 폐기” 맞불
페인 위원장 “임금 인상 이어 노조 확대”
전기차 전환 따른 해고 등 지원도 합의
“AI시대 고용안정책 쟁취… 더 큰 의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9월15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역사상 최초로 완성차 업체 ‘빅3’를 상대로 46일간 벌인 동시 파업은 노조 승리로 끝났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지난달 말 노사 잠정 합의안 타결 직후 “1930년대 이후 가장 놀라운 승리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향후 4년6개월간 급여 25% 인상이 뼈대를 이루는 잠정안은 최근까지 이어진 조합원 동의 투표에서 가결돼 곧바로 임금이 11% 오르게 된다.
이번 파업의 배경과 여파는 비단 UAW 사업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친노조’를 표방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파업 피켓 행렬에 동참하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노조 사업장을 찾아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정책을 비난하는 등 2024년 대선 전초전 성격이 가미됐다. 현대자동차 등 외국계 비노조 자동차 업체들도 부랴부랴 임금 인상에 나섰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내연기관차 노동자의 일자리 상실 우려가 이번 파업의 배경에 깔려 있었던 만큼 인공지능(AI) 고도화로 사라질 수 있는 직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잃어버린 15년’ 되찾자
올해 3월 UAW 수장으로 선출된 페인 위원장은 4년 주기로 갱신되는 사측과의 계약 협상에서 “더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겠다”며 일찌감치 대대적 투쟁을 예고했다. 2009년 GM, 크라이슬러 파산 위기 때 노동자들이 복지혜택 축소, 조기 퇴직, 무파업 약속 등 희생을 했는데, 위기 극복 후 기록적인 수익의 과실은 사측만 가져갔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었다.
미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포드, 램·지프·크라이슬러 모기업인 스텔란티스, GM 등 빅3 업체의 수익은 2013∼2022년 92% 급증해 2500억달러(약 323조원)에 달했고 이들 기업 최고경영자(CEO) 급여는 40% 올랐다.
반면 물가 인상을 고려한 자동차 제조업 노동자 평균 실질 시급은 2008년 이후 19.3% 감소했다.
한때 임금 46% 인상과 주 32시간 근무 등 요구를 들고 나왔던 UAW는 합의안 도출에 실패하자 2019년 체결한 기존 계약 만료일인 9월15일을 기점으로 빅3 동시 파업을 단행했다.
사측은 최대 17.5∼20% 인상안을 고수하다 지난달 25일 포드를 시작으로 28일 스텔란티스, 30일 GM까지 잇달아 노측의 25% 인상 요구를 수용했다. 물가 상승 시 이를 반영해 임금을 보정하는 ‘인플레이션 연동 생활비 조정제도’(COLA)도 복원키로 해 임금은 사실상 33% 이상 오를 전망이다.

합의안에는 이밖에 △신입 노동자 초임 시간당 16∼19달러→28달러 인상 △숙련 노동자 최고 시급 32달러→40달러 인상 △공장 폐쇄에 대한 파업권 보장 △공장 폐쇄 시 해고 노동자 의료보험 및 2년간 급여 일부(첫해 95%·이듬해 50%)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최고 임금을 받는 숙련 노동자가 주 40시간을 일하면 연 8만4000달러(약 1억914만원)를 받게 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전기차 전환에 대한 위기감은 이번 파업의 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엔진, 변속기 부문 일자리는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전기차 전환 시 인력 40%가 감소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합의안에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공장 폐쇄 시 파업권, 해고 노동자 전직 기간 지원 등이 담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측은 심지어 스텔란티스가 전기차 생산비 충당을 위해 올초 폐쇄한 일리노이주 벨비디어 공장 재가동 및 해고 노동자 1200명 재고용 약속까지 받아냈다.
◆대선 이슈 된 자동차 파업
그동안 사측에 양보를 압박해온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합의로 중요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현지 언론들은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록적인 기업 이익은 기록적인 계약(노사협약)으로 공유돼야 한다”면서 처음부터 파업을 지지했다. 더욱이 자신의 간판 정책인 전기차법(IRA·정식명칭 인플레이션감축법)과도 직결된 만큼 몸소 미시간주 파업 현장을 찾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UAW는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을 지지했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전환 정책에 따른 불만으로 지지를 유보 중인 상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 구매를 독려하기 위해 자동차 업체들에 주는 IRA상 세액공제 보조금 등에 따른 각종 혜택이 노조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UAW를 달랬다.
협상이 타결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적 합의”라며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동안 (자동차) 산업 유지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환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반대 방향으로 접근했다. 그는 전기차 지원 정책 폐기를 공언했다. 그는 비노조 사업장을 찾아 “바이든은 자동차 산업을 중국에 넘기며 항복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는 가솔린(휘발유)이 무한하며 다른 어느 나라보다 많다.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가솔린 엔진은 허용될 것”이라고 했다. 내연차 노동자의 불안감을 자극하며 ‘러스트 벨트’(미 자동차 산업 중심지인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쇠락한 공업지대)를 살릴 사람은 자신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페인 위원장은 “나는 그가 노동자 계층에 신경 쓴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냉담한 반응이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정책이 오히려 UAW의 파업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IRA상 보조금은 북미산에만 적용되므로 사측이 공장 해외 이전 가능성을 무기로 노측을 압박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포드 경영진은 이번 파업으로 인해 차량 1대당 생산비가 최대 9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밝혔는데, 최대 7500달러까지 지급되는 보조금을 고려하면 사측이 단기적으로는 신차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감당할 수준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다른 사업장까지 후폭풍 예상
문제는 고금리로 소비자들의 신차 구매력이 약화하고, 전기차 판매도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를 따라잡기 위해 신차 개발 및 공장 건설, 설비 교체 비용 등으로 수백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업체들에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GM은 이미 파업만으로도 세전 수익이 8억달러(1조원)쯤 감소했으며, 그 영향은 4분기 실적에 주로 반영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 노사 합의는 배터리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된다. UAW는 신규 계약이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세운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노동자들을 포괄한다고 밝혔다. 포드의 경우 테네시주와 미시간주에 건설될 배터리 공장 노동자들까지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
UAW와 빅3 간 협상 타결은 외국계 비노조 사업장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줬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가 내년 1월 미국 공장 노동자 임금을 각각 9%, 11%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현대차 미국법인은 앨라배마 공장 등의 생산직 직원 4000명의 시급을 2028년까지 25% 올릴 예정이라고 지난 13일 밝혔다. 현대차는 당장 내년 1월 임금을 14%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UAW가 다음 목표로 노조 확대를 내건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페인 위원장은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방식으로 조직화에 나설 것”이라며 “2028년 협상장에 돌아올 때는 단지 빅3가 아닌 빅5 혹은 빅6와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특히 현대차, BMW 등 외국계 자동차 공장이 수십 곳 들어선 남부 지역과 무노조 원칙을 고수 중인 테슬라가 집중 공략 대상이다. 더구나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있는 약 2만명 규모 테슬라 공장에는 UAW 조직위원회가 구성돼 직원들에게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UAW는 과거 수차례 신규 노조 조직화에 실패한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빅3와 기록적인 합의를 이뤄낸 터라 순풍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기 이후 노동력 부족으로 힘의 균형추가 노측으로 이동한 상태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진단했다. 할리우드 작가·배우 파업, UAW 파업 등 노동쟁의에 따른 미국의 노동손실일수는 올해 9월까지 1100만여일로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AI의 부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다른 산업 분야 노동자들도 이번 UAW 파업을 주시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60%가 AI에 노출돼 있고, 그중 절반가량인 5000만명은 AI로 사라질 일자리에 종사 중이다. WP는 그런 의미에서 “UAW가 쟁취한 (해고자 전직 지원 등) 고용 안정책이 미국 노동시장에는 임금 인상보다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