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운수 창고업 비해 2배 이상 높아
“특근 시급 높아… 연장근로 안하면 돈 안 돼”
근로자, 효율성보다 임금 인상 수단 여겨
근무·고용 형태 따라 ‘논란의 불씨’ 여전
무노조·파견·특고 등서 장시간 노동 발생
업종·직종 기준서 비정규직 등 소외 우려
使 경쟁력 강화·勞 임금 보전 방향 개선
안전장치·취약계층 의견 수렴 뒤따라야
노조 조직률 14%… 노사 협의 기반 약해
“근로자 대표 활동 보장 실효적 조치 필요”
“시급이 낮아서 오버타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석유화학공장 교대 근무자)
“돈이 급한 사람은 (연장근로를) 찬성할 것 같다.”(자동차공장 교대 근무자)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 중인 정부가 제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연장근로’에 관해 심층 인터뷰한 내용 일부다. 정부는 최근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는데, 제조업이 수요가 가장 높은 업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같은 업종 내에서도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의견은 임금 수준이나 근무 형태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업종’과 ‘직종’이란 기준에서 비정규직과 같은 취약계층이 자칫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근로시간 유연화에 관한 사회적 대화에서 장시간 근로에 대한 안전장치는 물론 비정규직이나 무노조 근로자 등에 대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시간·임금 묶어서 인식
정부가 제시한 근로시간 개편 방향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유연화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올해 상반기 발표했던 ‘주 최대 69시간제’가 “장시간 근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에 부딪히자 근로시간 유연화의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24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와 사업주, 일반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한 수요는 제조업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조업에서 근로자 55.3%, 사업주 56.4%가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건설업(노 28.7%, 사 25.7%)이나 운수 및 창고업(노 22.1%, 사 14.2%), 숙박 및 음식점업(노 18.4%, 사 18.6%) 등에 비해서도 높게 나타난 것이다.

노사는 장시간 근로가 발생하는 이유로 ‘고질적인 인력난, 추가 인력 채용 부담’을 가장 많이 꼽았지만, 제조업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수주, 납품 등 경영상의 불확실성’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기존 주 52시간제의 경직성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근로자 상당수가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의견이 나뉘는 기준은 임금이었다. 자동차 공장에서 2교대로 근무하는 A(31)씨는 정부와 심층 인터뷰에서 “특근은 기본 시급의 1.5배 정도를 받는다”며 “연장근로를 하지 않으면 시급이 낮기 때문에 돈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유연화를 업무 효율성을 위한 것보다는 임금 인상을 위한 수단에서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석유화학공장에서 4교대 근무를 하는 B(32)씨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의견이 나뉜다”며 “저는 시급이 낮아서 오버타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고 답했다. B씨는 “아무래도 나이 드신 40∼50대 선배들은 오버타임을 원하고, 시급이 높으신 분들도 (원한다)”고 덧붙였다.

제조업 근로자들 사이에선 장시간 노동에 대한 우려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석유화학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는 C(29)씨는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다음 근무자가 들어오면 일을 더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공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몇 시간 남아서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시각은 고용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근로시간 개편 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에 관한 문항(복수응답)에서 근로자들은 ‘일한 만큼의 임금 보장’(57.0%)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의 감소가 없어야 한다’에도 31.8%가 동의했다. 반면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은 34.3%, ‘총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11.7%로 근로자 건강권을 우려하는 노동계의 시각은 상대적으로 낮은 답변율을 보였다.
더 나아가 ‘추가 소득을 위해 연장근로 의향이 있다’는 근로자는 41.7%에 달했다. 이들은 주간 최대 근로시간으로 ‘52시간 이내’라는 응답이 55.7%였고, ‘52시간 초과’는 39.7%였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근로시간이 사업주에겐 생산량, 근로자에겐 임금과 연관돼 있는데 양쪽 모두 이것이 감소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론 근로시간 유연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자의 임금을 보전하는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노조, 파견서 장시간 노동
근로시간 유연화의 대상을 일부 업종과 직종으로 대상을 좁히더라도 근무형태나 고용형태 등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논란의 불씨가 여전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의 ‘장시간 노동, 프리젠티즘, 휴가 활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 35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근로자 가운데 주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무노조 사업장’(9.6%), ‘파견용역’(13.9%), ‘특고’(9.4%), ‘여성’(10.3%), ‘5인 미만’(13.3%), ‘55세 이상 고령’(10.6%)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보고서에서 “장시간 노동은 노조 유무, 고용형태, 성별, 연령대, 소득, 업종, 유급휴가제도 유무에 따라 상이하다”고 진단했다. 이는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 중 하나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직결된 사안으로, 업종과 직종이라는 기준 밖에서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소가 지난 9월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주 52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8.1%였다. ‘비정규직 남성’(19.6%)이거나 ‘교대 근무자’(14.6%)인 경우가 많았다. ‘근속 10년 이상 비정규직’은 그 비중이 28.6%에 달했다.

특히 ‘장시간 근로=임금 상승’이란 등식은 비정규직에서 두드러졌다. 월 400만원 이상의 임금 근로자 중 주 52시간 이상 일한 경우는 정규직에서 5.6%에 그쳤지만, 비정규직에서는 16.7%에 달했다. 임금 수준이 근로시간과 비례하면서 근로자 스스로가 장시간 노동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반대로 월 200만원 미만의 근로자가 주 52시간 이상 일한 경우는 정규직에서 0%인 반면 비정규직에선 4.2%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사용자에겐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만큼 근로자에게도 일한 만큼의 대가를 지급하는 임금체계가 필요하다”며 “특히 포괄임금제나 임금체불에 따른 공짜 노동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택권은 노사에… “근로자 대표제 강화해야”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을 다시 추진하면서 그 선택권을 노사에 맡겼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적용하는 업종과 직종에 관한 논의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진행하고, 노사가 원하는 경우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자칫 장시간 근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노동계의 우려를 반영한 조치로 풀이되지만, 제도가 취지대로 작동하려면 노사 협상의 기반부터 다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노동조합 조직률은 14.2%로 집계됐다. 사실상 근로자 7명 중 6명은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부문별로 살펴보면 공무원 75.3%, 공공 70.0%, 교원 18.8%였고 민간 부문은 11.2%이다. 사업장 규모에서도 300인 이상은 46.3%이지만, 100∼299명은 10.4%, 30∼99명은 1.6%, 30명 미만은 0.2%였다.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최종 선택권을 노사에 부여하겠다는 정부 취지와 달리 현장에선 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노사 협의를 위해 근로자 대표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면서 근로자 대표제를 내세운 것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근로자 대표제가 당시의 ‘주 최대 69시간제’ 논란을 불식시키는 장치로서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정은 지난 6월 근로자 대표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이번에 근로시간의 개편 방향을 발표하면서도 근로자 대표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근로자 대표제를 바라보는 노동계 시선은 회의적이다. 사용자가 대표성이 없는 근로자 대표를 내세워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앞서 한국노총은 근로자 대표제 강화와 관련해 “법적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아 사용자들이 근로자 대표를 임의로 내세워 선임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자 대표의 민주적 선출 절차 보장, 사용자의 개입 방해금지, 근로자 대표의 실질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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