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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좀 주소’의 가수 한대수 필름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출간

입력 : 2023-11-06 14:10:26 수정 : 2023-11-06 1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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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고통/한대수/북하우스/3만3000원

 

장발을 치렁치렁 늘린 채 기타를 치며 특유의 탁성(濁聲)으로 ‘물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를 부르던 한대수. 1960, 70년대 한국 음악계의 독보적인, ‘한국 모던록의 창시자’ ‘한국 포크록의 대부’로 불리며 중장년 팬에게는 낯익은 가수다.

서울, 1969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가 세상을 여행하며 40여 년 동안 찍은 필름 사진집을 냈다.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 지금까지 공개한 적 없는 미공개 희귀 흑백·컬러 사진 100여 점을 수록했다.

 

“한대수가 사진을?” 하는 이도 있을 수 있으나 한대수는 알고 보면 사진 전문가이자 사진작가다. 요즘 말로 하면 ‘부캐’ 즉 제2의 직업이다. 그는 한국에서 자신의 곡이 금지되자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의 사진학교를 다녔고 스튜디오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다. 국내 언론사(영자신문) 사진 기자로 일한 적도 있다. 이미 사진집 두권을 냈고 사진전도 몇 차례 연 바 있다. 가수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사진을 찍어왔다. 

사진집 ‘삶이라는 고통’ 표지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집 제목은 ‘삶이라는 고통’이다. 그의 삶은 늘 고독하고 우울했다. 3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 삶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과 부산에서 30년, 뉴욕에서 40년을 살았다. 남부러울 게 없는 부유한 집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신학대 초대 학장이었고,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였다. 그런데 유년시절 미국에 유학 간 아버지가 돌연 실종됐다. 어머니는 재가했다. 갑자기 고아 처지가 돼 10살 때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선 저택에 혼자 살았다. “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꽃밭/ 높고 긴 벽돌담의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 방 한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아아, 슬픈 옥이여/ 아아, 슬픈 옥이여.” 당시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쓴 ‘옥의 슬픔’이란 곡이다. 옥이가 바로 저”라고 했다. 외로움, 고통, 비극 같은 것들이 자신을 음악가로 만들었고, 사진을 찍게 했다는 것이다.  

서울, 1969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1969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 1978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 2003 [ⓒ한대수. 북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대수는 “필름 이미지는 아웃라인이 매끄럽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과는 차이가 크다. 때로는 희미하고, 때로는 포커스가 안 맞더라도 내 인생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여드린다. 맥주 한잔 마시고 즐기시길”이라며 사진집 출간 소회를 밝혔다.

늘 ‘카메라는 목의 십자가’고 말하는 그는 ”고희를 훌쩍 넘겨 ‘사진을 정리해야지’ 했던 숙원을 이룬 작품이다. 노래이든 사진이든 창작의 궁극적인 주제는 ‘사랑과 평화’” 라고 외친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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