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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인생엔 정년 없다’… 오늘도 꿈 좇는 팔순 CEO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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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1-01 06:00:00 수정 : 2023-11-03 09: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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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관 삼구아이앤씨 회장

연매출 2조 기업 일군 ‘자수성가 신화’
고된 가난 극복하려 청소·경비 용역 시작
물류·생산·보안사업 확장… 美·中 진출도

집무실 6평… 직함은 ‘책임대표사원'
“직원 행복해야 회사 미래 밝아” 경영 철학
대부분 정규직 채용… 이직률 업계 최저

“나이는 숫자일 뿐” 끝없는 배움
61세 때 대입… 68세땐 석사 우수논문 써
“한번 포기하면 세상 두려워… 매일 최선”

“‘내일’ 아침이 아니라면, 오늘까지 하는 일이 ‘내 일’이죠. 그게 내게 주어진 일이잖아요.”

꿈이란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무언가다. 꿈을 좇는 데 나이가 대수일까. 올해 팔순인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회장은 지난 1월 5000여m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에 성공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행사에 참석하러 갔다가 도전에 나섰다. 그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라잖아요. 그러면 전 지금 56살이죠”라고 말했다.

구 회장에게 ‘내일’이란 단어는 없다. 주어진 ‘오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50살에 골프를 시작했고 57살에 스키를 배웠다. 61살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를 들어갔고 65살에 오토바이를 탔다. 68살에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엔 수상스키와 비행기 조종도 입문했다. 늘 ‘새로운 시작’이다. 올해 이 회사의 경영지침처럼.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본사 사무실 벽의 로고와 문구를 설명하고 있다. 로고는 사람 인(人)자로 민들레홀씨를 형상화한 것이고, 문구는 1968년 특정할 수 없는 어느 날 청소 사업을 시작했음을 뜻한다.남정탁 기자

청소와 경비 용역으로 성장한 삼구에는 비정규직이 거의 없다. 직원 4만4800여명 중 입사 2∼3개월 미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규직이다. 구 회장은 “비슷한 업체가 6만개 정도 될 텐데 우리 회사 이직률이 가장 낮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본사 집무실에서 구 회장을 만났다. 20㎡(약 6평) 정도 공간은 연 매출 2조원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의 집무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가죽 의자 바닥이 너무 낡아 하얗게 갈라진 모습이 너무 어지럽다. 그의 인생을 꽉 채운 단단함에 화려함이 스며들 구석이 없는 듯했다. 책상 위의 ‘책임대표사원’이라는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직원과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모든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피하고 싶은 상황에 맞닥뜨려 풀어야”

대한민국이 어렵던 시절 태어난 세대가 그렇듯, 구 회장도 스스로 “절박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골프며, 스키며, 오토바이며 따위를 시작하는 걸 도전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에게 “젊어서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안 하고 죽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한다”고 했다.

그에게 진정한 도전은 피하고 싶은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왜 미리 포기하죠. 뭔가 나에게 오면 피하지 말고 맞닥뜨려야죠. 거기서 경험이 얻어지는 겁니다. 맞닥뜨려서 풀어나갈 방법을 찾아야죠.” 젊은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한 번 포기하면 세상이 다 두려워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올해 팔순을 맞은 구자관 회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 삼구아이앤씨 제공

여느 직장인이라면 은퇴할 나이에 구 회장은 배움의 갈망으로 대학 문을 두드렸다. 그는 195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월사금을 내지 못해서다. 구두닦이나 신문팔이를 하면서도 야학을 다녔다. 걸레·빗자루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는 고교 야간반 수업에 빠지지 않으려고 새벽 4시에 남보다 일찍 일어났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한 건 회사의 경비용역 사업을 위해서였다. 석사 학위를 대충 땄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석사 학위를 시작하면서 이미 논문 주제까지 정해뒀다. ‘고령인력의 활용방안’이다. 나이 든 회사 직원들의 제2의 인생 설계를 어떻게 도울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그분들 덕에 내가 먹고사는데 그분들이 퇴직하면 할 일이 없잖아요. 그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늘 생각했죠.” 평소 생각한 것을 말로 떠들기보다 논문으로 남기는 게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참고할 만한 관련 논문이 많지 않았다. 고령 직원 600명과 고객사 인사담당자 150명에게 설문을 보내 각각 540명, 136명의 답변을 받았다. 68살 대학원생이 쓴 논문은 우수학위 논문으로 뽑혔다.

나이를 잊은 그의 도전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70살이 다 된 후배들은 구 회장을 보면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 신뢰, 신용을 갖추는 삼구 문화”

미화와 건물종합관리 등을 하는 아웃소싱 업체 삼구의 본사 직원 500명은 100% 공채다. 33개 계열사도 불가피할 때만 일용직을 쓴다. 33개 계열사 사장은 전원 공채 출신이다. 구 회장의 가족이나 친척, 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계열사에도 일할 수 있으면 계속 일하도록 하는 문화를 장려한다.

삼구의 매출액은 2018년 1조1600억원으로 1조원 돌파에 이어 지난해 2조200억원을 달성했다. 올 연말에는 2조4000억원 정도가 예상된다. 순이익이 얼마나 될까. 10%, 5%는 남지 않을까. 비용에 세금까지 털고 나면 300억원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직원을 11개월29일 쓰고 그만두게 하면 퇴직금을 안 줘도 되죠. 그런 회사는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구 회장은 2003년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 47%를 나눠주기도 했다. 가족과 친구 명의로 된 주식을 임직원에게 배부했다.

직원은 구 회장과 같은 목표를 이뤄가는 동반자다. 회장도 회사의 구성원일 뿐이다. 사람 인(人)자로 민들레홀씨를 형상화한 로고가 기업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구 회장은 모든 직원에게 ‘님’자를 붙여 부르고 90도로 고개 숙여 깍듯이 인사한다. 청소 사업 초창기 시절부터 직원을 ‘여사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외환위기 때에도 사무실 직원들이 넥타이를 풀고 청소도구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가 줘서 극복했다. 그래서 직원을 믿고 신뢰한다. ‘삼구(三具)’라는 회사 이름이 사람, 신뢰, 신용의 세 가지를 갖춘다는 뜻이다. 믿기 때문에 직원이 19년째 관리하는 자신의 월급 통장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구 회장은 자신을 책임대표사원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책임을 질 테니 직원들은 스스로 목표를 세워 실행하라고 강조한다. “책임대표사원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해다. 그는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실수로 일어나는 사고도 있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예방 미조치 처벌법’으로 바꿨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들이 행복해지는 회사가 목표”

왜 첫 사업이 청소였을까. 그는 야간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와서 막막했다고 한다. 좌판을 깔고 물건이라고 팔려면 돈이 필요했다. 1960년대 개발 붐이 그에게 기회였다. 서울 도심에 반도호텔뿐이던 고층 건물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우리나라에도 화이트칼라 직군이 생겨났다. 빌딩 주변 식당의 장사가 잘됐으나 화장실 위생은 엉망이었다. 양복 입은 직장인들의 불만을 눈여겨본 구 회장에게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의 사업은 1968년 ‘손발이 시리지 않은 어느 봄날’ 시작됐다. 야간고에서 배운 알칼리와 산에 관한 지식을 청소에 활용했다. 누렇게 변한 변기에 독한 염산을 뿌려 씻어냈다. 양철 ‘바케쓰’에 걸레, 하이타이, 염산을 들고 곳곳의 음식점을 돌며 변기를 닦았다. 지금은 창업날짜를 스승의날에 맞춘 5월15일로 정해 기념한다.

구 회장도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39살 때에는 청소세제인 왁스를 직접 만들기 위해 솔벤트를 붓다가 폭발해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피부이식 수술 등 치료비로만 집 다섯채 값을 들였다. 빚더미에 올라 생명보험 가입 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게 40살과 41살 때, 두 번이다. 가족에게 얼마의 돈이라도 남겨주려고 한 후회스러운 시도였다.

지금 그의 사업은 경비, 보안, 건물관리, 환경, 운송, 물류, 생산, 케이터링 등으로 다양하다. 미국과 중국, 베트남, 폴란드, 헝가리,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다. 앞으로 국내에 5만명, 해외 5만명 해서 10만명의 직원을 두고 1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걸 꿈꾼다. 자신이 없더라도 성장하고 발전하는 회사라면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 빛도, 소리도, 전기도 아니고 생각이다. 과거 50년에서 미래 10년, 20년을 바로 갔다 올 수 있다. 스스로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지는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죠. 회사의 미래는 미래를 설계하는 직원들에게 달려 있고요”라는 그의 말이 울림을 남겼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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