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촉촉하게 가을비가 내리는 날, 숲속을 거닐다 보면 흙냄새가 유독 많이 난다. 화창한 날보다 비가 오는 날에 흙냄새가 유독 더 많이 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냄새는 사실 균 냄새다. 땅속의 미생물인 방선균(放線菌)이 만드는 지오스민(Geosmin)이라는 물질이다.
방선균은 강력한 항균물질을 분비하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토양 속 미생물 군락을 조절한다. 식물을 보호하는 성분인 리그닌과 식물의 세포막이자 섬유소라 불리는 셀룰로스를 분해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유익균이다.
방선균은 단세포 생물인 원핵생물이지만 고리 모양 염색체 대신 진핵생물과 비슷한 실 모양의 염색체를 지닌 특이한 세균이다. 방선균은 실타래 같은 균사체에서 만들어진 포자가 주변으로 퍼지면서 번식을 한다.
사실 방선균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방선균은 1940년대 인류 최초의 결핵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 생산 균주로 처음 알려지면서 항생제 개발을 위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의약품과 농·축산용 항생제의 70% 정도가 방선균에서 유래되었기에 그 중요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의 성분인 네오마이신과 카나마이신도 방선균에서 얻은 항생제이다. 최근에는 방선균을 활용하여 식물의 병해충을 방제하고,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는 생물농약 및 영양제에 관한 연구 개발도 진행 중이다.
방선균은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쓰임새가 많지만, 동정의 난이도가 높고 배양이 까다로워서 연구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필자는 방선균의 이런 점을 고려하여 감히 ‘미생물의 왕’이라고 칭하고 싶다. 올가을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가 자연이 만들어 낸 방선균의 그윽한 흙냄새를 맡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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