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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月臺)는 조선시대 궁궐과 사당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된 널찍한 단을 말한다. 주변보다 높게 단을 쌓아 올린 평평한 공간으로, ‘달을 바라보는 대’(月見臺·월견대)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경복궁 근정전, 종묘 정전, 성균관 명륜당 월대가 대표적이다. 월대 중앙에 약 7m 너비의 임금이 다니던 길이었던 어도(御道)를 두고 양 옆에 ‘신하의 길’이 있는 삼단 구도로 돼 있다. 신하는 입궐할 때 월대 앞 해태상이 있는 지점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다.

광화문 월대가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세종실록에서다. 1431년(세종 13년) 예조판서 신상이 광화문 앞에 월대를 설치하자고 건의했으나 세종이 “농번기에 인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허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세종이 내린 월대 건축 금지령은 400년 넘게 지켜졌다. 1866년 고종 때 섭정으로 실권을 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후 270여년 동안 폐허였던 경복궁을 중건하며 정문인 광화문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월대를 쌓았다. 하지만 일제가 1923년 전차 선로를 설치하며 철거했다.

광화문 월대는 왕권의 영역인 궁궐과 신하·백성들의 영역을 구별하는 경계이자, 왕과 백성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백성들의 상언(上言: 임금에게 글을 올려 민원을 제기하는 문서)을 받았고, 왕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나눠 줬다. 월대에서 외국의 칙사들을 맞이하고, 무과시험·산대놀이 등 각종 행사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그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가 열렸다. ‘임금의 길’이 100년 만에 복원된 셈이다. 월대는 가로 29.7m, 세로 48.7m로 완성돼 공개됐다. 고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 유족이 월대의 시작 부분에 놓여 있었던 서수상(瑞獸像: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한 쌍을 8월 기증하면서 복원이 완전해졌다. 지난해 구리시 동구릉에서 발견된 월대 난간석 40여점도 옛 모습대로 배치됐다. 월대 복원은 그동안 단절됐던 광화문과 육조거리를 연결함으로써 한양 도성의 중심축을 회복하고 각 유적을 잇는 출발점이 돼 의미가 크다. 광화문광장의 새로운 상징 공간이 될 것이다. 월대 복원이 국민과의 소통 강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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