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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은 낙후지역이 개발되면서 자본과 인구가 유입되어 기존에 거주하던 원주민이 교외로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구도심 개발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는 기사를 종종 접할 수 있는데 이럴 때마다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된 흰발농게가 떠오른다.

흰발농게는 절지동물문 갑각강 십각목 달랑게과에 속하는 종으로 수컷의 집게다리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서 매우 크고 흰색을 띠고 있어 흰발농게라 불린다. 반면 암컷의 집게다리는 작고 좌우 대칭의 형태를 나타낸다. 이들은 주로 연안 갯벌 최상부의 모래가 섞인 진흙 바닥에 굴을 파고 적게는 수십 마리에 많게는 수만 마리까지 무리를 이루고 살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항만, 매립 등과 같은 연안 개발을 통해 생활권을 계속 넓혀가면서, 흰발농게의 서식지를 침범해왔다. 그러한 이유로 흰발농게는 2012년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흰발농게의 멸종을 막기 위해 정부는 갯벌을 개발하면 흰발농게를 포함한 보호 동식물을 대체서식지로 이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군산 선유도에서는 4만여 마리나 되는 흰발농게 무리를 대체서식지로 이주시키는 대작전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인간에게 밀려난 흰발농게 처지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로 이주당하는 아픔이 얼마나 클까. 물론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하지만 그 누구도 흰발농게의 거주지를 빼앗을 권리는 없는 것이다.

매년 오뉴월이 되면 흰발농게 수컷은 짝을 찾기 위해 큰 집게발을 휘저으며 암컷을 상대로 구애 활동을 벌인다. 갯벌에서 수백 마리의 흰발농게가 무리 지어 춤을 추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런 광경을 우리 후손들이 계속 볼 수 있도록 인간과 흰발농게의 공존을 모색할 때이다.


최현기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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