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긴 추석 연휴 기간 중 맞은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대한민국 노인 인구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조만간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하고 있지만 한국의 노인이 처한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노인 무임승차 폐지 주장과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목소리 등 사회의 시선은 따갑고,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노인빈곤율은 2021년 37.6%로, OECD 회원국 중 최악이다. 노인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19년 기준 46.6명으로, 이 역시 OECD에서 최고다.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의 노인 빈곤과 노후소득보장’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인구 비율이 14%에 도달한 시점의 국내총생산(GDP) 중 노인 공적 이전 지출 비중은 한국이 주요국에 비해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노르웨이와 영국은 평균적으로 GDP의 7.05%를 노인 공적 이전 지출에 썼지만 한국은 이같은 비율이 2013년 기준으로 2.23%에 불과했다.
◆“노인은 지하철 공짜? 폐지하라”
올해 초 서울과 대구 등 일부 광역자치단체가 대중교통 무임승차 연령 상향을 검토하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 불이 붙었다. 지하철 등 도시철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노인 무임승차 연령 상향이나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지하철 1∼8호선 운영사인 서울교통공사 등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2020년 11월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재정악화 요인에 대해 응답자의 47.2%는 ‘무임승차 제도’를 꼽았고, 무임승차 제도에 대해 ‘폐지’(22.3%) 또는 ‘변경이 필요하다’(46.3%)고 답한 응답자가 70%에 육박했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혼잡도가 극심해 ‘지옥철’ 논란이 인 뒤로 무임승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다.
직접 당사자인 노년층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노인단체들은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한국의 노인빈곤율을 감안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중교통 무임승차를 폐지하거나 연령을 높일 경우 노인층의 경제적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무임승차 제도가 지하철 적자의 주된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적용 연령을 조금 올린다고 해서 당장의 지하철 적자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연령 상향이나 폐지가 아니라) 이동권과 복지 차원에서 중앙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 운전자 느는데… 논란 활활
일정 연령이 넘어가면 운전면허를 의무적으로 반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이번 연휴 기간인 지난 1일에도 오후 7시3분 충북 청주시 청원구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하남방향) 내에서 70대 남성이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지나가던 부부를 치어 50대 아내가 숨지고 남편이 크게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운전자는 음주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온라인 공간 등에서는 노인 운전자를 문제 삼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이런 가운데 택시 기사 10명 중 4명은 65세 이상 고령자라는 통계가 공개됐다. 도로교통공단이 최근 발간한 학술지 ‘교통안전연구’에 실린 ‘고령 택시 운전자의 자격 유지검사 강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버스·택시·화물 등 전체 사업용 운수종사자 74만명 중 만 65세 이상은 15만5000명에 달해 약 20.8%를 차지했다. 특히 택시의 경우 종사자 24만명 중 39.7%에 이르는 9만5000명이 65세 이상이었다. 택시 업종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간 65세 이상 고령자가 3만1000명에서 6만1000명으로 2배 증가했고, 이어 2021년엔 1.5배로 늘었다.
운수업 종사자의 나이가 많아지다 보니 정부는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에 대해 운전적성 정밀검사(자격 유지검사)를 통해 계속 운전할 자격이 되는지를 점검하고 있다. 택시 분야는 2019년 2월부터 65세 이상 운전자에게 자격 유지검사를 도입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적성검사로 대체할 수 있게 돼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자격 유지검사에 비해 적성검사에서 떨어지는 비율이 크게 낮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팀은 보다 엄격한 검사 제도를 주문했다.

◆“국가의 금전 지원, 우울감 줄여”
이런 논란들과 더불어 OECD 회원국을 기준으로 한 각종 지표들에서 한국 노인이 처한 현실이 비관적으로 나타난 것과 관련, 국가가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공적 이전이 노인의 우울감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이 집중된다. 반면에 자녀가 주는 용돈이나 민간보험 같은 사적 이전은 노인의 우울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톨릭대 송치호 교수 연구팀은 ‘2023년 한국복지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노인 다차원적 빈곤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서 이전 소득의 조절적 역할에 관한 탐색적 연구’ 논문에서 한국복지패널 15차(2019년)∼17차(2021년) 자료를 토대로 노인 빈곤과 우울감 사이 공·사적 이전 소득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공적 이전 중 기초연금과 기초보장급여만 우울 정도를 덜어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초연금 혹은 기초보장급여를 수급하는 경우 빈곤 위험이 있는 경우나 없는 경우 모두에서 수급하지 않는 경우보다 우울감이 적었다. 기초연금과 기초보장급여는 정부가 주는 대표적인 현금성 급여다. 반면 국민연금은 빈곤 여부와 상관 없이 수급자의 우울감이 비수급자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급여 수준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 국민연금이 우울감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민간보험 수급이나 가족 지원 역시 우울감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노후의 경제적 불안정은 개인적 차원의 접근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며 “선진 복지국가들과 비교할 때 불명예스러울 정도로 높은 한국 노인빈곤 감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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