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첨단화’를 외친 정부가 반려동물 예산은 50%가량 늘린 반면 내년도 농업 기술개발(R&D) 및 신산업 육성 분야 예산은 반토막 낸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전체 예산이 정부 총지출 증가율의 두 배 증가했음에도 R&D 등 예산이 반토막나자 전문가들은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 상실이 초래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2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세입세출예산사업별 설명서’를 세계일보가 분석한 결과, 내년도 R&D 및 신산업 육성 분야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이 올해 약 5000억원 규모에서 2800억여원 규모로 축소됐다. 예산의 절반가량이 줄어드는 셈이다.
이는 전체 농식품부 예산이 18년 만에 국가 총지출 증가율(2.8%)을 넘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농식품부 예산은 18조3330억원 규모로 올해(17조3574억 원) 대비 5.6% 증가했다.
특히 삭감된 R&D 예산 가운데 농식품기술개발 관련 예산의 경우 올해 1911억2700만원 규모에서 내년 1276억900만원으로 3분의 1가량 줄어든다. 농식품기술개발은 농업신산업육성 사업의 하나로 민간을 중심으로 스마트팜 기술, 농업기반 및 재해대응 기술, 농생명혁신 기술 등 농림·축산·식품 등과 관련한 기술 고도화와 관련한 예산이다. 우리나라의 농업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씨앗’이 되는 예산인 셈이다.
이와 더불어 농림·축산·식품 R&D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진흥청의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일반회계 기준 올해 1조1514억1600만원이었던 농촌진흥청의 예산은 9972억700만원으로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연구개발 예산은 5737억원으로 올해 7612억원보다 무려 24%나 삭감됐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인 농업과학원과 식량과학원, 원예특작과학원, 축산과학원 모두 기존 연구계획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농업과학기반연구, 작물연구, 민간연구개발지원 등을 도맡아 하는 이들 기관의 예산 삭감은 농업혁신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전통 농업의 미래산업화’를 천명한 지난해 정부의 움직임과 배치된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12월 약 10년 만의 조직개편을 통해 스마트농업과 빅데이터 등을 총괄하는 ‘농업혁신정책실’을 신설하고, 동물복지 강화를 위한 전담 부서를 국장급 조직으로 격상했다.
아울러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제1차 청년농 육성 기본계획과 스마트농업·푸드테크·그린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방안을 마련해 생산중심의 전통적 구조를 정보통신기술(ICT)·생명공학(BT)·로봇 등 첨단기술과 융복합된 미래산업구조로 대전환시키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동물 보호 및 복지 예산만 186억9200만원으로 올해(127억2800만원)보다 약 50% 늘어났고 농업혁신 관련 예산은 줄어들어 사실상 ‘반쪽뿐인’ 약속이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농업기술 경쟁력 약화, R&D 인력 토양 황폐화 등을 이유로 R&D 예산 삭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역대 정권에서 R&D 예산이 정체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떨어진 적은 처음이다”라며 “만약 예산 삭감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관련 전문가들과 오래전부터 수차례 논의를 진행하고 불필요한 예산을 정밀하게 없애는 식으로 하는 게 맞는데 이러한 작업이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예산이 쪼그라들면 농업의 첨단 산업 도약이 지체될 것이고 더불어 대학원생 등 관련 분야 후진 양성이 어려워져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 상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