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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설킨 재판 지연… “법관증원·상고제 개선으로 풀어야” [심층기획-법조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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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7 06:00:00 수정 : 2023-09-26 18: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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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새 출발 앞둔 사법부의 과제

대법원장 후보자, 재판지연 원인 놓고
머리 계속 솟는 괴물 ‘히드라’에 빗대
내부 문제·사회 변화 맞물려 복합적
법원장추천·사무분담위 등 폐지 거론

희망지 장기근무 보장·수당 신설 등
근로의욕 높일 다양한 인센티브 필요
‘숙원 사업’ 상고제 개혁도 진전 없어
대법관 정원 확대 등 국회도 뒷받침을

“재판 지연은 신화 속 괴물 히드라 같아서 여러 원인이 얽혀 있다.”(19일 이균용 후보자 인사청문회)

새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단연 재판 지연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다. 9개의 목을 가진 히드라와 같이 재판 지연의 원인 역시 법원 내부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변화가 함께 맞물리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법조계에선 재판 적체를 단칼에 제거할 순 없더라도, 사무분담위원회 폐지 등 법원 내부의 제도 개선에서부터 법관 증원 등에 대한 국회의 뒷받침까지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연합뉴스

◆“근로의욕 높일 다양한 인센티브 필요”

일각에서는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단행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를 지목한다. 법원의 사건처리 기간이 길어진 데에는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심리주의 강화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만큼 인사제도 ‘회귀’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의 방식대로 사건처리율과 처리 기간, 상소율 등의 근무평정으로 판사를 닦달하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법관의 인력 이탈만 부추긴다는 우려도 있다.

한 고법판사는 “젊은 판사 입장에서 고법부장 승진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인사제도를 부활시키는 방식보다는 해외 파견 연수 기회를 늘리는 등 근무 의욕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고법부장 승진이 없다고 판사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분석”이라며 “근무평정에 따라 희망지역 장기근무를 보장하거나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사기진작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했다.

사법행정과 관련해선 김명수 사법부에서 도입한 ‘법원장후보추천제’와 ‘사무분담위원회’를 폐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법원장후보추천제는 각 법원 판사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자들을 압축하면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고르는 제도로 ‘인기 투표와 뭐가 다르냐’는 비판을 받았다. 사무분담위원회 역시 각 법원 판사들로 구성된 별도의 위원회가 판사들의 사무분담을 직접 논의해 결정하는 제도다. 대법원장과 각 법원장의 권한을 덜어내고 판사들의 권한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두 제도 모두 포퓰리즘이란 논란에 휩싸였다. 한 중견 법관은 “사무분담권한을 법원장에게로 다시 돌려야 한다”면서 “현재의 사무분담위원회는 지극히 공급자(판사)를 위한 논리이지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자 역시 서울남부지법원장 시절 “능력 있는 법관이 어렵고 힘든 재판을 맡는 것이 맞다”며 사무분담위원회 설치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서도 평소 부정적인 입장을 주변에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양승태·김명수도 해결 못한 상고제 개선

대법원의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한 상고제도 개선도 법원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대법원은 상고 사건 수가 지나치게 많아 중요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심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고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지만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상고제도는 1994년 심리불속행 제도 도입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이 현재의 제도가 유지돼 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역점 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설치안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불거지며 논의가 중단됐다. 당시 상고법원안은 대법원 이외 법원을 설치해 경미한 상고사건을 처리하는 방안이었다. 이후 출범한 김명수 사법부도 “실정에 알맞은 상고제도 도입”을 약속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통해 관련 방안을 논의한 대법원은 올해 1월 상고심사제 도입과 함께 대법관 4명을 증원하며 심리불속행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입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상고심사제는 대법원이 모든 상고 사건을 심리하지 않고 상고심이 필요한 사건을 선별해 심리하는 제도다. 대법원은 법리를 다투는 ‘법률심’인 만큼 중요한 법적 쟁점이 있는 사건 심리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남정탁 기자

다만 이 같은 상고제 개선에 대한 법조계 내 찬반은 팽팽하게 엇갈리는 실정이다. 세계일보가 기획하고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한 ‘법조의 미래를 묻다’ 설문조사에서도 ‘상고법원 설치(상고 수리·허가제 도입)’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286명·51.62%)와 ‘동의한다’(255명·46.03%)는 응답률이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부장판사 출신인 성창익 변호사는 “상고제도 개혁에서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인권 보호를 증진하는 것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지 대법관의 사건부담 경감 그 자체나 대법관 수의 희소성 유지를 통한 권위 확보와 같은 가치가 우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재 상고심은 국민에 대한 응답 기능이 극도로 약화된 상태”라고 말하며 상고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법관 정원을 8명까지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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