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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카르텔’ 악순환 고리 끊을 수 있을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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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4 11:00:00 수정 : 2023-09-25 12: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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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교육 카르텔
교육 정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는 최근 교육 기사에 자주 쓰이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 논란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가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최근 교육부가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는 ‘카르텔’입니다. 국어사전은 카르텔의 뜻을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에 대해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교육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단어입니다. 

 

교육 기사에 카르텔이 등장하게 된 것은 지난 6월부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하면서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내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서울 목동 학원가의 모습. 뉴스1

이 발언은 처음에는 ‘킬러문항’(공교육 밖에서 출제된 초고난도 문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습니다. 수능에 킬러문항이 나와 학생들이 사교육을 찾게 되는 구조 자체가 공교육과 사교육의 카르텔로 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죠. 

 

이후 화살은 사교육업계로 향했습니다. 대형학원 등이 수능 출제진 출신으로부터 킬러문항을 사 모의고사 문제를 팔고, 교육 당국은 이를 알면서도 변별력 확보를 위해 킬러문항을 낸 것이 카르텔이라는 해석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학원이 수능 출제진에게 거액을 주고 문제를 산다는 것은 교육계에선 암암리에 퍼진 소문이었습니다. 실제 몇몇 학원은 높은 수능 적중률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교육부는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약 일주일 만인 6월21일 “사교육 이권 카르텔, 학원 허위·과장광고 등에 대해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소문이 무성했던 ‘수능 출제 체제와 사교육 업체 간 유착’, 즉 ‘사교육 카르텔’에 칼을 뽑아 든 것입니다. 2주 동안 325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 중 81건은 사교육 카르텔 관련 사안으로 분류했습니다. 신고에는 유명 강사가 수능·모의평가 출제위원 출신 교사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며 이들에게서 산 문항으로 교재를 만들었다는 의혹도 포함됐습니다.

 

교육부는 지난달에는 교사를 대상으로 자진신고를 받았습니다. 2주간 322명이 최근 5년 안에 문제를 만들어 파는 등 사교육업체와 연계된 영리 행위를 했다고 신고했습니다. 교육부는 이 중 24명이 2017학년도 이후 수능·모의평가 출제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고소·수사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4명은 문제를 만들어 판 후 출제진에 합류했고, 22명(2명 중복)은 출제 뒤 문제를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년간 억대 수입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소문으로 떠돌던 사교육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사진=공동취재

교육부는 ‘소수’의 일탈이 있었다고 해서 수능이 ‘공정하지 않은 시험’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여러 명이 문제를 만들고 수차례 수정하는 현재 출제 구조상 특정 개인이 만든 문제가 시험지에 그대로 실릴 일은 희박하고, 문제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험생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교사의 문제를 평소 학원에서 많이 접했던 학생들은 수능에서 조금이나마 유리한 구도가 되는 셈이니까요. 30년간 대입을 이끌어온 수능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은 분위기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적발된 이들은 스스로 사교육업체에 문제를 팔았다고 신고한 이들입니다. 자진신고하지 않은 교사 중 문제를 만들어 팔고 수능 출제진에 합류한 사례는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조사 대상도 2017학년도부터 7개년만 포함됐고, 수능 출제진 중 55%를 차지하는 교수는 조사에서 빠졌습니다. 실제 사교육 카르텔은 훨씬 오래전부터, 더 큰 몸집을 도사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교육부 전경. 연합뉴스

이제라도 이런 실태가 드러난 것은 다행입니다만, 한편으론 입맛이 씁니다. 그동안 교육부는 왜 이런 문제를 잡아내지 못했을까요? 교육부는 “사교육 업체의 탐욕이 가장 공정해야 할 사회시스템을 물밑에서 훼손해 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작은 물론 사교육 업체의 탐욕입니다. 하지만 그 탐욕에 응한 것은 교사고, 교사는 교육 당국의 책임입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을 문제를 적발하지 못한 것도 명백한 교육 당국의 잘못입니다.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 적발을 실적으로 자랑할 때가 아니라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앞으로도 문제입니다. 교육부는 제도를 개선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떻게’란 질문에는 ‘곧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문제 판매 사실을 작정하고 숨기는 교사를 어떻게 적발할지, 자진신고 외에 뾰족한 방법이 있을지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들을 적발할 제도가 없어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교육부의 말대로, 이번에는 사교육 카르텔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길 바랍니다. 이 은밀한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교육 당국에 대한 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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