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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는 눈물…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다큐 ‘이터널 메모리’ [엄형준의 씬세계]

, 엄형준의 씬세계

입력 : 2023-09-19 08:34:33 수정 : 2023-09-19 08: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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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내가 아니야.”

 

삶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기억을 잃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 또한 그러하다.

 

20일 개봉하는 마이테 알베르디 감독의 ‘이터널 메모리’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칠레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아우구스토 공고라와 그를 사랑하는 아내로 배우이자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파울리나 우루티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우루티아가 자신이 누구인지 공고라에게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처음부터 관객의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아직 많은 기억이 남아있는 시절, 둘은 함께 음식을 먹고, 손을 잡고, 산책하고, 춤춘다. 이들의 사랑은 영화 속의 햇살과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 만큼이나 따뜻하고 아름답다.

 

공고라에겐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군사독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집권기에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보도 통제 속에서도 억울한 죽음을 알리거나 시위 소식을 취재하고, 동료들과 함께 전 세계에 이를 은밀하게 배포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실종돼 주검으로 돌아오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겪는다. 그의 친구처럼 민주화 과정 중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사라졌고, 그는 정권이 바뀐 뒤 책, ‘칠레: 금지된 기억’을 통해 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겼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일까. 그는 때때로 지금의 ‘나’를 잃을 때마다 친구를 찾으며 괴로워한다. 그의 곁에는 20년 이상을 알고 사랑한 우루티아가 있음에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아내에게 말하며 “오래 살고 싶다”던 이 노신사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얼굴은 초췌해진다. 그는 이내 “오래 살고 싶냐”는 아내의 질문에 “아니”라고 힘없이 답한다.

‘이터널 메모리’는 한 인간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고통과 민주화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하나로 엮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를 담은 다큐멘터리지만, 영상미와 흡입력은 픽션 이상으로 빼어나다. 처음 알베르디 감독이 촬영을 제안했을 때 우루티아는 사생활이 드러나는 걸 우려해 반대했지만, 역사의 기록자였던 공고라는 “나의 나약함을 보여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촬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한다. 4년간 부부와 함께 촬영한 이 다큐멘터리 수작은 올해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베를린국제영화와 마이애미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지난 14일 개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참석 등을 위해 방한한 우루티아는 영화에 대해 “망각과 잊어버림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기억을 전달하는 영화”라며 “칠레의 역사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고, 병을 극복하고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접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칠레와 한국의 역사는 공통되는 부분이 많다며, 이 영화가 우리의 기억을 되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기억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루티아의 말처럼 “결국은 사랑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그리고 눈물을 통제할 수 없는.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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