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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할부 갚듯 차곡차곡 지분 늘려 ‘온전한 내 집 소유’ 결실 [지방기획]

입력 : 2023-09-14 19:14:52 수정 : 2023-09-14 19: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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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도입

광교신도시 A17블록 240가구 대상
4분의 1값으로 초기 공급해 부담 ↓
20~30년간 4년마다 남은 지분 취득
5년간 의무거주·10년 전매 금지 규정
일각 “장기거주 가능할지 의문” 지적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수원 광교신도시의 ‘알짜 택지’ A17 블록(옛 법원·검찰청 부지)에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도입한다. 원가 수준의 분양가에서 입주자가 최초 지분(10~25%)만 부담한 뒤 20~30년에 걸쳐 나머지 지분을 4년마다 분할 취득하는 방식이다. ‘경기도형 공공분양주택’으로 불리는 이 주택은 마치 적금을 납입하거나 고가의 차량을 할부로 사는 것처럼 지분을 차곡차곡 늘려 ‘온전한 내 집’을 소유하도록 유도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전용면적 60㎡ 이하가 대상이다.

12일 GH에 따르면 광교신도시 A17 블록 600가구 가운데 240가구가 지분적립형으로 시범 분양된다. 2025년 하반기 착공해 2028년 후분양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나머지 360가구(전용면적 60~85㎡)는 일반 분양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수원 광교신도시 A17 블록, 4만248㎡ 규모의 옛 법원·검찰청 부지에 전용 60㎡ 이하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240가구 등 600가구가 2028년 들어선다. GH 제공

같은 지분적립형 주택 가운데서도 특별·일반 공급의 비율은 4대 6 안팎이다. 신혼부부와 청년층이 주된 공급 대상이 될 전망이다.

◆ 광교신도시에 60㎡ 이하 240가구

‘반의반 값’ 아파트로 불리는 지분적립형 주택은 2년 만에 경기도에서 되살아났다. 이 주택은 금싸라기 땅에 있는 공공분양 단지에 ‘4분의 1 값’으로 초기 공급되는 게 특징이다. 실제 입주금이 그만큼 줄어든 건 아니지만, 내 집 마련 실수요자의 초기 부담을 크게 줄인 방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로또 분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입주 때 일부만 값을 지불하고, 거주하면서 지분을 늘리는 형태를 띤 이 주택은 남은 지분을 100% 취득하기 전에는 공공주택 사업자가 보유한 지분에 대해 임대료도 내야 한다. 인근 주택 임대료의 80% 수준으로 취득 지분이 늘수록 부담도 줄어든다.

김세용 GH 사장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던 2021년 8월, 강서구 마곡지구의 미매각 부지인 차고지와 10-2블록의 2곳에 지분적립형 주택 도입을 처음 제안한 바 있다. 이 계획에 따라 같은 해 9월 관련법이 마련됐다.

관련법에선 분양가 9억원 이상 주택은 30년형, 9억원 이하는 20년과 30년형에서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아울러 수분양자의 자산가액이 통계청 등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소득 3분위, 평균값의 130% 이하에 속해야 한다는 세부 시행규칙이 담겼다. 가점제 없이 100% 추첨제 운용도 특징이다. 다만, GH는 경기도형 주택에 어떤 세부 규정을 적용할지에 대해선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앞서 김 사장이 SH 사장 시절 제안한 지분적립형 주택의 대상 부지들은 당시 2020년 8·4 부동산대책에 포함됐던 신규 공공택지였다. 마곡지구 외에 가락동 성동구치소 부지, 삼성동 서울의료원 부지, 상암동 DMC 미매각 부지 등이 거론되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나 김 사장이 SH를 떠난 뒤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계획이 수정됐다.

지분적립형 주택은 현재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도하는 ‘뉴:홈’, SH의 토지임대부 주택 등과 함께 저렴한 반값 아파트로 불린다.

다만, GH의 지분적립형 주택은 소유를 강조한 장기 할부 구매 상품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임대가 아닌 분양에 방점을 찍었다. 김 사장은 “주택 수요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용 60㎡ 이하이지만 발코니 확장 등으로 기존 80㎡에 버금가는 공간 활용성을 지닐 것”이라며 “신혼부부 등에 적합한 형태”라고 밝혔다.

예컨대 신혼인 홍길동씨 부부가 분양가 5억원짜리 주택을 20년 만기 4년 단위 지분적립형으로 분양받을 때, 입주 시 분양가의 25%인 1억2500만원만 내면 된다. 이후 4년마다 나머지 지분 75%를 5차례에 걸쳐 취득하게 된다. 매번 분양가의 15%인 7500만원에 연 2%를 가정한 가산이자를 더한 금액을 낸다.

5차례의 분납 과정에서 이자는 9000만원가량 붙게 된다. 홍씨 부부가 5억원짜리 지분적립형 주택을 취득하면서 내는 총비용은 5억9000만원인 셈이다. GH 보유 지분에 대한 별도의 사용료도 부담해야 하는데, 월 20만원 안팎에서 시작해 홍씨 부부의 지분이 늘수록 줄어든다.

GH 관계자는 “정확한 분양가와 가산이자, 사용료 등을 정하지 못했다”면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체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산이자의 경우, 고정·변동 금리 등에 따라 연 2∼3%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를 더해도 인근 광교신도시 아파트값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GH는 지분적립형 주택의 변질을 막고 온전히 주거수단으로 이용되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5년간 의무 거주, 10년간 전매 금지 규정이다. 만약, 홍씨 부부가 10년 이상 거주했지만 100%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매한다면 매매 시점의 지분 비율로 GH와 차익을 나누게 된다. 전매제한 기간 안에 불가피한 사유(해외 체류 등)가 발생하면 GH에 환매도 가능하다.

◆“도민 누구나 내 집 마련 기회”

지분적립형 주택은 전임 이재명 지사 때의 장기임대주택인 ‘기본주택’을 대신하는 공공분양주택이다. GH는 이를 가리켜 수도권 거주자의 내 집 마련 꿈을 실현할 방안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주민의 자가보유율은 54.7%(2021년 기준)로 다른 광역시(62.0%)에 비해 크게 낮다.

김 사장은 “무주택자이면서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는 도민이라면 누구나 내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형성할 ‘기회’를 주겠다”며 “목돈을 들이지 않고 내 집을 마련할 방안을 고민하다가 지방정부가 법 개정을 하지 않고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주택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김세용 GH 사장이 지난 4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지분적립형 분양주택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GH 제공

추후 정책효과 등을 검토해 GH가 시행사로 참여 중인 3기 신도시 등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현재 GH가 보유한 물량은 3기 신도시의 하남교산(1744가구), 고양창릉(1718가구), 남양주왕숙(2498가구) 등이다.

앞서 GH는 2019년 9월 A17 블록에 중산층 임대주택 549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으나,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정책을 전환했다.

GH는 지분적립형 주택이 알짜 택지에 다수 공급되면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 집값의 안정화에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수익이 일반적인 민간아파트에 비해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20∼30년 뒤 100% 지분을 확보하면 시세대로 팔 수 있어 집값 상승 시 매매차익도 일부 기대할 수 있다.

시세와 상관없이 이자율에 따라 분양한 공공기관에만 되팔 수 있는 토지임대부 주택이나 주변 시세 등을 반영한 감정가로 공공기관 환매가 허용되는 이익나눔형 주택과 다른 점이다.

일각에선 지분적립형 주택이 일정 기간 전매 제한 등으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있고, 거주하면서 사용료를 내야 하는 등 ‘숨겨진 비용’이 있어 다른 반값 아파트처럼 무조건 환영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수분양자가 장기 거주하도록 유도한 것을 두고 긍정적 평가가 나오지만, 20년 이상 장기 거주가 실제 가능할지에 대해선 의문도 제기된다. 한 수도권 대학의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아직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라며 “신혼부부와 청년층에 의미 있는 공급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임대주택 아닌 자가주택… 도민들에 고른 기회 제공”

 

김세용(사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은 주택시장 변동에 따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최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도시생태와 고령화를 고려해 생애주기별로 주택의 역할을 부여하는 등 도시의 복합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도내에 새롭게 도입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두고는 ‘고른 기회’와 함께 임대가 아닌 ‘소유’를 강조했다. 그는 “주택을 통한 부의 세습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형태”라며 “과거 촛불집회도 공정한 기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단초가 됐다. 어떻게 기회의 공정을 지키면서 자가주택을 늘릴 수 있는지 방향성을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주택·도시정책 분야 권위자인 김 사장은 또한 “소득 10분위 가운데 9, 10분위는 알아서 집을 사고 1, 2분위는 공공임대의 혜택을 받지만 4∼6분위는 자가주택을 원해도 공공분양이 적어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취직해서 돈을 모으고 집을 사려면 40대는 돼야 하고 10억원은 있어야 한다. 경기도가 집을 살 기회를 드리고 나머지는 차근차근 갚으라는 뜻에서 새 정책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시범 운용 뒤 3기 신도시 등으로 확대해 물량을 늘리겠다”고 예고했다.

 

2018년부터 3년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말 GH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도시설계학회장을 지낸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전문가이다.

 

그는 전임 지사 때 나온 장기임대주택인 ‘기본주택’을 두고는 “아직 한 채도 없다는 건 작동이 안 된다는 뜻이고, 그래서 가능한 정책을 폐기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김동연 지사의 민선 8기 공약인 신도시·원도심 재정비사업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지역균형발전의 해법은 광역교통망 확충이나 신도시 건설이 아니라 ‘빨대 효과’를 막을 ‘직주일치’(직장·주거 일치)라는 신념 때문이다.

 

김 사장은 김 지사와의 정책 궁합에 대해선 “이곳에 내려오기 전까지 김씨라는 공통점 외에 없었는데 (겪어 보니) 굉장히 합리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도시정책·기후변화 등과 관련해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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