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경영난이 악화일로다. 어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전은 작년 25조2977억원 적자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각각 6조4193억원, 1773억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작년부터 5차례에 걸쳐 전기료가 40% 가까이 올랐는데도 한전의 적자행진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다. 가뜩이나 최근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올라 한전의 부실은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한전은 빚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 지 오래다. 지난 6월 말 현재 부채는 201조4000억원으로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향후 5년간 한전이 떠안아야 할 이자만 24조원인데 하루 이자가 131억원이라니 어이가 없다. 앞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전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 직전까지 강등했다. 한전이 발행하는 한전채 규모가 법정한도에 걸려 내년에 자금줄이 아예 막힐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오죽하면 한덕수 총리가 “어떤 대책이든지 있지 않으면 한전은 부도가 날 것”이라고 했을까.
한때 우량 공기업의 대명사였던 한전은 문재인정부 5년간 정치논리에 휘말려 빚더미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문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 매달려 값싼 원전 가동을 줄이는 대신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그 결과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며 만신창이가 됐다. 4분기(10∼12월) 전기요금은 원가와 수요를 반영해 추가로 인상할 수밖에 없다. 한전의 부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치솟는 물가가 두렵다고 마냥 요금인상 억제로 미래세대에 비용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사정이 이리 다급한데 한전의 새 수장에 김동철 전 국회의원이 내정됐다니 걱정이 크다. 한전은 오는 18일 임시주총에서 김 전 의원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다. 한전 창립 62년 만에 첫 정치인 출신이다. 그는 정치 이력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지만 윤석열 대선 후보 특별 고문과 인수위 국민통합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한전 등 에너지 분야에서 일한 경력은 없다.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런 그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 논리에 반하는 정치 입김을 제대로 막아낼지 의문이다. 새 사장은 비상한 각오로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고강도 자구안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실천해 경영정상화에 매진하기 바란다. 차제에 정치가 에너지 가격을 좌우할 수 없도록 전기위원회 독립성 강화 등 실질적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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