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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3㎝ 고대인 vs 162㎝ 나폴레옹 병사… 환경따라 변화한 유전자로 살펴본 인류

입력 : 2023-08-11 23:10:00 수정 : 2023-08-11 20: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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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농경사회부터 현대까지
환경 적응하며 유전적 표현형 변형
키·몸무게 등 신체 변화 뿐 아니라
뇌의 진화 동반… 발전 원동력으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환경이 다가오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존재론적 위기 앞에 인류가 놓인 셈이다. 하지만 구석기시대를 벗어난 지 고작 1만년 만에 다른 동물이 해내지 못한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인류가 이런 위기들 속에 또 어떻게 변해갈까. 영국 출신의 의사이자 당뇨병 연구의 권위자 에드윈 게일은 우리가 과거 인류와 그렇게 다르면서도 또한 왜 같은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선다.

 

창조적 유전자/에드윈 게일/노승영 옮김/문학동네/2만5000원

 

그 매개체가 ‘환경의 체에 걸러지고 인생 역정의 손에 빚어진 유전자’의 발현인 ‘표현형(phenotype)’이다. 인류가 끊임없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의 유전적 표현형을 변형시켜 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눈동자의 색과 같은 표현형의 일부 요소는 고정돼 있지만 키나 몸무게 같은 표현형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자의 ‘가소성’(외부 요인에 적응해 변형되는 성질)에 주목하며 인류의 역사를 돌아본다.

프란시스 제라드 작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나폴레옹. 나폴레옹이 징집한 군사들의 평균신장은 구석기시대 유럽인보다도 작았다.

약 2만~3만년 전 이탈리아와 옛 유고연방에 살았던 고대인류 그라베트인은 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가 존재하던 수렵의 황금기에 살았기에 단백질 섭취량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신장이 183㎝ 이상으로 현대 유럽인 못지않게 컸다. 구석기시대 유럽인의 평균 키도 그라베트인보다는 작았지만, 남성 174㎝, 여성 162㎝ 수준이었다.

 

그러나 신석기 혁명과 더불어 인류가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인간의 키는 갑자기 줄어들었다.

 

농경시대 인류는 식단에 탄수화물 비중이 올라갔고, 물고기와 작은 사냥감으로 단백질을 보충해야 했기에 이전보다 영양이 부족해진 탓이다. 이후에도 인류는 오랜 기간 구석기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령 프랑스의 의사 루이 르네 빌레르메가 나폴레옹이 징집한 병사 10만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평균 키는 162㎝ 수준이었다. 특히 지역별로 편차가 있었는데, 부유한 지역 출신은 168㎝, 가난한 산악지대 출신은 156㎝였다.

표현형의 변화는 이상적인 신체에 대한 관념도 바꾼다. 이상적인 여성상이 고대에는 풍만한 몸매였던 반면 현대에는 ‘바비’ 인형으로 대변된다. 왼쪽부터 고대 비너스상과 영화 ‘바비’의 주연 배우 마고 로비.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이런 인류의 표현형 전환의 특성을 구석기 표현형, 농경 표현형, 특권 표현형, 소비자 표현형 등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현대인보다 몸집이 컸던 ‘구석기 표현형’이 몸집이 작아진 ‘농경 표현형’을 거쳐 중세를 지나 산업혁명 시대까지 특권층이 더 좋은 신체적 특성을 보여주는 ‘특권 표현형’으로 나타난다. 이러다 현대 사회에서는 넘치는 풍요에서 생겨난 만성적 영양 과잉과 비만의 유행으로 나타나는 ‘소비자 표현형’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 사회에 당뇨병이 급증한 것은 당뇨병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조상들과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표현형의 역사는 단순히 신체적인 것에 멈추지 않는다. 뇌는 인체의 모든 장기 중에서 가소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정신적 변화도 동반한다. 우리의 뇌는 학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하고 이것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류가 불을 사용해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아래턱이 작아지고 돌출했다. 그로 인해 얼굴 근육으로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게 됐고 언어와 노래가 탄생했다. 사교술이 번식 성공의 관건이 되어 사회적 뇌의 진화를 이끌었다.

에드윈 게일/노승영 옮김/문학동네/2만5000원

표현형의 변화는 이상적인 신체에 대한 관념도 바꾼다. 이상적인 여성상이 고대에는 풍만한 몸매의 비너스상으로 표현된 반면, 현대에는 자신의 팔보다 50%나 긴 다리를 가진 비현실적인 몸매의 ‘바비’ 인형으로 대변된다.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은 유전자 표현형의 변화와 함께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인류는 미래에도 달라진 환경에 따라 또다시 표현형을 전환하며 생존해 나갈 것이라고 낙관한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요,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창조적인 유전자의 가소성을 앞세워 “삶에 놀랍도록 훌륭히 적응한” 성공적인 종이기 때문이다.


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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