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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너무 힘들어”…서이초 교사 사망 5일 전 보낸 문자 공개돼

입력 : 2023-08-05 19:09:34 수정 : 2023-08-06 23: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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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사건’ 관련 학부모 상담이 있던 당일 어머니와 나눈 문자 메시지 공개돼
생전 업무수첩서 “어머니, 아이가 뭘 하든 그냥 놔둘까요” 하소연
교육부 “연필사건 사실, 학부모 전화 시달려” 합동조사 결과 발표
지난달 18일 교내에서 숨진 서울 서이초 교사가 이른바 ‘연필 사건’의 학부모 상담이 있던 지난달 13일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재구성 내용. JTBC 방송화면 갈무리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이른바 ‘연필 사건’의 학부모 상담이 있던 당일 자신의 어머니와 나눈 메시지가 공개됐다.

 

5일 JTBC와 교육부 등에 따르면 A씨가 생전 작성했던 업무수첩 일부가 유가족 동의를 받아 공개됐다. 업무 수첩에는 학급에서 발생한 일들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A씨는 학기 초부터 특정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적어놨고, 어떻게 해야 잘 지도할 수 있는지 등을 고민했다. 또 ‘학급 붕괴를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써놓기도 했다.

 

수첩에는 “아이에게서 문제 행동이 보이면 바로 협력 교사에 요청해야 한다”, “반말이나 발차기 등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강하게 훈육해야 한다” 등 A씨의 다짐이 적혀 있기도 했다.

 

그러나 A씨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학부모와 면담 후 A씨가 힘들어 한 정황이 담겼다. 지난 6월 A씨는 학부모와 대화한 걸로 보이는 내용을 적어뒀는데 당시 그는 학부모로부터 “왜 자꾸 우리 아이한테만 그러냐”는 말을 들었고, “어머니, 그럼 그냥 놔둘까요? OO이가 뭘 하든 그냥 놔두면 되나요?”라며 하소연하는 듯한 메모를 남겼다.

 

유가족은 ‘연필 사건’의 학부모 상담이 있었던 날 딸 A씨와 나눴던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메모가 출입문에 가득 붙어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앞서 서울교사노동조합은 A씨 담당 학급의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그은, 이른바 ‘연필 사건’과 관련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고인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연필 사건’은 지난달 12일 A씨의 학급 수업 중에 발생했다. 당시 B학생이 C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C학생이 연필을 빼앗으려다 자기 이마를 그어 상처가 생겼다. 그러자 C학생의 학부모가 여러 차례 A씨의 휴대전화로 전화했다고 한다.

 

A씨는 이튿날인 13일 학교 측에 상담을 요청하면서 ‘연필 사건’을 보고했고, 학교 측은 학생과 학부모의 만남을 주선해 사안을 해결했다. 그러나 A씨는 다시 연필 사건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면서 “연필 사건이 잘 해결됐다고 안도했지만, 연필 사건 관련 학부모가 개인번호로 여러번 전화해서 놀랐고 소름 끼쳤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학부모 상담이 있던 13일 오후 4시쯤 “엄마 ㅠㅠ”라며 눈물 이모티콘과 함께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어머니가 “왜?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길래”라고 묻자, A씨는 3시간 뒤 “너무 힘들다”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A씨 유가족은 “(대화 내용을 보고) 정말 힘들었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아팠다. 미어졌다”며 “얼마나 힘들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연필 사건’ 발생 약 일주일 후인 지난달 18일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한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 결과 브리핑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는 전날 서이초 교사 사망 사안의 진상규명을 위한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A씨 담당 학급에서 ‘연필 사건’이 발생한 게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 A씨가 학생 생활지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A씨가 ‘연필 사건’ 후 여러 차례 학부모 전화에 시달렸으며 주변에 불안감을 호소했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동료 교사 증언과 기록에 따르면 A씨는 연필 사건에 연관된 학생 2명 외에도 또 다른 학생 2명의 문제행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학생은 가위질을 하다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울부짖는 소리를 내서 교사가 불안해했다고 한다. 교육부는 교사가 학생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지만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데 학교에서는 왜 그랬을까요”라고 했다는 동료 교사의 진술도 확보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워 가겠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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