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람 ‘무절제한 존재’로 태어나
교육 통해서 인간다워 지는 것
신림동 묻지마 범죄·교사 폭행…
가족 해체와 교육 부재가 원인

자그마치 전과 17범이었다. 소년의 비행력은 형사 전과로 취급하지 않아서일 뿐 신림동 살인마는 사실 어릴 때부터 사법기관을 내 집 드나들듯 했던 자였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다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라는 것이 범행의 동기라니, 참 혀를 찰 노릇이다. 묻지마 폭력이 대부분 분풀이성 범죄이기는 하지만 2010년 신정동 살인마 이후 남들의 행복이 범행동기라고 주장하는 자가 또 나타난 것은 그저 우연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신정동 사건의 경우에는 여성의 ‘행복하게 웃는 소리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여 당시 일반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가족 해체와 교육 부재이다. 신정동 살인마나 신림역 사건의 주인공이나 전과가 수없이 누적된 데에는 어린 시절 가정 해체로 인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착 실패가 문제행동의 저변에 똬리를 틀고 있다. 대부분 조발비행하여 어릴 때부터 폭행, 상해를 반복하다가 잠시 폭력 조직이나 단체에 몸을 담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학교와 같은 공식적인 그룹이든, 조폭 집단과 같은 비공식적인 그룹이든, 어디서든 순응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대인관계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은 현저히 결핍되다 보니 어릴 때부터 폭력을 억제하지 못(안)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이 때문에 소년사건을 반복하는 청소년들에 대하여서는 특단의 개입을 해야 하는데, 현재의 소년사법제도 예산은 법무부 예산 중 가장 적은 비중만을 차지한다. 법원 역시 마찬가지여서 소년부를 따로 설치한 곳도 많지 않으며, 대부분 경찰에서 법원으로 송치되는 사건에 대하여 별다른 선도프로그램 없이 종결시키는 것이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십대를 전부 비행을 저지르고 경한 처분을 반복하게 되어 점점 반사회적인 인물로 성장해 나가게 된다. 이들 중 간혹 교도소를 가는 자들도 있는데, 그것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집중적인 사회화교육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기를 완전히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향한 원망이 이들의 가장 큰 재범요인이 된다.

기껏 열두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 열네 번을 사법기관에 의해 처분을 받으려면 당사자는 밤낮 없이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문제행동이 습벽화되기 전 이 사람에게도 아동기와 학령기는 있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교육이란 것의 본질은 자기조절력의 습득인데,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과연 이런 사회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쳤던 것인지가 궁금하다. 어디서 어떻게 문제의 불씨가 키워진 것인지 꼭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비슷한 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서울 양천구의 어떤 초등학교에서 6학년이었던 남학생이 여성 담임교사의 얼굴 등을 수십 차례 때리고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으로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주먹질만이 아니라 이 학생은 가위와 탁상거울 등 흉기가 될 만한 물건들도 담임교사에게 던졌다고 한다. 이 학생은 당시 정서·행동장애로 판별되어 특수반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다. 지도가 수월하지 않은 발달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담임교사는 체육시간에 참여하는 대신 상담을 받으라고 하였다가 봉변을 당하였다고 알려졌다.

신림역 살인사건의 주인공의 어린시절 역시 이와 같은 반항적·적대적 장애요인을 가지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이 같은 발달장애적 요인은 약물치료로 쉽게 완치되기 어렵다는 사실인데, 그래서 영국 등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폭력적인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동들에 대하여서는 어릴 때부터 치료적인 강제개입을 한다. 법원이 치료명령을 내리게 되면 놀이치료 등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데, 이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부모들에 대하여서는 처벌을 내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친권을 제한한다고 알려진다. 생활지도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공립 대안교육 기관들도 꽤 많이 있어서 부모도 교사도 감당하기 힘들 품행장애 학생들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심리치료 중심의 생활지도교육이 제공된다고 한다.

교권이 수난시대이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의 폭력을 감당하기 힘들다. 학교폭력 역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놓고 소송과 맞소송을 반복하고 있지만 막상 학생들의 생활지도 및 행동교정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동료에 대한 폭력도, 선생님에 대한 폭력도 당사자를 학교에서 퇴출하는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교육제도를 우리는 오늘날 마주하고 있다.

사람은 원래 교육이 되어서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다. 아무 데서나 먹고 아무 데서나 싸고 화나면 떼쓰고 우는 일이 다반사인 무절제한 존재로서 태어난다. 결국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 인간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오늘날은 가정도 학교도 이런 기본적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이라면 뭔가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어린 아동을 위한 그룹 홈이나 인성교육을 중점적으로 여기는 대안학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그나마 해결점이 되지 않겠는가? 정말 지금까지의 가정과 학교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