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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식 ‘역사바로세우기’ [편집인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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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7-08 15:00:00 수정 : 2023-07-08 13: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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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주세죽(왼쪽), 강진석.

윤석열정부에서 위상이 가장 높아진 부처는 국가보훈부일 것이다. 군사원호청으로 출범한 지 62년만에 국가보훈부로 승격돼 19번째 ‘부’가 됐다. 국가유공자를 비롯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예우하고 지원하는 보훈 정책을 국정 주요 과제로 삼은 것은 국가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전 세계 전장에 흩어진 미군의 잔해를 수습해 현직 대통령 거수 경례를 받으며 귀환하는 장면은 늘 장엄미가 느껴진다. 국가 정체성, 국민 통합 차원에서 고도로 기획된 행사다. 미국 호주 등 많은 나라들이 보훈 부처를 부로 운영해온 데다 이미 상당수 보훈 대상자들이 고령화하고 생활고에 시달려온 점을 고려하면 부처 승격은 만시지탄이라는 지적을 살 만하다.

 

국가보훈부가 부 승격 이후 독립유공자 서훈 재검토에 착수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독립유공자 자격 여부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독립유공자 서훈 작업은 있었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서훈 공적심사위 운영 규정을 개정해 이미 받은 이들에 대한 서훈 박탈 여부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주세죽·강진석 독립유공자 서훈 재검토’(7월3일자·구현모 기자) 기사는 보훈부에서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대상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유공자임을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 정체성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친북·가짜 논란 독립유공자 박탈

 

보훈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기준을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 눈높이’는 모호한 표현이다. 보훈부 관계자와 세계일보 기자의 통화 내용에 따르면 ▲북한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 ▲북한 주요 인사의 친인척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허위 공적 의혹이 제기된 포상자 등이 재검토 대상이다.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 손용우는 광복후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이력때문에 과거 6차례 탈락했는데도 문재인정부 시절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이다. 보훈부측은 북한 정권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선정된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손용우는 지난 정부에서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을 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거나 적극 동조한 것이 아니라면 사안별로 판단해 검토한다’는 방침에 따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사실상 대한민국 공산화를 위해 창설된 남로당에서 활동한 그의 이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계일보가 재검토 대상으로 단독 보도한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 김일성 외삼촌 강진석 역시 ‘국민 눈높이’가 기준이다. 항일 여성단체 활동을 주도한 주세죽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초대 내각 부수상 겸 외무상을 맡았던 박헌영의 부인이었다. 박헌영과 이혼 후 재혼한 점 등이 고려돼 노무현정부 시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독립운동 목적이 사회주의 정권 수립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진석은 광복 이전에 사망했지만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 친척인 점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정부에서 허위 공적 논란이 있었던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부모도 서훈 재검토 대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8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윤석열식 ‘역사바로세우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사퇴 후 117일 만에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한 곳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었다. 당시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주최측은 “대한민국 독립의 밑거름이 된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애국정신을 기리고,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만든 대한민국 건국 토대인 헌법정신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물론 윤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곳은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이었다. 

 

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립에 기여한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국가보훈부가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들 가운데 친북 성향이 짙은 인사들을 걸러내겠다는 것은 평소 국가 정체성을 강조해온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독립운동가들을 특별 예우하고, 국가 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 수준을 높여야한다는 게 윤석열식 ‘역사바로세우기’인 셈이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임에도 독재 논란으로 저평가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역사바로세우기’에 관심을 쏟았다. 첫 문민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19년 임시정부로의 정통성 계승을 내세우며 구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일제만행 쇠말뚝 제거, 경복궁 원형복원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데 주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2 건국’ 운동을 벌였다. 1998년 8월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며, 민족의 재도약을 이룩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제2의 건국’”을 제창했다. 국민화합, 신지식인운동 등을 추구했지만 관 주도 논란 속에 2003년 해체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제주4·3사건 진상조사, 의문사진상규명위 등 현대 과거사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 사상전이 핵심이었다. 

 

역사는 어느 정권이냐와 상관없이 바로 세워져야한다. 독립유공자도 잣대의 구부림 없이 선정되고 후대의 각별한 예우를 받아야한다. 역사 논쟁은 늘 있어왔다. 제2건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처럼 5년 정권과 함께 사라진 예도 많다. 역사바로세우기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국민의 호응이 뒷받침돼야 한다. 보훈부가 ‘국민의 눈높이’를 내세웠듯이 독립유공자 서훈 재검토 작업이 다음 정권에서 뒤집히는 소모적인 사례가 되지 않으려면, 투명한 절차와 엄정한 기준이 전제돼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 논의에 그쳐선 안된다는 얘기다. 치열한 논쟁 과정에 국민 공감대를 얼마나 얻어내느냐에 따라 윤석열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P.S. 취재한 구현모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독립유공자 서훈 재검토 대상에 주세죽, 강진석이 포함된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는데. 

 

“보훈부는 그동안 사회주의 운동 계열 인사들에 대한 서훈을 재검토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보훈부가 지난 2일 친북 논란이 있는 독립유공자에 대해 재검토한다는 보도자료를 내서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있는지를 취재했다. 일부 관계자들이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도 재검토 대상에 포함되며 대표적인 사례로 주세죽, 강진석을 꼽았다.”

 

-보도 이후 서훈 재검토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보도 다음날 박민식 장관은 페이스북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설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 만드는데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일 대한민국 국민이 누가 있겠냐. 이는 진보, 보수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 정통성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썼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서훈 박탈 지침이 구체화될 것이다. 그 이후에 박탈 대상을 가릴 특별위원회가 구성될 것으로 본다.”

 

-부로 승격된 보훈부의 핵심 사업은. 

 

“국방부에서 관리하던 국립서울현충원을 가져오고 제대군인사업도 맡아서 할 방침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한민국 건국·유지에 기여한 인물에 대한 재평가 작업도 주요 관심 정책이다. 행정안전부 소관인 광복절 행사도 보훈부 이관을 추진중이다.”

 

<관련기사>

 

[단독] 주세죽·보수 정부서 인정됐던 강진석도…보훈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공적 재검토 움직임https://www.segye.com/newsView/20230702513210

 

역대 정부 넓혀오던 독립운동 범위 축소… "사회주의도 독립운동 수단일 뿐" 지적도 [독립유공자 서훈 재검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70251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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