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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치카노’ 애환 담긴 파소 로블 와인산지를 아십니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입력 : 2023-06-25 13:14:33 수정 : 2023-06-27 15: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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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남부 와인산지 센트럴밸리 파소 로블 /멕시코 이민자들 정착해 멕시칸-아메리칸 ‘치카노’ 문화 정착/유명 아티스트 크리스 그라니요 ‘치카노 레이블’로 꾸민 크로닉 셀러 탄생

크로닉 셀러.

‘소파 킹 부에노(Sofa King Bueno)’. 해골 모양 여성이 빨간 모자와 빨간 귀걸이를 한 채 기괴한 미소를 짓는 강렬한 와인 레이블은 한눈에도 시선을 사로잡네요. ‘Bueno’는 스페인어로 ‘좋다(Good)’는 뜻. 하지만 알파벳 띄어쓰기를 바꿔 ‘So Faking Bueno’로 배열하면 ‘Fucking’과 발음이 비슷해져 ‘So Fucking Good’이란 뜻으로 들립니다. 정말 좋은 와인이란 뜻의 슬랭이 되는 거죠. 언어적인 유희와 재치발랄, 자유분방한 멕시칸-아메리칸, 치카노(Chicano) 문화를 와인으로 풀어낸 크로닉 와인셀러(Chronic Cellars)와 따라 캘리포니아 남부 와인산지 파소 로블로 떠납니다.

Sofa King Bueno.
미국 주요 와인생산지와 파소로블 위치.
파소로블 주 와인 산지. 파소로블와인협회

◆치카노의 애환을 아십니까

 

삭발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검은 뿔테 선글라스를 쓴 갱단. 셔츠는 맨 윗단추만 잠그고 반바지에 하얀 무릎 양말을 올려 싣는 독특한 패션.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치장하고 차량 높이를 낮춘 자동차를 타는 로우라이더. 이는 ‘치카노(Chicano)’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랍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일부 멕시코인들은 문학·음악·예술 등에 자신만의 강렬한 정체성을 담은 치카노 문화를 창조해냅니다.

치카노패션. 핀터레스트 제공
치카노패션. 핀터레스트 제공
Portrait of Homeboys at Elysian Park-Los Angeles 1984 by Merrick Morton.

그런데 사실 치카노란 단어에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답니다. 20세기초 미국 남부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치카노는 백인 지주들이 멕시칸 노동자들을 비하해 부르던 용어였습니다. 스페인어 ‘Chica’는 소년,  ‘Chico’는 소녀를 뜻해 낮은 신분의 사람을 어린애처럼 낮춰 ‘Chicano’로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일부 미국 이주 멕시칸들은 스스로를 ‘Chicano‘ 또는 ‘Xicano’로 부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담아냈고 치카노 문화는 멕시칸뿐 아니라 라틴계 아메리카 이민자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합니다. 특히 벽화와 그래픽 아트로도 만들어졌는데 샌디에이고 치카노 공원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벽화 컬렉션이 탄생합니다. 

Chris Granillo 판화작업.
판화작업.

◆치카노 문화를 도발적으로 풀어낸 크로닉 셀러

 

이런 치카노 문화는 와인에도 영향을 미쳤답니다. 기발한 판화 레이블로 치카노의 문화를 담는 와인, 크로닉 와인셀러가 대표적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아티스트 크리스 그라니요(Chris Granillo)가  와인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림을 만들어 모든 크로닉 와인셀러 와인 레이블에 담고 있습니다. 멕시코와 미국인 부모를 둔 그는 치카노 문화를 선도하는 요즘 매우 핫한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Sofa King Bueno.

‘소파 킹 부에노’는 그냥 읽으면 ‘아주 좋은 와인이니 믿고 마셔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소 파킹 부에노’로 읽으면 좋다는 뜻이 몇배로 증폭되는 슬랭이 됩니다. 그르나슈·시라·무르베드르 품종으로 만드는 프랑스 론지방 ‘GSM’ 스타일로 시라 50%, 그르나슈 11%, 무르베드르 4%에 쁘띠 시라 30%, 템프라니요 5%를 섞었습니다. 잘 익은 체리, 크랜베리, 체리향으로 시작해 라벤더, 바이올렛 등의 보라꽃향으로 이어지고 삼나무, 스파이시한 오크향, 더스티한 흙향과 미네랄, 시나몬, 베이킹 향신료 등이 어우러집니다.  프렌치 뉴오크(35%)와 헝가리오크에서 10개월 숙성합니다. 돼지고기 바베큐, 소고기 안심, 오븐에 구운 닭고기와 잘 어울립니다. 2020 빈티지가 와인수지애스트 90점, 디캔터 91점을 받았습니다.

Spritz & Giggles.

스파클링 와인 스프리츠 & 기글스(Spritz & Giggles)의 네이밍도 재미있습니다. ‘Giggles’는 스파클링 와인을 잔에 따를때 버블이 “기글기글”하며 올라오는 소리로 입안을 간지럽히는 생동감 넘치는 스파클링 와인의 느낌을 아주 잘 표현했답니다. 맛있는 와인을 마실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라는 뜻도 담겼습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샤르도네,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들며 레몬, 라임, 감귤의 시트러스와 사과, 복숭아, 배 등 잘 익은 과일향, 갓 구운 토스트와 미네랄이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치즈, 버터리한 팝콘, 튀김 등과 잘 어울립니다.

Pink Pedals.

로제 와인 핑크 페달스(Pink Pedals)는 머리에 핑크 장미를 꽂은 해골 소녀가 해골 강아지를 핑크색 자전거 장바구니에 태우고 머리를 휘날리며 페달을 밟아 달립니다. 그르나슈 100%로 빚은 와인으로 블랙체리, 크랜베리, 복숭아, 감귤, 멜론 등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함, 산들바람에 떠다니는 신선한 야생딸기와 장미향, 입에 침이 고이는 적당한 산미와 생동감 넘치는 미네랄이 어우러져 마치 자전거를 타고 향기로운 꽃이 만발한 바닷가를 달리는 듯합니다. 설립자 딸의 이름에서 와인 이름을 가져왔고 딸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형상화했습니다.

Dead Nuts.

데드 넛츠(Dead Nuts)는 카이젤 수염을 멋지게 기른 해골남자가 슈트를 차려있고 모자 챙을 만지며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Couldn‘t be better...)”라고 속삭입니다. 진판델 74%, 쁘띠시라 16%, 템프라니요 8%, 알리칸테 2%를 섞은 데드 넛츠는 포도나무를 심기전 밭의 주인이던 아몬드·호두나무를 재배했던 농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역설적인 와인 이름으로 표현했답니다. 알코올도수가 15%로 높지만 밸런스가 좋아 높은 알코올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달콤한 체리, 딸기, 블랙베리, 체리파이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 꿀향과 흑후추 등 향신료향이 피어납니다.

Puple Paradise.

퍼플 파라다이스(Puple Paradise)는 천국이 느껴질 정도로 마시기 쉬운 보라색 와인이란 뜻을 담았습니다. 휴대전화로 QR코드를 비추면 “너 나랑 게임할래? 이러면서 계속 말을 걸며 주사위 게임을 이기면 상품을 줍니다. 진판델 70%, 쁘띠 시라 20%, 시라 7%, 그르나슈 3%를 블렌딩했습니다. 바닐라, 모카, 블랙체리, 라벤더향이 피어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크초콜릿, 모카, 담배향도 피어납니다.

Sir Real.

서 리얼(Sir Real)은 ‘레드 품종의 왕’ 카베르네 소비뇽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서(Sir)’ 라는 존칭어를 담았습니다. 단어를 붙이면 초현실적이란 뜻의 서리얼(surreal)로 바뀝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는 뜻입니다. 잘 익은 블랙베리, 매실, 자두, 카시스가 어우러지고 구운 빵, 향신료, 가죽향이 따라 옵니다. 프렌치오크에서 8개월 숙성하며 부드러운 탄닌과 탄탄한 구조감이 돋보입니다. 

크로닉 셀러 전경.
크로닉 셀러 포도밭 위치.

#파소 로블에 뿌리내린 치카노 문화

 

크로닉 셀라는 왜 치카노 문화를 와인에 담고 있을까요. 바로 와인 생산지역이 캘리포니아 남부 파소 로블(Paso Robles)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와 가까운 파소 로블은 미국 이주 초기 멕시칸들이 이민을 많이 오면서 2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카노 문화가 자리 잡게 됩니다. 몬테레이, 산타마리아밸리와 함께 센트럴 코스트를 대표하는 파소 로블은 내륙지역으로 덥고 건조해 프랑스 론 밸리와 굉장히 비슷한 기후를 지닙니다. 이에 GSM 스타일, 즉 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를를 수학공식처럼 블렌딩하는 남부 론 스타일의  레드와인들을 많이 생산하며 가성비 좋은 와인들을 선보이는 생산지입니다. 

크로닉 셀러 와인들.
와인메이커 Kip Lorenzetti.

지난해 와인앤수지애스트가 크로닉 셀러 카베르네소비뇽을 파소 로블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선정했을 정도로 품질도 뛰어납니다. 센트럴밸리 등 캘리포니아의 여러 대형 와이너리에서 경험을 쌓은 와인메이커 킵 로렌제티(Kip Lorenzetti)의 솜씨 덕분입니다. 에드나 밸리와  산 루이스 오비스포의  오커트 셀러(Orcutt Cellars)에서 와인 양조 경험을 시작한 그는  데라반트 와인 컴퍼니(Terravant Wine Company·현 Summerland Wine Brands)의 어시스턴트 와인메이커를 거쳐 캘리포니아 탑 와인을 생산하는 여러 와이너리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특히 와일드 호스 와이너리 앤 빈야드(Wild Horse Winery & Vineyards)에선 부르고뉴, 보르도, 론 스타일의 뛰어난 와인들을 선보여 주목받았습니다. 조쉬(Josh)와 제이크 벡켓(Jake Beckett)은 모험, 장난기, 파괴적인 스타일을 담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자는 모토로 2004년 크로닉 셀러를 설립합니다.  

CEO Oliver Colvin.
총괄 와인메이커 Linda Trotta.
Jeff Ngo 부사장(왼쪽)과 Dan Irving 인터내셔널 시니어 부회장.

크로닉 셀라는 1999년 설립된 미국의 대형 기업 WX 브랜즈(WX Brands)의 소속 와이너리로 국내 소비자들에 인기 높은 브레드 앤 버터가 바로 WX의 브랜드중 하나입니다. 2021년 세계 9위 규모의 대형 와인기업 벰버그 패밀리 그룹(Bemberg Family Group)에 합병해 덩치를 더욱 키웠습니다. WX 와인들은 롯데칠성음료에서 수입합니다. WX 브랜즈의 CEO 올리버 콜빈(Oliver Colvin), 부사장 제프 고(Jeff Ngo), 총괄 와인메이커 린다 트로타(Linda Trotta)가 한국을 찾아 대표와인들을 소개했습니다. 브레드 앤 버터는 와인메이커 12명이 와인산지 14곳에서 브레드 앤 버터, 크로닉 셀러, 스토리텔러(Storyteller) 등 다양한 브랜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30년동안 다양한 와인메이킹 경험을 쌓은 린다는 2018년 캘리포니아 노스 베이 비즈니스 저널(North Bay Business Journal)이  ‘올해의 나파 밸리 와인메이커’로 선정한 실력있는 와인메이커입니다.

브레드 앤 버터 다양한 레인지 샤르도네.

브레드 앤 버터 와인은 마트에서 파는 중저가 와인 정도로 널리 알려졌지만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도 만듭니다. 리저브 컬렉션(The Reserve Collection)과 셀라 컬렉션(The Cellar Collection)이 대표적입니다. 리저브 컬렉션은 캘리포니아 프리미엄 와인 생산지로 명성을 떨치는 나파밸리 물론 쿨클라이밋 기후를 지닌  러시안 리버밸리에서 최고 포도로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누아, 샤르도네를 만듭니다.

셀라 컬렉션.

셀라 컬렉션 아틀라스 피크(Atlas Peak) 카베르네 소비뇽은 뛰어난 집중도가 매력입니다. 아틀라스 피크는 나파밸리에서 고도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서늘한 기후와 화산석 토양이 특징입니다. 배수가 잘돼 힘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들기 좋은 지역이죠. 포도에 스트레스를 계속 주는 토양이라 포도나무는 생존하기위해 깊숙하게 계속 뿌리를 내리게 돼 다양한 토양의 성분과 미네랄을 끌어 올립니다. 또 일교차 커 산도가 좋고 오랜시간 천천히 숙성돼 보통 10월에서 11월까지 수확합니다.  포도의 집중력이 뛰어나 파워풀 하면서도 섬세함이 더해집니다. 나파밸리의 마야카마스 산맥  마운틴 비더(Mt. Veeder)의 포도로 빚는 샤도네이는 감귤류에서 모과, 복숭아, 파인애플 등 다양한 과일이 풍성하게 어우러지고 과하지 않은 오크향과 신선한 산도가 잘 어우러집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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