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중 '광란의 파티' 동영상 유출로 곤욕
최근 총선 패배로 퇴임… 이혼 아픔 겪기도
한때 세계 최연소 국가 정상급 지도자였던 산나 마린 전 핀란드 총리가 더는 그의 사생활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젠 총리가 아니고 그냥 한 명의 국회의원이자 자연인으로 돌아간 만큼 언론에 ‘내 사생활을 존중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린 전 총리는 21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나는 총리 시절 내 사생활과 관련된 보도를 놓고서 언론에 무엇을 요구하거나 언론을 비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20일) 총리로서 내 업무 수행은 끝났다”며 “이제 내 사생활은 더는 공개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985년 11월 태어나 현재 37세인 마린 총리는 2019년 12월 집권 당시엔 34세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였다. 그의 임기 동안 핀란드는 코로나19 방역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대응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는 유럽연합(EU) 차원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도했다. 핀란드가 오랜 군사적 중립 노선을 벗어던지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해 결국 올해 4월 정식 회원국이 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한 이웃나라 스웨덴이 아직 회원국 지위를 얻지 못한 점과 비교하면 마린 전 총리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임기 중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 유출로 곤욕을 치렀다. 2022년 8월 SNS를 타고 널리 유포되며 핀란드는 물론 전 세계에서 커다란 화제가 된 이른바 ‘광란의 파티’ 영상이 그것이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지인들과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격렬한 춤을 추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며 야권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그게 총리로서 할 짓이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총리가 마약을 한 것 같다’는 의구심도 확산했다.
일단 마약 의혹은 본인이 자청해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총리 집무실로 달려가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항변했으나, ‘일국의 총리로서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다’는 야권과 언론의 지적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핀란드는 물론 전 세계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 “총리도 쉬는 시간엔 파티를 즐길 권리가 있다”며 마린 전 총리를 옹호하는 운동까지 벌어졌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자신의 SNS에 장관 시절 남미 출장 도중 국제회의를 마치고 클럽에 가서 춤을 추는 사진을 게재하며 “괜찮아요, 산나. 계속 춤춰요”라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광란의 파티 영상 유출의 여파로 올해 4월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서 마린 전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연립여당은 우파에 패했다. 20일 마린 전 총리가 물러남과 동시에 국민연합당 페테리 오르포 대표가 새롭게 총리로 임명됐다.
그런데 선거 패배 후 신임 총리가 뽑힐 때까지도 그의 사생활에 관한 언론 보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구체적 사유와 경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마린 전 총리가 남편과의 이혼을 전격 발표한 것이 불륜설 등 온갖 억측을 낳았다.
다수 여성은 마린 전 총리가 남성이 아닌 여성 정치지도자라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고 차별까지 받았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글로벌 여성지 ‘마리끌레르’는 마린 전 총리가 아직 현직이던 2022년 그를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하며 “전 세계에서 유독 여성 지도자들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이중 잣대를 불도저로 밀어 부쉈다”고 찬사를 보냈다. 여성정치지도자회(WPL)는 최근 “21세기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깼다”며 퇴임을 앞둔 그에게 ‘개척자상(償)’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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