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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무늬만 친환경’… 세계 각국 ‘그린워싱’ 규제 갈길 멀다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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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08 06:00:00 수정 : 2023-06-09 17: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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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녹색 주장’에 단속 어떻게

소비자들 기후변화·환경 관심 커지면서
기업들 ‘지속가능’ ‘탄소중립’ 등 앞세워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제품 홍보 잇따라

英, 광고·라벨·포장지·제품명 등 총망라
명확하고 구체적 설명 없으면 강력제재
EU, 2023년 녹색지침 마련… 美도 재개정 나서

한국도 관련규제 있지만 행정지도 그쳐
연내 가이드라인 마련… 강제력은 없어
규제 강화·기업의 의식 변화 등 시급

#1. 국내 브랜드 A사가 판매하는 남성용 운동복의 이름에는 ‘서스테이너블(지속가능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제품 설명에 ‘재활용 페트병을 사용했다’는 설명은 있지만, 세부 함량 표기에는 ‘겉감 면 48%, 폴리에스터 52%’, ‘안감 폴리에스터 100%’라고 적혀 있을 뿐 사용된 재료 중 얼마만큼이 재활용 섬유인지는 알 수 없다.

 

#2. 미국 델타항공은 광고에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항공사’라는 문구를 사용해 소비자를 기만한 혐의로 지난달 소송을 당했다. 원고는 자신이 친환경 소비를 하기 위해 웃돈을 주면서까지 델타항공의 비행기표를 구매했는데 정작 항공사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실제 효과가 의문스러운 탄소배출권 구매에 의존해 온 것을 알게 돼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종이 빨대, 재활용 용기, 무라벨 페트병 등 ‘친환경’을 앞세운 제품들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소비자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기후와 환경에 친화적인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업들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친환경’, ‘탄소중립’ 등으로 홍보하면서도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일방적인 주장만 내세우는 경우가 덩달아 늘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시민이 기업의 이런 무분별한 ‘녹색 주장’, 즉 ‘그린워싱’을 단속하는 데 발 벗고 나선 이유다. 기업과 정부, 소비자 등 모든 이해 관계자 집단에서 관련 규제 강화와 건전한 규범 마련, 의식 변화 등이 시급해 지속가능한 사회 구축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규제 당국, 그린워싱 더 세게 잡는다

 

영국은 기업의 그린워싱을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영국 경쟁시장국(CMA)은 2021년 소비자법에 근거해 친환경 마케팅 지침인 ‘녹색 주장 지침’을 발표하면서 대대적인 그린워싱 단속을 예고했다. 지침은 기업이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해서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하고 명확할 것, 중요한 정보를 누락하지 않을 것, 근거를 통해 뒷받침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지침은 광고, 라벨, 포장지, 제품명 등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에 해당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발맞춰 영국 광고 규제 기관인 광고표준청(ASA)은 환경 관련 효용을 주장하는 광고에 대해서는 유사한 기준을 적용해 단속하고 있다. 올해 4월 ASA는 아랍에미리트 에티하드항공이 광고에서 ‘지속가능한 항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 내에서 해당 광고를 금지했다.

 

ASA는 “에티하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지속가능한 항공’이라는 절대적인 친환경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봤다”고 판결했다. 앞서 올해 2월에도 ASA는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의 유사한 광고에 대해 금지 명령을 내렸다. ASA는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서도 까다롭게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해 8월 영국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세제 광고에서 ‘환경에게 더 상냥하다’는 문구를 사용하자 표현이 모호하고 비교군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광고를 금지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ASA는 지금까지 20여건의 그린워싱 광고에 금지 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9월 네덜란드 소비자시장청(ACM)은 스웨덴의 글로벌 의류 브랜드 H&M에 자사의 ‘컨셔스(의식하는)’ 제품군의 이름과 광고 문구를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환경을 의식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해당 제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친환경적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했던 탓이다.

 

H&M은 전 세계 온라인 스토어에서 해당 제품군을 삭제하고 환경 단체에 50만유로(약 6억9700만원)를 기부하는 것으로 제재를 피했다. 대신 H&M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비롯한 자사 제품들에 재활용 섬유 함유량을 표기함으로써 규제를 위반하지 않고 친환경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탄소배출권도 ‘그린워싱’ 악용

 

지난달 델타항공을 고소한 사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마얀나 베린씨다. 델타항공이 세계 첫 탄소중립 항공사라 홍보하며 고객이 더 비싼 항공권을 구매하도록 호도했다는 이유에서다. 델타항공이 탄소중립 항공사라고 홍보한 이유는 이들이 여객기가 배출한 탄소만큼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왔기 때문이다. 델타항공은 인도의 풍력·태양열발전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늪지 보호 프로그램 등에 투자해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하지만 탄소배출권을 통한 탄소 상쇄는 각 프로그램의 탄소 저감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미국 탄소배출권 평가기관 레노스터는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발급 업체인 베라의 산림 보호 사업이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펄프용 목재인 유칼립투스를 생산하기 위한 영리사업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올해 1월 베라가 발행한 탄소배출권의 94%가 실질적인 탄소 감축 효과가 없었으며, 베라가 사업의 탄소 감축 효과를 평균 400%가량 부풀렸다고 분석했다. 베라는 즉각 반박했지만 탄소배출권의 실효성에는 계속해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SK엔무브가 베라의 인증을 받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고 자사 윤활유 제품을 탄소중립 윤활유로 홍보했다가 환경부의 행정지도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하지현 리걸팀장(변호사)은 5일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탄소배출권의 취지는 탄소 감축을 위해 등장했는데, 배출권 구매 자체에 방점이 찍히면서 오히려 기업들이 배출권 구매 이외의 감축 노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 팀장은 배출권 인증 기관 베라의 실효성 논란을 언급하며 “국내 사업장에서의 탄소 감축 노력 없이 품질도 확실치 않은 배출권 구입에만 탄소 감축을 의존한다면 결국 기업에 오히려 더 큰 평판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그린워싱 규제 있지만…

 

한국에도 그린워싱으로 포장하는 제품에 대한 규제 규정이 있다. 환경부의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 제15조에 따르면 재활용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광고하면서 해당 성분의 양이나 비율을 명시적으로 기재하지 않아 제품 전체가 광고 내용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행위는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살펴보면 이를 위반하고 있는 경우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유명 의류 브랜드 B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플리스 외투 제품은 ‘페트병 100만개를 재사용했다’며 재활용 소재를 강조하고 있지만 해당 제품의 소재 함량 표기에는 ‘폴리에스터 100%’라고만 적혀 있다. 한 일본계 대형 의류 브랜드가 국내 매장에서 판매 중인 재활용 소재 티셔츠는 홈페이지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모두 ‘53% 폴리에스터(재생섬유), 47% 폴리에스터’라고 함량을 정확히 표기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제품 광고는 제재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한 반면 기업 이미지 광고 등에서 발견되는 그린워싱은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하 팀장은 “기업에서 공시하는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 같은 것도 투자자들에게 기업을 홍보할 목적의 표현물이라고 볼 수 있다”며 “꼭 제품 광고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수익과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범주의 표현물들에 그린워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광고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기에 정부 역시 그린워싱 단속의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이런 지적에 올해 안으로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만들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최근 ‘녹색 주장 지침’을 발표했고,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12년 마지막으로 개정됐던 친환경 마케팅 지침 ‘그린 가이드’를 개정하기 위해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 경영에 대한 그린워싱을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아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10월쯤 경영·마케팅에서 그린워싱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만 새로 발표할 가이드라인에 강제력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경영활동권에 대해 강제하는 법률적인 근거 조항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 팀장은 규제 강화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업의 의식 변화라고 봤다. 그는 “(그린워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법률이 강화되는 것과 상관없이 근거 없이 친환경이란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며 “소비자가 접속해서 왜 해당 제품이 친환경인지에 대한 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안내해 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솔·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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