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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저출산예산’의 오래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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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02 00:11:28 수정 : 2023-06-02 0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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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저출산과 관련해 오래된 오해가 하나 있다. 충분한 수준의 예산이 지원됐음에도 비혼을 선호하는 문화 등 다른 요인 때문에 출산율이 올라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2005년 노무현정부 시절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뒤 15년 동안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380조원이 투입됐다는 점을 근거로 이런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아무리 예산을 들여 봤자 ‘우린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저출산 항목으로 편성된 사업과 규모를 따져 보면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부산경제연구소가 지난 4월 펴낸 ‘초저출산 탈피 해외사례 검토 및 국내 적용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적용된 1, 2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의 전체 예산 중 출산·양육 부문의 비중은 각각 89%, 88.9%에 달했다. 저출산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초기 대책이 주로 영유아 보육비 등 임신·출산 지원에만 집중됐을 뿐 일·가정 양립, 주거·고용 등 다른 구조적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 않은 셈이다.

이희경 경제부 기자

게다가 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2021∼2025년)에는 그린스마트 스쿨 조성(1조8293억원), 청년내일채움공제(1조3098억원), 첨단무기 도입(987억원) 등 저출산 대책으로 볼 수 없는 사업도 다수 포함됐다.

연구소는 특히 저출산 문제 해결에 투입되는 예산 자체도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예산 비중이 0.95%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에 미치지 못했다. 저출산 예산이 효율적으로 설계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양적으로도 부족했던 것이다. 이는 충분한 예산을 마련해 제대로 집행한다면 우리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을 2000년 1.38명에서 2020년 1.53명으로 끌어올린 독일처럼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출산을 꺼리는 신혼부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경제적 불안정’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산 지원 측면에서 예년보다 못한 사업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게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지원 사업이다. 세계일보가 최근 7년간 경력단절 여성 지원을 위한 사업 예산을 분석한 결과 올해 예산은 6억여원(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8.3% 증가율을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지원 규모가 ‘제자리걸음’에 그친 셈이다. 또 이 예산의 대표적인 사업인 새일여성인턴 사업은 지난해 정부 평가에서 “법적 근거가 명확하고 노동시장 관점에서 필수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업”이라고 호평받았지만 유의미한 예산 증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대표되는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1분기(0.81명)에도 동분기 기준 역대 최저 합계출산율을 갈아치웠다. 통상 1분기에 출산율이 가장 높은 점을 감안하면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저출산 해결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을 흘려보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희경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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