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이 콘텐츠 산업을 일으키자 이내 그 중심에 ‘이야기 산업’이 자리 잡았다. 주요 의사소통 방식의 하나가 이야기(서사)요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스토리 산업’이라고도 부르는 그것이 자본의 지원을 무진장 받으며 오락(엔터테인먼트)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기술이 이처럼 큰 폭으로 문화를 바꾼 예는 찾기 어렵다. 전자기술은 종이를 밀어내고 복합매체 시대를 열며 문자 언어와 나란히 영상(이미지) 언어를 부각시켰다. 그 총아로 등장한 게 이야기 산업인데, 이야기라는 게 본래 의미와 함께 재미를 지녔기에 ‘산업’이 ‘상업’으로 기운 분야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커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갈래의 유난스러운 성행이다. 거기서는 피가 낭자한 살인이 판치며 극한상황에 빠진 인물들이 수단 가리지 않고 복수와 인생 반전을 노린다. 그것은 자극적 영상과 상식을 벗어난 전개로 오직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여 감상자, 사용자 수를 늘리고자 할 뿐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합리적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
막판에 주검이 널린 이야기는 늘 있어 왔다. 가령 ‘햄릿’ 같은 명작도 그렇다. 하나 그런 ‘비극’에서 벌어지는 살상은 불가피한 운명이나 실수, 전쟁 등에 따른 것이다. 갈 데까지 간 인물이 작심하고 벌이는 잔인한 가해의 결과가 아니다.
막장 이야기는 비리를 다소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장은 끝장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복수가 최선은 아니다. 약육강식을 벌한다며 또 하나의 폭력을 저지르는 모순은 심성을 황폐하게 만들고, 선악 이분법에 빠져 웅숭깊은 변화를 모색하지 못하도록 한다. ‘권선징악’은 환상이며 적이 사라져도 세상은 계속된다. 그래서 막장 이야기를 못 만드는 게 아니라 굳이 만들지 않는 사람이나 사회도 있다. 작품성이 떨어짐은 물론 마약 같은 면이 있는 까닭이다.
막장 이야기의 성행은 분별이 흐려진 극심한 경쟁사회의 산물이다. 승리와 이익에 사로잡혀 세상을 사막으로 만드는 모래바람의 일부이다. 이야기는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자기 마음의 숲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소비자’ 스스로 그 바람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