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체 채취·대리처방 가장 많아
항암제 조제·사망 선언 사례도
10건중 4건은 종합병원서 신고
“업무 범위 모호… 불법 내몰려”
간호사가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조직을 채취하고 사망환자의 사망 선언까지 한다는 사례가 대한간호협회의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접수됐다. 의료법이 규정한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명백한 불법행위다. 이처럼 의사나 임상병리사 등 다른 직역의 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하는 경우가 의료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병원 내 의사는 부족한데 각 직역의 업무 범위는 모호하게 규정된 탓에 간호사가 불법진료행위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협은 24일 서울 중구 간협 서울연수원 대강당에서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8일부터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현황을 공개했다. 간협은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반발해 준법투쟁을 벌이고 불법진료행위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진행 결과를 보면, 지난 18일 오후 4시20분부터 전날 오후 4시까지 5일간 총 1만2189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불법진료행위로는 ‘검사(검체 채취, 천자)’가 6932건, 의약품을 대리 처방하거나 진료기록을 대신 작성하는 등의 ‘처방 및 기록’이 6876건으로 가장 많았다. L-튜브(비위관)나 T-튜브(기관절개관) 교환, 기관 삽관은 2764건, 봉합과 관절강내 주사,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등 치료·처치·검사 사례도 2112건 있었다. 그 외 수술보조(1·2번째 어시스트) 1703건, 항암제 조제 등의 약물관리가 389건 접수됐다.
앞서 간협은 △채혈 △동맥혈 채취 △봉합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등 24가지의 ‘불법 업무 리스트’를 일선에 배포했는데, 이외 불법진료행위도 다수 신고됐다. 여기엔 대장용종절제술과 사망환자 사망 선언, 인턴(수련의) 교육, 배액관 제거, 중심정맥관 관리 등이 포함됐다. 항암 치료와 연계되는 중심정맥관(케모포트) 삽입의 경우 침습(염증이나 악성 종양 따위가 번져 인접 조직이나 세포에 들어가는 것) 범위가 상당히 깊어 간호사가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간협의 설명이다.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간호사뿐만 아니라 응급구조사가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역할을 하거나 간호사 이름으로 간호기록지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는 신고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신고 대상 병원을 유형별로 보면 종합병원이 5046건(41.4%)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상급종합병원 4352건(35.7%), 전문병원 등 병원 2316건(19%), 의원·보건소 475건(3.9%) 순이었다. 최 위원은 “전공의가 있는 수련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에서 신고가 가장 많았다”며 “PA가 전공의를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간호사들도 불법진료행위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의 불법진료행위가 만연한 이유로는 병원 내 의사 부족과 모호한 업무 범위가 꼽힌다. 이번 조사에서도 간호사들이 불법진료행위를 한 이유로는 ‘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가 2925건(31.7%)으로 가장 많았다. 현행 의료법 조항은 1962년 조항 거의 그대로인데, 각 직역의 업무 범위가 단 몇줄로만 규정돼 있다. 이에 업무 범위를 두고 각 직역 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PA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 달부터 협의체를 운영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간협은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불법진료행위를 근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중심으로 구성된 의료법이 아닌 간호법이 제정돼야 간호 업무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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